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9일 개막한 창작뮤지컬 ‘밀사: 숨겨진 뜻’(오는 11일까지·이하 ‘밀사’)의 청년열사 이위종으로 일찍 찾아온 무더위를 이겨내고 있는 배우 허도영(28)을 만난 날, 광화문 광장엔 적당한 햇살과 바람의 이중주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저녁 공연을 앞두고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 일제강점기 '헤이그 특사사건' 청년열사 이위종 재현

서울시뮤지컬단의 ‘밀사’ 초연 무대의 특별한 점 가운데 하나는 그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위종의 발굴이다. 왕족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11세부터 공사였던 아버지 이범진을 따라 해외생활을 해 7개국어에 능통했다.

조선판 금수저였던 그는 무기력한 왕실에 책임감을 느껴 독립운동에 투신하고, 1907년 고종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특별 사절단을 파견한 당시 이준, 이상설과 함께 특사 3인중 통역 담당 막내로 참여했다. 하지만 일제에 의해 반역자로 낙인찍혀 귀국하지 못한 채 연해주 독립군 지휘관, 러시아 군사학교를 거쳐 공산당에 가입한 뒤 타지에서 비극적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뮤지컬 ‘밀사’는 21세의 혈기왕성한 나이에 투입된 헤이그 특사사건과 이후 드라마틱한 이위종의 삶을 조명한다. 특히 올해는 탄생 130주년인 해다.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실존인물을 처음 표현하고 알리는 거라 책임감이 막중했어요. 어린 나이인데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탄탄대로를 포기하고 가시밭길을 선택한 애국심과 굳은 의지에 존경심, 감격하는 마음이 절로 생겨났죠.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밀고나간 면모를 현세대 관객들이 꼭 알아야한다는 사명감이 생겼고요.”

 

 

■ 중저음 극복...많은 넘버 처리와 고음 구사

각별한 마음으로 참여했으나 배우로선 간단치 않았다. 음악적인 면에 치중한 작품이라 거의 송 스루에 가깝게 넘버들이 많다. 초반 한 두신을 제외하고는 항상 무대에 있어야 하기에 전체 넘버 중 서 너개를 빼고는 독창, 이중창, 삼중창, 합창으로 연이어 불러야 한다.

“제 음역대가 원래 중저음인데 노래 대부분이 고음역대로 절규하듯 소화해야만 해서 이번엔 보컬 레슨을 철저하게 받았어요. 누나(서울시합창단원)로부터 조언도 많이 들었고요. 그래도 처음엔 목에 무리가 가 음이탈이 생기고, 목소리도 갈라지고 그랬어요. 컨디션 관리를 정말 잘해야 해요. 조금이라도 안 좋으면 티가 확 나거든요. 이번에 정말 좋은 경험을 하고 있어요.(웃음)”

그나마 경험과 훈련 덕분에 조금은 편안하고 수월하게 대처하는 중이다. 불과 1~2초 사이에 무대 뒤에서 물을 마신 뒤 빨리 돌아오는 여유까지 생겼다. 무엇보다 대사보다 노래를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데 관심이 치솟던 시기에 만난 작품이라 원 없이 욕망을 충족시키고 있다.

“선생님의 당돌함, 강력한 추진력을 전달하는데 집중하고 있어요. 개막 초반부엔 전체적 흐름을 파악하기보다 장면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전체적인 감정의 변화와 흐름을 읽게 되면서 느끼는 것도 많고요. 기회가 되면 안중근 열사를 소재로 한 뮤지컬 ‘영웅’에 출연하고 싶어요. 이번에 토대를 충분히 만들었다고 자부하니까요.”

 

 

■ 연기 꿈 좇아 에이전시 탈퇴...서울시뮤지컬단 입단

의정부고교 시절 학교 밴드부 보컬로 활동하는 동시에 MBC 아카데미에서 연기를 배우며 엑스트라 체험을 했던 허도영은 세종대 영화예술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2008년 연극 ‘아일랜드행 소포’로 데뷔한 그는 연극과 영화에 출연하며 커리어를 쌓아왔다.

여느 배우들처럼 소속사에 적을 두고 스타가 되기 위한 스텝을 밟기도 했다. 2014년 드라마 ‘마녀의 연애’에선 반지연(엄정화)의 열혈청년 비서 재웅으로 호평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이듬해 서울시뮤지컬단에 입단, 막내로 차곡차곡 뮤지컬 배우의 길을 걸어오는 중이다.

“에이전시에 소속돼 있을 때 어느 순간부터 ‘내가 뭘 하는 게 정답일까’란 고민이 밀려들더라고요. 하고 싶은 분야는 다양한데 드라마·영화로만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그랬어요. 긴 호흡을 가지고 진짜 연기를 할 기회가 많지 않았고요. 답을 찾은 게 연기와 노래를 동시에 할 수 있는 뮤지컬이었어요. 뮤지컬 한 두편을 하면서 누나를 통해 관계자들을 알게 됐고,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창작뮤지컬에 매료돼 서울시뮤지컬단에 들어오게 됐죠.”

새로운 표현법과 공부에 대한 열망은 입단 이후 만족스러울 정도로 해소해가고 있다. 대사 연기에 노래를 섞어서 사용하다보니 음악의 힘을 받아 감정이 더 많이 표출됨을 느꼈다. 지난해에는 창작뮤지컬 ‘서울의 달’에서 상경한 제비족 홍식을 매끄럽게 소화해 찬사를 얻었다.

“홍식과 이위종이라는 정반대 색깔의 캐릭터를 연달아 하게 돼서 감사하죠. ‘서울의 달’도 재밌어 하는 연기였지만 진지한 정극, 비극적인 느낌을 더 선호해요. 가장 좋아하는 건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하는 거죠. 대학 시절엔 희극적인 캐릭터도 많이 했거든요. 졸업 후엔 완전히 웃기는 역할을 해본 적은 없어서 기회가 오면 꼭 해보고 싶어요.”

 

 

■ 홍광호의 노래, 박해일의 연기 '롤모델'

중3 때 우연히 TV에서 배우 황정민의 메이킹 필름 장면을 보면서 배우의 꿈을 키우기 시작한 허도영은 지금은 뮤지컬배우 홍광호의 노래 스타일과 영화배우 박해일의 솔직담백한 연기를 좌표 삼아 노력을 거듭한다.

진지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2인 뮤지컬 ‘쓰릴미’, 폭발하는 록 넘버들이 질주하는 ‘헤드윅’은 정복할 버킷리스트로 적어 놨다.

“관객이 저의 연기를 보면서 계속 기대하게끔 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작품을 볼수록 다음 작품이 더욱 기대가 되는. 그러려면 진짜의 감정을 관객에게 잘 전달해야 되겠죠. 요즘 날것의 감정을 테크닉으로 정리하는 방법에 치중하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사진 지중근(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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