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좀 마신다' 하는 사람이라면 류강하 브루마스터의 존재를 모를 리 없다. 자신을 '맥주장이'라고 소개하는 류강하는 독일에서 7년간 맥주 양조기술을 배우고, 현재는 국내 소비자들을 만나 호흡하는 열혈 강사다. 그는 갑작스러웠을 인터뷰 요청에도 "슬픈 콘셉트인가요? 아니면 밝게 갈까요?" 라며 응하는, 어떤 이야기든 꺼낼 준비가 돼 있는 유쾌한 프로페셔널이었다.

 

 

류강하 강사의 삶에서는 과감한 도전의식이 엿보인다. 당시만 해도 새로운 분야였던 인터넷 사업에 어린 나이로 뛰어들었고, 또 7년간의 직장생활을 뒤로 하고 20대 후반 무작정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류강하 강사는 나우콤을 시작으로, 프로농구팀도 갖고 있었을 정도로 수많은 계열사를 지녔던 골드뱅크, 조인스닷컴을 거치며 온라인 기획·마케팅을 담당했다. 7년간 직장생활을 하다 2003년 10월 무작정 독일행 비행기를 탔다. 언어도 모르고, 관련 정보도 없었던 '맨 땅에 헤딩'같은 유학이었다. 

"업계 특성상 밤샘이 많아 일주일 동안 집에 못 들어가는 일이 많았어요. '내가 마흔살이 됐을 때 뭘 하고 있을까' 생각해보니 그리 미래가 밝아보이지 않았죠. 이건 아니란 생각에 독일로 가게 됐어요."

독특한 점은, 맥주보다도 독일에 대한 관심이 먼저였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독일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대학을 다니지 않아도 전문가란 타이틀을 갖고 윤택하게 살 수 있는 '마이스터 제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결정적 계기가 된 건 '마이스터의 세계'란 2부작 TV 프로그램이었다.

여기에, 당시 2002년 월드컵과 함께 소규모로도 맥주를 제조할 수 있는 관련 법률이 제정되고 하우스맥주집이 생기며 새로운 맥주의 세계에 눈을 떴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밀맥주 '프란치스카너'를 맛본 류강하 강사는 '이런 세계도 있구나'라며 놀라게 됐다. 평소 동경했던 독일과 좋아하는 맥주의 만남, 곧장 비행기표를 끊었다. 

 

 

2003년 10월 도착한 독일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류강하 강사가 목표한 맥주 교육학교에 들어가기 위해선 주류회사에서의 3년 실습이 필수였다. 그는 정부 기관, 학교, 맥주 회사, 바이에른 주 의회 등 50군데에 자기소개와, 현 사정을 말하고 도움을 부탁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이 문제로 인해 바이에른 주 의회가 열렸을 정도다. 그러나 당시 한국은 개발도상국으로 분류됐던 터라, 비자와 노동허가서를 받지 못해 약 1년만에 독일을 뜨게 됐다.

두 번째 방문은 2005년 7월이었다. 계속해 편지를 주고받던 맥주 회사 사장과 친해졌는데, 그의 지인인 정부 고위관리가 보증을 서준 덕분에 레겐스부르크에 있는 맥주회사 바이에른 Brauerei Plank에서 근무하게 됐다. 

3년간 현장 근무 후, 2008년에는 뮌헨의 Doemens Akademie 맥주양조책임자 과정을 밟게 됐다. 회사에서 맥아의 선택부터 맥아즙을 어떤 온도에서 가공해야 하는지 등, 실무적인 내용을 배웠다면 학교에서는 유기화학, 무기화학, 수학, 물리학, 기초화학, 기계 등 이론을 학습했다. 

"맥주를 배우기 위해 유학을 가고픈 친구들의 유학상담을 많이 했어요. '맥주를 맛있게 만드는 방법'을 배울거란 생각으로 갔다가 학교에 가서 실망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미 맥주공장에서 몇 년간 일했던 사람들이 가는 학교이기 때문에 '왜 이렇게 만드는지' 그 이유와, 발생할 수 있는 문제와 해결책에 대해 배우거든요."

류강하 강사가 느낀 맥주의 매력은 무엇일까? 흔히들 브루마스터라고 하면 술을 좋아해 늘 진탕 취해 있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는 술을 많이 먹지 않고 조금씩 다양한 종류를 맛보는 것을 즐기고, 과학적인 맥주 제조 과정에 매력을 느낀 경우다.

