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영화계에도 배우의 감독 겸업이 하나 둘씩 늘어가는 상황에서 구교환(35)은 주목할 만한 단편영화, 장편 독립영화들의 극본·연출을 담당하는가 하면, 개성 짙은 연기로 존재감을 키워왔다. 31일 개봉한 ‘꿈의 제인’에서도 예사롭지 않은 캐릭터를 맡았다. 트랜스젠더 클럽에서 드랙쇼를 하면서 한편으론 가출팸을 돌보는 제인이다. “인간은 시시해지면 끝장이야”라고 말하는 유니크한 인물을 이질감 없이 스크린에 투사시킨 ‘꾼’을 만났다.

 

 

-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이미 관객과 만났는데 꽤 오랜 시간이 흘러 정식 개봉된 소감이 궁금합니다.

▲ 극장에서 상영되는 기회가 생겨서 반가운 마음이죠. 고맙기도 하고요. 이 영화는 제게 있어 부모, 동료, 친구의 모습이에요.

 

- 본인이 시나리오를 쓰기 때문에 출연하기로 결정했을 땐 ‘꿈의 제인’ 시나리오의 매력, 장점이 분명했기 때문일 거 같은 대요.

▲ 조현훈 감독님이 쓰신 텍스트가 인물들을 전시하는 태도가 아니라서 좋았어요. 제인의 대사가 큰 공감을 불러 일으켰고요. 역할에 다가갈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 ‘이 캐릭터가 내게 궁금증을 자아내느냐’인데 엄청나게 매력적인 인물이었거든요. 제인 같은 누나, 엄마, 친구, 가수가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 기분이었음. 역할을 ‘맡았다’는 말보다는 ‘옮겼다’는 말이 맞는 듯해요.

 

- ‘꿈의 제인’에선 우리 사회 약자·소수자들이 직면하는 잔인한 현실이 굉장히 리얼하게 그려지면서도 한편으론 한여름밤의 꿈처럼 몽환적이에요. 이런 느낌의 중심엔 제인이 있더라고요. 그 어려운 일을 해냈네요.

▲ 감독님과 ‘제인은 뭐다’란 답은 내리지 않고, 서로에게 질문을 많이 했어요. 누구도 상처받길 원하지 않는 사려 깊은 인물이라는 교집합을 확인했고요. 그것에 대한 질문을 계속 했어요. 질문이 쌓이면 답이 되니까. 지나고 보니 감독님과 제인에 대해 상상의 인터뷰를 진행한 느낌이에요. 또 영화의 서사구조가 타임라인대로 일어나지 않잖아요. 문득문득 제인이 나타나고, 신마다 다른 제인이 등장하고. 클럽 ‘뉴월드’에서의 디바, 제인 팸 안에서의 가장, 클럽 직원 정호(이학주)의 연인, 소현(이민지)의 동료 등 제인의 여러 모습을 신 안의 공간과 감정에 충실하게 연기했던 듯해요. 그런 모습이 쌓여져서 제인이 완성됐을 거예요. 모든 인간이 그렇듯이.

 

 

- 남자배우가 여성 혹은 트랜스젠더 캐릭터를 맡았을 때 배우 스스로도 외적인 표현에 함몰해 버리고, 대중도 그런 점에만 관심의 촉수를 뻗치는 경우가 분명히 있더라고요. 교환씨는 어땠나요.

▲ 살을 빼고, 킬힐을 자연스럽게 신는 등 외형적인 것들은 물리적으로 준비하면 돼요. 다만 인간을 그릴 때 리얼리즘, 사실적이란 개념이 모호한 듯해요. 어떤 공간, 집단, 상대에 따라서 저도 다른 모습이 나타나거든요. 그래서 특별히 제인을 분류하진 않았고 매력적인 존재로 어느 공간에 나타났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인물에 대한 판타지라고나 할까. 제일 피하려고 한 지점은 바로 외형적 표현에 갇히는 거였고요. 인간이 어떻게 레퍼런스가 있을까요. 나조차도 나를 모르고 그저 알아가는 과정에 있는데. ‘만약 나라면’이란 질문을 계속 하고 상상력에 의지하고 그랬어요. 실제 트랜스젠더나 배우를 취재해서 연기하려고 했다면 오히려 갇히게 되고 흉내 내게 되니까. 어디서 본 듯한 인물을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 ‘꿈의 제인’이 말하는 것들 중 한 가지만 선택해 관객에게 전한다면?

