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의 나와 20살, 30살의 나는 모두 같은 모습일까. 누구도 흘러온 인생이 변함없이 그대로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르도 데 팔리에르 감독은 '그 누구도 아닌'을 통해 현재의 나를 만든 여러 삶의 조각을 4인 1역 인생 역추적 드라마로 구성해 보여줬다. 나는 온전한 나임과 동시에 하나로 정의될 수 없는 '그 누구도 아니'라는 사실은 망각하기 쉽지만 명백한 사실이다. '그 누구도 아닌'은 이를 감각적인 연출과 배우들의 호연을 통해 재차 각인시켜준다.

영화를 가장 기대하게 만드는 요소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아델 에넬과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 두 아델이 동일 인물을 연기했다는 사실이다. 앞선 영화들에서 섬세한 감정연기로 국내 팬들에게 이름을 알린 두 배우는 '그 누구도 아닌'에서 각각 27살 르네와 20살 산드라를 연기했다. 

르네는 남편과 아이를 낳고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한다. 하지만 느닷없이 찾아온 타라(젬마 아터튼)로 인해 잊고있던 과거의 또 다른 자신을 하나씩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그가 처음 마주한 과거는 미래의 삶과 사랑을 찾아 방황하며 방탕한 삶을 살던 20살의 산드라다. 

이 시점부터 관객은 혼란스러워지며 영화의 메시지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분명 동일 인물일 터인데, 이름도 성격도 삶의 모습도 닮아있지 않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 등장하는 타인과 굵직한 사건들은 그들이 분명 하나의 삶의 연장선에 놓여있음을 보여준다. 이후 드러나는 13살의 카린(솔렌 리곳), 6살의 키키(베가 쿠지테크)의 이야기는 차츰 산드라와 르네의 인생을 이해하게끔 만든다. 

네 명의 같지만 다른 인물은 각자 무언가를 추구한다. 르네는 남편과의 평범한 가정을, 산드라는 뜨거운 사랑과 야심찬 미래를, 카린은 아버지의 폭행과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를 추구한다. 어린 키키는 불만뿐인 집과 반대되는 넓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충만하다. 영화의 묘미는 이들의 삶이 서로 달라 보이지만, 결국에는 하나로 모이게 됨을 보여주는 연출에 있다.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삶을 살아왔던 것인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여자로서 남자를 대하는 방식도 눈길을 끈다. 카린은 아버지에게 폭행당하고 도망치면서도 또 다른 남자들, 특히 나이 많은 남자에게 끌리고 의지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자유를 추구하지만 한편으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모습은 절실해서 더욱 안타까움을 유발한다. 여자에게 남자는 어떤 의미인지, 나에게 타인은 어떤 필요를 지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그 누구도 아닌'은 감독의 의도대로 자신의 삶과 자유를 위해 싸우는 여자의 투쟁을 담아냈다. 꼭 여성이 아니더라도 한 사람의 인생이 몇 개의 삶으로 구성되는지, 그것이 현재의 나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곳곳에 숨은 감각적인 음악과 편집은 잔잔해서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영화를 끝까지 집중하게 도와준다. 거기에 인생을 역추적하며 현재에 영향을 미친 요소들을 찾게 만드는 미스터리도 극의 긴장감을 충분히 유지시켜준다. 러닝타임 1시간51분, 15세 관람가, 3월26일 개봉.  

사진=영화 '그 누구도 아닌'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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