여진구(20)는 20대 남성 배우 중 가장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충무로의 기대주다. 2005년, 9살 나이에 영화 '새드 무비'로 연기를 처음 시작한 그는 영화 '쌍화점' '타짜'와 드라마 '식객' 등에서 아역으로 연기 경력을 차근차근 쌓기 시작했다.

그러다 2012년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성숙한 모습과 깊은 연기력으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작품을 계기로 여진구는 '진구 오빠'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대세 연하남으로 떠올랐다. 이후 그는 몰아치듯 상승세를 이어갔다. 영화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 '서부전선' 등 쉬지 않고 필모그래피를 잇더니 어느덧 주연급 배우로 성장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왕을 연기했던 그가 이번엔 두려움에 떠는 인간적인 왕으로 변신했다. 오는 31일 개봉하는 영화 '대립군'에서 여진구는 전란에 빠진 조선을 구하는 왕 광해 맡아 나라를 버리고 명나라로 떠난 아버지 선조를 대신해 분조를 이끌며 점차 성장하는 모습을 표현한다. 그가 '대립군'에서 표현한 광해는 특유의 사극 톤이 아니라 소년 같은 느낌의 말투를 구사하고 있어 색다른 느낌을 선사하기도 했다.

 

 

"초반에는 좀 안 어울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캐릭터 자체가 왕의 자질을 갖고 태어난 느낌은 아니었다. 여태까지는 나이가 어리지만 카리스마 있는 캐릭터가 많았다. 이번 역할은 그런 모습은 요만큼도 안 보이는 역할이었고, 그게 광해의 중요한 모습이다. 신분이 왕세자일 뿐 그냥 평범한 백성처럼 보였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에서 이병헌이, 드라마 '화정'에서 차승원과 이태환이 광해를 연기한 전례가 있었다. '광해'하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몇 배우들의 무게가 부담스럽지는 않았느냐는 질문에 여진구는 "부담은 없었다"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오히려 촬영시작하기 전까진 현장에 빨리 가고 싶었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왕의 느낌과 완전히 달랐다. 불쌍하고 가여우면서 인간적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기분이 좋았다. 새로운 느낌의 왕을 내가 연기로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설렜다. 타이틀이 광해라서 감독님도 저도 그런 질문을 많이 받고 있는데 그런 건 영화를 보면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다."

 

 

스무 살이 되면서 여진구는 운전면허를 따고 드라이브를 하고 싶다고 소망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여진구는 아직 초보 운전이라 매니저와 동행할 때만 운전을 하는데 매니저가 잘 타려고 하지 않는다며 웃음을 지었다. 운전뿐만 아니라, 아역 배우와 성인 배우를 통과하면서 그의 촬영장에서의 일상에도 변화가 있었을 터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내가 술을 좋아하진 않았다. 이번에 산에서 촬영하면서 선배님이 따라 주시는 막걸리도 마셔 보고, 촬영 끝내고 선배님들이랑 소주 한잔하면서 술이 맛있다는 걸 알았다. 특히 '화이'때 뵀던 선배님이랑 이번 작품에서 또 같이하게 됐는데 감회가 새롭더라. 그때는 사이다나 콜라로 '짠'을 했었는데 이제는 술로 '짠' 하니까 느낌이 새롭고 신기했다."

그는 술을 좋아하긴 하지만 주량은 소주 반병에서 한 병 정도라며 잘 마시지는 못한다고 덧붙였다. 취하면 잠이 드는 게 주사라며 웃는 그에게서 이제 막 술맛을 알게 된 앳된 청년이 느낌이 뚝뚝 묻어났다. 이 청년이 스스로 어른이라는 생각을 할 때는 언제일까.

 

 

"연기할 때 그런 것 같다. 어렸을 때 연기를 보면 '내가 이렇게 연기를 즐겁게 했었구나' 싶더라. 그래서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크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욕심을 떨치기가 힘들다. 표현하고 싶고,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 그런 걸 신경 쓰며 하다 보니 마냥 즐기면서 하던 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나도 연기할 때 책임감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릴 때부터 쭉 연기를 하면서 보통의 10대와는 다른 삶을 살았다. 포기하거나 놓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을까.

"놓친 건 연애다. 내가 남고를 가면 안 됐다. 남고로 진학하는 바람에…….(웃음) 중학생 때는 아예 여자친구나 이런 거에 대한 생각이 없었다. 고등학생 때는 주변에 친구들을 보면서 정말 많이 부러웠다. 가을이나 봄에 떨어지는 꽃 보면서 헤벌쭉해 있는데 참 부럽더라."

잘 먹는 여자가 이상형이라는 여진구는 이제 2년째 대학교에 다니고 있다. 학교 성적은 재수강만 면하고 있다며 수줍게 웃었다. 연애의 장인 대학교에서 미팅을 한 적은 없냐고 묻자 "해보고 싶은데 잘 안 들어온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그는 사랑을 해 보고 싶다며 꽤 진지하게 답변했다.

 

 

"그런 욕심이 있다. 연기를 하다 보니 간접적인 경험도 좋지만, 확실히 직접적으로 경험하면 느끼는 게 다르더라. 알콩달콩한 사랑도 좋고 절절하고 아픈 사랑도 해보고 싶다. 아직은 못 해봤다. 달달한 사랑도 해봐야 하는데……. 청춘 멜로는 나도 한 작품 남기고 싶다. 이십대 초반에만 할 수 있는 장르가 있다."

나이가 어린데도 불구하고 성숙한 매력으로 '진구 오빠'라고 불리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냐고 묻자 전혀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오히려 되게 재밌다. 좀 더 친근해지는 것 같다. 별명 같은 느낌이 많이 들어서 되게 기분이 좋다. 그런 얘길 들으면 장난도 더 치고 싶기도 하고 그렇다. 앞으로도 꾸준히 들었으면 한다.(웃음)"

한편 '대립군'은 임진왜란 당시 파천(播遷)한 아버지 선조를 대신해 왕세자로 책봉되어 분조(分朝)를 이끌게 된 광해와 생계를 위해 남의 군역을 대신 치르던 대립군(代立軍)의 운명적 만남을 그린 작품으로, 5월 31일 개봉한다.

사진 제공=20세기 폭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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