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에 이어서…

“처음 카메라 앞에 섰을 때 눈을 가리고 술래잡기를 하는 느낌이였어요. 연극은 일단 막이 오르면 정해진 약속 안에서 배우가 얼굴 각도, 시선, 대화 템포를 다 생각해서 포커스를 옮기 거든요. 근데 드라마는 감독님 머리속에 있는 걸 제가 모르잖아요. 좋은 의미에서 ‘좋은 부품’이 제대로 돼야 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가 관장하고 주도했던 무대에서 완전히 다른 곳으로 왔다고 해야 할까요? 10~20년 무르익어서 익숙해지면 그때는 그 안에서 제가 놀 수 있겠죠”

대학 졸업 후 출연한 연극만 100여 작품에 달한다는 이수미. 서로 알음알음하는 대학로에만 줄곧 있다보니 포털사이트를 검색 했을 때 나오는 출연작도 많지 않았다. 이전까지는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프로필의 중요성을 크게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 이처럼 배우 생활을 이토록 길게 했지만 연극 무대에 있을 때는 미처 하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을 TV를 통해 하고 있는 요즘이었다.

“연극을 30년 동안 했지만 아무도 길에서 저를 몰라봤거든요. 그런데 TV는 정말 오픈된 곳이구나 싶었어요. 찰영을 하러 갔다가 주변 식당에 식사를 하러 갔는데 어머니들이 ‘사풀인풀’ 때문에 알아 보시더라고요. 못 알아보실 줄 알았거든요. 공연은 성실하게 하면 첫 공연때 관객들 박수소리가 뜨거워요. 그러면 ‘내가 잘못된 길로 오지 않았구나’ 막공까지 힘을 낼 수 있어요. 방송은 댓글로 반응이 오더라고요. 좋은 댓글도 있지만, 낯선 무명배우가 나오니 부정적인 의견도 있어서 속이 상했어요. 25년 동안 내 공연을 보면서 박수를 보내준 관객들이 너무 감사하다 싶기도 했어요. 그 분들 마음이 너그러우셨구나 싶었어요”

사실 말은 겸손하게 하지만 임상수 감독의 작품 ‘그때 그 사람들’, ‘오래된 정원’에 출연한 이후에는 영화 캐스팅 제안도 있었다. 이때만 해도 이수미는 무대를 떠날 생각이 없어 모두 고사해왔다.

“임상수 감독님 영화 ‘그때 그 사람들’에서 한석규씨 부인 역할로 한 장면 나왔어요. 감독님이 공연을 보고 같이 하자고 하셔서 그 제안이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그 다음 ‘오래된 정원’에서 지진희씨 운동권 후배로 출연을 했었어요.. 감독님께 감사해서 두 작품을 했지만, 이후에는 너무 무서워서 안 하겠다고 거절을 했거든요. 주변에서 계속 동료들이 영화를 해보라고 해서 ‘단역부터 시작하는 거지’ 싶어서 단역 오디션도 보러 갔었어요”

연기 초년생의 마음가짐으로 새로운 환경에서 도전하고 있지만, 아직은 역할이 한정적이다. ‘사풀인풀’, ‘슬의생’은 특히 가사도우미라는 공통분모가 있고 크게 보자면 ‘그 남자의 기억법’ 역시 인심좋은 인상이 전작품들과 비슷한 캐릭터 선상에 있기 때문. 유난히 경쾌한 이미지가 많아 연극에서도 희극을 많이 했었냐는 질문에 이수미는 “저도 이렇게까지 밝은 역을 계속할 줄은 몰랐어요”라고 전했다.

“제가 아직은 드라마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겠지만, 연극에서도 다양한 역할이 있잖아요. 한편의 드라마로 모든 걸 다 보여주겠다는 생각은 버리고 발을 들였어요. 주어진 대본을 충실하게 해가다보면 어느 순간 다른 역할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도 오지 않을까요. 배우로서 욕심을 조금 접고, 성실하게 하는게 중요하겠다 싶어요”

고정적인 역할로 이미지가 박히는 데도 큰 두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신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찬 소녀같은 모습이 보는 사람도 유쾌하게 만드는 에너지가 있었다.

“많은 선배님들이 그런 고민을 이야기 하셨어요. 저도 분장을 하고 연기를 할 때는 7~80대로 보는 분들도 많으셨 거든요. 브라운관은 그럴 수가 없잖아요. 무대에서는 나이대 상관없이 어떤 역할이라도 했지만, 여기서 내가 과연 어떤 역할로 쓰임 받을까 궁금해요. 양희경 선배님이랑 더블캐스팅으로 ‘자기앞의 생’을 했어요. 양희은 선배님이 드라마에서는 사건을 일으키고 센 역할을 해서 목이 마르셨대요. 근데 연극에 오면 다양한 역할을할 수 있으니까 고향같다고 하시더라고요. 배우가 경험상 나이테가 두꺼워지면 다양한 역할이 주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사진=식스오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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