"마틴 루터가 'Bier ist Menschenwerk, Wein aber ist von Gott!'(맥주는 인간이 만들고 와인은 신이 만든다)는 말을 남겼어요. 흔히들 이 말을 '맥주가 와인보다 못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지만, 사실은 거꾸로 인간과 과학의 위대함을 의미하죠. 와인은 숙성 시기와 재배지, 즉 인간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요소들이 중요하지만 맥주는 만드는 사람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똑같은 재료를 10명의 브루마스터에게 줘도 전혀 다른 맥주를 만드니까요. 그만큼 내 의지대로 설계하고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맥주의 매력이예요."

 

 

류강하 강사의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귀국 후엔 강사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됐다. 독일 유학을 마치고 2011년 8월에 귀국하니, 한국의 맥주산업은 과거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맥주 산업이 과거에 비해 성장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는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2002년도엔 맥주 제조장이 강남대로에만 9군데, 서울 35군데, 전국 150군데가 있었어요. 2008년까지 성장하다 미국 금융사태 등 문제로 인해 전국 30여곳으로 줄어버렸죠."

류강하 강사는 귀국 후 맥주제조업자로 일할 생각이었지만, 이런 현실적인 변화와 평소 사람들에게 지식을 쉽고 재밌게 전달하던 재능을 살려 강사로서의 활동에 나서게 됐다.

현재는 다수의 아카데미, 문화센터 등에서 맥주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맥주 시음, 수제맥주 만들기, 캔맥주로 집에서 수제맥주를 만들어볼 수 있는 '홈 브루잉', 직접 맥아를 이용해 맥주를 만드는 과정, 맥주에 얽힌 이야기, 독일에서 직접 겪은 에피소드 등 강의 콘텐츠는 풍성하다. 특히 류강하 강사가 강의를 다니며 많은 소비자들을 만나기로 결심한 덴 남다른 이유가 있었다. 

"맥주산업이 몇 천억 단위이고, 마트엔 세계 맥주가 가득 진열돼 있지만 결국 소비자가 택하는 건 매번 마시던 맥주예요. 산업의 규모가 커졌다고 해도 양적인 성장일 뿐이지, 질적 성장이라고 보긴 어려워요. 소비자가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맥주가 있고 즐길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한데, 강의를 통해 이 사실을 직접 알릴 수 있어 기뻐요."

가장 흔히 찾는 술이 맥주지만 이런 의미에서 류강하 강사는 진정한 '맥주 대중화'는 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가 생각하는 '맥주 대중화' 시점은 언제일까. '먼나라 이웃나라', '식객' 등으로 각각 대중에 친숙한 이원복 교수, 허영만 화백이 맥주 관련 서적을 낸다면 그 시기가 온 것이라고 몸소 느낄 수 있을 것 같단다. 물론 류강하 강사 본인도 독일 인문학과 여행 콘텐츠를 접목한 맥주 책을 작업하는 중이다. 

류강하 강사는 지금도 독일을 오가며 배움을 지속하고 있다. 2015년에는 맥주의 98%를 차지하는 물의 중요성을 생각해, 물의 성분을 구별하고 사람에 따라 알맞은 물을 추천해줄 수 있는 '워터 소믈리에' 자격증을 땄고, 지금은 '마스터 오브 비어' 과정을 밟고 있다. 한번 배울 때면 2달 정도 해외에 나가는데, 현재 싱글인 까닭에 이런 입출국 문제는 보다 편하다고 했다. 

류강하 강사와의 인터뷰에는 그의 삶과 맥주 이야기뿐 아니라 다양한 인문학적 이야기, 독일의 역사 등이 넘실거려 더욱 즐겁고 유쾌했다.

여전히 쉼없이 맥주의 즐거움을 전하고 있는 류강하 강사는 이 말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마틴 루터가 남긴 말인데요. 'Wer viel Bier trinkt, schläft gut. Wer gut schläft, sündigt nicht. Wer nicht sündigt, kommt in den Himmel.' 즉 '맥주를 마시면 잠을 잘 잘 수 있고, 잠을 자는 동안은 죄를 짓지 않는다. 죄를 짓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뜻이예요. 그러니 천국에 가기 위해 맥주와 함께 하세요!"

 

 

사진=라운드테이블(지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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