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 수식어를 뛰어넘어 유럽의 대표적인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우뚝 선 조성진이 신보 ‘방랑자’를 오는 5월 8일 발표한다. 세계적인 음반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과 네 번째 스튜디오 레코딩인 새 앨범에는 젊은 거장의 새로운 음악세계를 확인할 수 있는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과 베르크, 리스트의 작품이 담겼다. 프랑스 파리를 떠나 독일 베를린에 체류 중인 조성진과 e-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 스스로 초점을 맞춘다는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의 상상력과 구조성, 진보성은 어떤 것이라 생각하나?

▲ 보통 소나타 경우 1악장과 2악장 사이에 쉰다. 그런데 악장간에 쉼 없이 한 악장처럼 만들었다는 진보적인 마인드를 또 하나의 상상력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영향을 받아서 리스트가 자신의 소나타도 그렇게 작곡을 했다. 리스트는 ‘방랑자 환상곡’을 좋아해서 오케스트라 편곡 버전을 만들기도 했다. 1882년도에 작곡됐는데 당시에는 찾아보기 힘든 시도였다. 베토벤도 물론 아이디어가 많고 진보적인 작곡가였고, 슈베르트는 그런 그를 존경했기 때문에 둘이 통하는 무언가도 있었던 거 같다.

 

- 현재 영화·건축·음악·디자인·클럽의 메카 베를린에 머무르고 있다. 도시의 분위기나 기운이 본인의 연주나 라이프 스타일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 베를린은 굉장히 기회가 많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있고, 꼭 음악이 아니더라도 아티스트가 자신의 예술적인 것들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외국인도 많다. 다른 독일 도시와 다르게 활기차다. 음악적인 것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냥 여기 오면 편한 느낌은 있다.

- ‘생각을 많이 하지 말자’가 인생의 모토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또 다른 인터뷰에선 무조건적인 연습 대신 쉬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도 했다.

▲ 생각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결론이 나온 거 같다. 그게 좋지 않구나,라는 생각에 이르게 됐다. 특히 무슨 결정 같은 걸 할 때 그렇더라. 사람은 살면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일이 많지 않나? 선택이나 결정을 할 때 너무 많이 생각하면 자신이 믿고 있는 것들이 헷갈릴 때가 있고, 의구심이 들게 된다. 항상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머리를 비우는 게 좋은 거 같다. 음악을 할 때 생각을 많이 하는 게 중요하지만 무대에 올라갈 때는 생각을 많이 비우려 한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음악을 표현하는데 있어 자신감 없이 주저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자신과의 대화가 중요하다.

 

- 쇼팽 콩쿠르 우승자로서 클래식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당신이 바라보는 ‘대중의 클래식화’는 어떤 모습인가?

▲ 클래식 음악을 팝이나 K-팝처럼 많은 사람들이 즐긴다는 것이 어렵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가로서 더 많은 사람들이 연주회를 찾아주고 음반을 들어주고, 클래식 음악을 더 알게 된다면 그거만큼 더 기쁜 일이 없을 것 같다. 클래식 음악에 입문할 때는 쇼팽의 ‘야상곡’처럼 익숙한 곡들로 먼저 시작하는 게 정말 도움이 된다. 클래식 음악은 바로크부터 현대음악까지 굉장히 방대한 게 또 매력이다. 다 들어보고 취향껏 음반도 사고, 연주회를 가는 게 ‘대중이 클래식화가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말러, 스트라빈스키, 모차르트, 베토벤, 스트링 콰르텟에 대해 얘기를 나눴으면 한다.

- 지난 5년을 돌이켜보면 어떤 성장을 이룬 것 같나. 피아니스트로서 청년 조성진으로서.

▲ 일단 시간이 정말 빨리 흐른 것 같아요. 2015년부터 2020년까지는 특히 그랬다. 벌써 한국 나이로 27살이다. 그래서 책임감도 더 느낀다. 브람스는 20대 초반에 피아노 콘체르토를 작곡했는데…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변화라고 한다면 연주하러 다니는 생활에 조금 더 적응이 됐다는 거? 성장을 했는 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신이 없다.

 

- 코로나19로 세계 공연가가 얼어붙은 가운데 온라인 콘서트가 하나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지난 3월 28일 세계 피아노의 날을 맞아 마티아스 괴르네와 슈베르트 가곡을 연주했다. 특별한 경험이지 않았을까 싶다.

▲ 마티아스 괴르네가 이런 아이디어를 줬다. 5년만에 처음으로 이렇게 오래 쉬고 있다. 마티아스 괴르네는 커리어가 30년이 넘었는데 30년만에 처음이하고 한다. 뭔가를 해야겠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사실 음악가들 중에 워커홀릭이 많다. 나도 마찬가지고. 관객 없이 라이브를 하는 건 처음이었다. 처음엔 어색했는데 나중에는 정말 콘서트하는 거처럼 에너지를 느꼈다. 도이치 그라모폰의 세계 피아노의 날 라이브 스트리밍에도 참여했는데 집에서 피아노를 치는 걸 보여주는 건 처음이었다.

 

- 음악의 역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 하루종일 집에 있다보니 다른 때보다 요즘 음악을 더 많이 듣고 있다. 영화도 많이 보고. 그런 게 사람들의 여가생활이 될 수 있는 거 같다. 음악은 우리 삶에 필요한 존재구나, 다시금 느꼈다. 마땅히 할 게 없거나 위로가 필요할 때나 즐기려고 할 때나 필요하다. 이번 사태 때문에 음악의 중요성을 더 느끼게 됐어요. 그리고 일상적인 생활을 하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도 느꼈다.

-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음악이 있다면?

▲ 그냥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게 좋은 거 같다. 저 같은 경우는 피아노 음악을 연주자 위주로 듣고 있다. 에밀 길렐스도 있고, 피아니스트 브론프만이 지난해 말 뉴욕필과 베토벤 협주곡 4번을 연주했는데 너무 좋아서 처음 만나뵀다. 요즘 그분 연주를 많이 듣고 있다.

 

- 예술가로서 포기할 수 없는 게 있다면?

▲ 사실 난 특별한 취미가 없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친구들과 즐길 수 있는 시간은 포기 못하는 거 같다. 음악을 하려면 음악과의 거리감이 필요하다. 그래야 프레시(fresh)한 느낌이 드니까.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 인간 조성진을 행복하게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

▲ 무대에서 만족스러운 연주를 하면 행복하고 앞서 말했듯이 휴식시간도 행복하다. 사람들 편하게 얘기하고 맛있는 거 먹으면 행복해요. 여행 다니는 것도 재밌고 새로운 거 보고 경험하는 거 다 행복하다.

- 지난해 깜짝 지휘 데뷔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향후 계획을 들려달라.

▲ 다음 앨범은 쇼팽이 될 거 같다. 지휘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깊이 아직까지는 해본 적이 없다. 그래도 유럽에서 제안이 들어와서 만약 성사된다면 2~3년 안에 해볼 수 있을 거 같다. 자신은 없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레파토리(피아노 콘체르토)는 할 가능성이 조금은 있다. 앞으로도 좋은 오케스트라, 콘서트홀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초청을 받고 이런 게 계획이자 도전이다.

 

- 당신을 응원하는 한국팬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 항상 많은 관심을 보내주셔서 감사드린다. 7월 한국 공연이 성사되길 바란다. 어렵고 힘든 시기지만 우리는 곧 극복할 수 있을 거다.

사진=Christoph Köstlin, D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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