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궁금합니다. 열 개의 키워드로 자신을 소개해주세요.

싱글이라면 누구나 무엇이든 픽업할 수 있는 Single’s 10 Pick.

 

 

(레인보우, 감성 노트 '어쩌다 혼자' 작가)

싱글’s 10 pick 요청을 받고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고민하는 동안 왠지 두근거렸다. 가족은 0순위이므로 그 다음의 열 가지를 선정해봤다. 선정의 기준은 아주 오래 전부터 나를 ‘나답게, 행복하게 하는 것들’.

1. 노트와 펜: 끄적끄적

뭔가를 기록한다는 것은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덧없는 순간을 붙잡는 행위가 아닐까.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것들을 천천히 들여다보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뭉툭해진 감성을 조금이나마 예리하게 다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그림 없는 동화책의 빈 공간, 노트, 스케치북에 끄적거렸다. 그저 좋아서 시작한 끄적거림은 습관으로 자리 잡았고, ‘호모 스크립투스’를 자처하며 꾸준히 쓰고 그린다. 어떤 단어를 고를까 수도 없이 고심하다가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지만.
 

초등학교 시절의 일기장

2. 책: 밑줄 긋기

물건을 소중히 다루려고 하지만 책만큼은 좀 괴롭히는 편이다. 책 표지를 선물용 포장지나 비닐로 싸기도 하고 밑줄을 긋지 않던 시절이 있었지만 오래전부터는 책을 읽을 때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으면 반드시 밑줄을 긋고 메모를 하고 책갈피를 끼워놓곤 한다. 밑줄을 그을 때는 연두색 형광펜이나 파란 볼펜 등을 사용한다. 책을 펼치면 다른 사람이, 다른 인생이 있다. 나는 기꺼이 참여한다.

3. 외국어: 꾸준한 습관의 힘

계급론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지금의 용어로 말하자면 나는 소위 ‘흙수저’ 출신이다. 대학 시절 공부를 열심히 한 덕에 (1학년 2학기부터) 졸업 때까지 수석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할 수 있었다. 

해외 유학파가 아닌데 몇 가지 외국어를 구사하다 보니, 어떻게 외국어를 잘 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외국어는 주로 음악이나 영화, 드라마 등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아주 오래된 이야기지만 초등학교 때 흑백 TV로 처음 본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헵번 주연의 ‘로마의 휴일’이라는 외화를 보면서 다른 문화의 단면을 접했다. 

이후 ‘토요명화’ ‘주말의 명화’ ‘명화극장’ 등 (흑백) 영화들을 놓치지 않고 챙겨보려 했다. 처음에는 영화의 내용이나 배우(성우)의 연기에 흥미를 갖다가 차츰 원어로 된 대사 등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라디오에서 샹송을 듣다 프랑스어를 전공으로 택했고, J-Pop과 일본 드라마 등을 통해 일어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외국어 공부는 근력 운동과 유사한 점이 많은 듯하다. 결심을 하고 달려들었다가 중단하기를 반복하지 말고 꾸준히 해야 한다. 그리고 관건은 자신이 좋아하는 장르를 선택하는 것이다. 어쨌든 외국어도 결국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대화를 나눌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심이 담긴 마음이다. 

 “스스로에게 마법을 건다. 잘 하자는 집착은 버린다. 다 하지 못한 말에 미련을 버린다. 문법을 세우고 문장을 짓고 단어 하나에 진심을 듬뿍 담는다. 문화가 다른 너와 소통하는 즐거움을 위해 멈추지 말고 끈기 있게. 그렇게, 일상이 되듯이.” -『어쩌다 혼자』중에서
 

 

4. 음악: No music, no life!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다시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부모님이 사다 주신 작은 라디오를 통해 어느 날 강렬하고 결정적인 순간을 체험했다. 힘이 넘치면서도 섬세하고 시원한 남자 가수의 목소리는 빛나는 태양 아래서 용솟음치는 분수와 같았다. 그 소리에 흠뻑 빠져 채널 고정을 하고 클래식 프로그램을 줄기차게 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성악가는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관심 장르가 넓어져 팝송, 샹송, (엄마가 좋아하시는) 경음악, J-Pop, 가요나 재즈까지 듣게 되었다. 삶이 막연할 때, 마음의 먼지를 탁탁 털어 내고 싶을 때, 왠지 기분 좋을 때, 물먹은 솜처럼 무거울 때…… 이런 모든 순간에 음악과 함께 한다. 음악이 없다면 사는 재미가 있을까? 