▲ 결국은 소현도 제인도 뉴월드(신세계)에 도착하잖아요. “내년에 또 만나요”란 대사처럼 일종의 약속 같은 거였죠. 전 이 영화가 크게 인물이나 관객에 대한 위로의 태도를 보인다고 생각지는 않아요. 누군가를 함부로 위로할 순 없는 거고요. 공존, 함께 있고 싶다는 감정이 들었다는 관객의 코멘트를 들었을 때 힘이 났어요. 남. “그럼 된 거예요”란 제인의 대사처럼.

 

“이민지는 정말 유연하고 그 인물이 돼있었던 배우예요. 소현으로 있어줘서 덕분에 나도 제인으로 존재할 수 있었어요.”(구교환)

- 배우로서 현장에서 감독과 작업할 때 어떤 느낌이 드나요. 연출 마인드가 발동하지는 않나요?

▲ 일단 인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감독님은 얼마나 많은 커피를 마셨을까, 얼마나 고민이 심했을까? 배우는 감독이 만든 인물을 옮기는 메신저라고 생각해요. 물론 관객에게 편하고 친밀하게 다가가도록 디테일한 아이디어는 제공할 수 있겠죠. 하지만 전적으로 감독님의 디렉션을 따르게 돼요. ‘컷’ 하는 순간 절로 감독을 보게 돼요. 눈치를 본다는 게 아니라 감독님의 테이크 안에서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를 올바르게 옮겼느냐를 확인하는 거죠. 현장에 섰을 때 전 배우들에게 많이 의지하는 편이고요. 창작할 공간을 주고 어긋나지 않는다면 유연하게 대처하는 편이에요.

 

- 그간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 괴한, 일베 청년, 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역할에 도전하며 현실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캐릭터를 창조했다는 평을 듣고 있어요. 어떤 캐릭터에 끌리나요.

▲ 제가 시그니처를 가진 배우라고 생각지는 않아요. 순간순간 연기를 할 때 진심으로 하려고, 잘 전달하려고 노력할 뿐이죠. 그 과정에서 평가가 생긴 듯해요. 전 유머가 있는 인물을 좋아해요. 제인은 위기의 순간이 오더라도 유머를 잃지 않아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제가 한 인물들은 유머가 있어요. 인생에서도 유머는 매우 중요하잖아요.

 

 

- 연기와 연출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 학창시절 까불다 조용하다가...학년마다 다르긴 했으나 대중 앞에 서고 싶었어요. 내가 가진 이야기와 말을 전달하고 싶은 욕구가 많았던 거죠. 그래서 배우를 원했던 것 같아요. 특히 대학(서울예대 영화과)에서 학생들끼리 기말·졸업작품을 만들면서 영화의 전 공정을 배울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 만드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죠. 사실 편집하는 것도 좋아해요. 따지고 보면 영화 자체를 좋아하는 거 같아요. 요즘엔 경계도 허물어졌으니 영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거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정확할 거예요.

 

- 요즘 연출을 위해 시나리오 작업 중인 작품이 있나요?

▲ 시나리오 작업 중인데 이야기는 계속 바뀌고 있어요. 주변의 이야기에 늘 관심을 가지려고 해요. 만화적 상상력을 더해서 만들어내고 싶고요. 좋은 이야기는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은 가진 채 살고 있어요. 평소 음악, 만화 그리고 순간순간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 펀이에요.

 

- 감독 겸 배우 구교환이 앞으로 쌓아나가고 싶은 필모그래피는 무엇일까요.

▲ 대중과 함께 질문하게 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그 사람의 영화는 그랬어?’라기보다 ‘그 사람의 영화에서 그 인물이 왜 그랬을까?’ 식으로 가급적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곱씹어봤으면 해요. ‘포레스트 검프’를 보더라도 인물을 단언하진 않지만 각자의 소감이 다르 듯이요.

 

사진= 한제훈(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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