5. 성우: 목소리의 협주곡

옛날 옛적에 TV에서 외화를 방영해줄 때는 언제나 성우들이 더빙을 했다. 유강진, 김세한, 박일, 김도현, 박기량, 고 오세홍, 고 장세준, 김영선, 송도영, 이선영, 고 정경애, 강희선 등 주옥 같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면 마음이 흡족해지곤 한다. 어떤 영화가 방영된다는 소식을 들으면 노트에 내 맘대로 캐스팅을 하거나 실제로 연기한 성우들의 이름과 배역을 적던 성우 덕후였다. 

6. 미술관: 일상을 다르게 바라보기

잿빛 일상에 가끔 다양한 색깔을 입혀 보면 어떨까. 미술 사조에 얽매이지 말고 보고 싶은 그림들을 보러 미술관에 간다. 그림 속 일상은 우리네 일상과 닮아 있다. 일상에서 놓친 것들을 색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의 <이젤 앞에 앉아있는 엘리자베스 시달> 모사

7. 손편지: 아날로그

편지를 번거롭게 손으로 쓰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하나면 다 되는 LTE 급 속도와 인공 지능의 시대지만 나는 아직도 가끔 손으로 편지를 쓴다. 펜을 굴려 가며 편지나 엽서를 쓰면 왠지 글에 온기가 더해지는 것 같다. 인공 지능이 사람의 마음까지는 대체할 수 없다고 본다. 아날로그적인 삶을 아직 포기하고 싶지 않다. 내겐 어쩔 수 없는 면이 좀 있는데, 이런 어쩔 수 없는 습관과 고집이 도리어 나를 지탱해 주는 것 같다. 

8. 여행: 일상에 보내는 오마주

한때는 집 주변을 유유히 걷는 산책자를 자처하며 평생을 붙박이로 살 줄 알았다. 태어나서 처음 몸을 실었던 국제선 비행기로 12시간을 날아 어색하게 발 디딘 도시, 코를 찌르는 자극적인 향수 냄새가 공항을 가득 메웠던 도시 파리에 다녀오기 전에는. 순전히 내 의지로 지도 하나 달랑 들고 혼자 파리의 골목길을 누비며 들라크루아 미술관 같은 곳을 찾아 나서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물론 프랑스어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런 모험(?)을 감행하려 했을지 의문이지만.

“유랑하고 헤매고 돌아오는 거야.”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의 대사다. 나는 일상으로 돌아오려고, 일상을 더 잘 살기 위해 여행한다. 집으로, 직장으로, 나를 찾는 누군가가 있는 곳, 말하자면 우리의 자리로 돌아와야 한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여행은 일상에 보내는 오마주인 셈이다.

 

9. 꿈

우리는 시지프스가 맞다. 열정, 인내심, 의지 같은 것들을 늘 충전해줘야 매일을 맞이할 수 있으니까. 돌아보면 거창한 꿈을 꿨다기보다는 인생의 순간마다 크고 작은 꿈이나 소망을 키워왔던 것 같다. 별명 중에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는 ‘범생이’였지만 나름대로 크고 작은 도전들을 했던 것 같다. 내가 끄적거려온 원고를 무작정 출판사에 보내기도 했고, 하고 싶은 일, 입사하고 싶은 직장이 있을 때마다 이력서를 보내곤 했다. 

그때는 그다지 염두에 둔 적이 없지만 마크 트웨인의 말이 옳았다. “지금으로부터 20년 뒤, 당신은 한 일보다 하지 않은 일로 후회할 것이다. 그러니 배를 묶어둔 밧줄을 풀고 안전한 항구를 벗어나 항해를 떠나라, 돛에 무역풍을 가득 담아 탐험하고, 꿈꾸고, 발견하라.”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육체가 살아있어도 영혼이 죽었다는 뜻이다. 그건 곧 꿈이 없는 삶을 말하는 게 아닐까. 하루하루가 사막 같다고 느껴질수록 나만의 꿈을 꾸며 도전해보면 어떨까. 꿈은 사막의 샘이다. 

 

10. 초콜릿

프랑스 작가 발자크 같은 커피홀릭이 있다면 나 같은 초코홀릭도 있다. “초콜릿 없는 인생을 상상할 수 있어? 라는 말은 새가 없는 하늘을 상상할 수 있어? 와 같은 말.” 이런 문장을 쓰게 될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 내 취향의 지도에도 변화가 있었다. 

밀크 초콜릿은 하루의 끝, 고군분투 최선을 다한 나 자신에게 선사하는 긍정의 에너지이기도 하다. 누구나 이런 생활 비타민 하나쯤 가지고 살아가면 좋지 않을까.

그림:『어쩌다 혼자』중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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