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색소폰 연주자로 케니G, 찰리 파커, 존 콜트레인, 스탄 게츠, 브랜포드 마샬리스, 데이비드 샌본 등의 이름이 쉽게 떠오른다. 재즈와 퓨전재즈 장르에서 활약한 명 연주자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세기 클래식 거장인 프랑스의 마르셀 뮐이나 독일 출신 미국인 시거드 라쉬어의 이름은 생소하다.

훈남 색소포니스트 브랜든 최(32·최진우)가 색소폰 불모지나 다름없는 국내 클래식 음악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17일 디지털 싱글 ‘캐논 판타지 포 솔로 색소폰’을 발표한 그를 방배동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색소폰 역사가 짧아서인지 클래식 하는 분들을 만나도 ‘색소폰이 클래식 악기야?’란 말을 하세요. 그럴수록 이 악기의 매력을 더 알려야겠단 생각을 단단히 하고, 더 노력하게 되더라고요. 흔히 색소폰을 금관악기라고 여기는데 실제 목관악기죠. 대중매체에 트로트 반주 악기로 많이 소개돼서 그런 음악만 하는 악기로 인식돼 있기도 하고요. 그걸 깨는 게 저의 숙제이지 싶어요. 그래서 2년 전부터 유튜브 채널(브랜든TV)도 운영 중이에요. 구독자 수는 1만2000명 정도 되고요.(웃음)”

그가 본격적으로 색소폰에 입문한 시기는 서울고 2학년 때였다. 교내 윈드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고는 깊이 매료돼 입단, 색소폰을 불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 기타, 드럼을 배웠어요. 색소폰은 케니G의 CD 정도로만 알고 있었죠. 교내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 악기의 찬란한 황금색과 튀는 음색에 확 끌렸어요. 사람의 목소리랑 비슷해서였죠. 처음엔 부모님이 반대하셨어요. 특히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는 당연히 경영학과에 진학할 거라 생각했는데 ‘음악’을 들이미니 더욱 심하셨고요. 기나긴 설득 끝에 아버지가 ‘죽을 때까지 할 자신이 있느냐’고 물으시더니 제 대답을 듣자마자 바로 악기를 사주셨어요.”

고교 졸업 후 미국 유학 계획을 세웠다. 맨땅에 헤딩하기 식이었다. 직접 담당 교수 정보를 찾아본 뒤 자신의 연주 영상을 첨부한 e-메일을 보내 컨택트를 하고 연주 영상을 보냈다. 시험 기회를 준 신시내티 음대로 2011년 유학을 떠났다. 입학 전 레슨을 받은 뒤 다음날 오디션을 보고 1주일 뒤 장학금과 함께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담당 교수가 그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고난의 연속이었죠. 영어가 익숙하지 않으니 수업 때마다 강의내용을 녹음하거나 비디오로 촬영해서 밤에 다시 듣고 보기를 반복했어요. 남들보다 더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라 새벽 5시에 기상헤서 6시까지 학교에 도착해서 1교시 전까지 연습에 매진했고요. 수업이 끝나면 녹음했던 걸 들으면서 반복 연습을 했죠. 1년 정도 지나니까 친구들과도 친해지고 대화도 잘돼서 그때부터 무리 없이 학교생활에 적응했어요.”

미국의 클래식 음악교육 환경은 ‘No 장르구분’이었다. 지도교수였던 제임스 번트 역시 클래식을 하면서 재즈음악도 연주하는 이였다. 늘 그에게 다 도전해보라 권유하며 플루트 연주도 가르쳐줬다. 재즈수업도 듣고 밴드 활동까지 하면서 음악적 스펙트럼을 확장했다. 가장 큰 성과였다.

신시내티 음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프랑스로 향했다. 학창시절 틈틈이 프랑스에서 열리는 음악캠프나 아카데미에 참석했는데 그때 인연을 맺은 교수들에게 공부하고 싶은 생각에 리옹 국립고등음악원 최고 연주자 과정에 입학했다.

해외 유학 시절 음반을 발표했다. 지난 2012년 국내 최초로 클래식 색소포니스트로서 크로스오버 앨범 ‘해피데이’를 선보였고 직접 작·편곡에 참여한 ‘더 색소폰 송’에 이어 지난해 ‘블루베리 잼’을 발매했다.

“첫 앨범이 ‘해피데이’인데 당시 클래식 색소폰 장르가 너무 알려지지 않아서 대중의 낯섦을 덜어내기 위해 조금 더 가볍고 쉽게 다가가야겠다 싶어서 크로스오버 곡들을 담았어요. ‘블루베리잼’은 색소폰 비트박스와 테크닉을 활용해 대학 동문인 되렉 브라운의 곡을 직접 편곡한 거고요. 정규 클래식 음반으로는 2015년 미국에서 ‘색소폰 소나타스’를 발표했죠.”

이번에 발표한 ‘캐논 판타지 포 솔로 색소폰’은 파헬벨의 ‘캐논’에서 영감을 얻은 작곡가 오은철이 브랜든 최를 위해 만든 곡으로, 음역대가 다른 색소폰 4대(소프라노·알토·테너·바리톤)를 사용해 다채로운 음색에 화려한 스킬, 격정적으로 휘몰아치면서도 절제미를 갖춘 연주가 두드러진다.

“작곡가와 함께 캐논 주제 레퍼런스를 검토한 뒤 4성부 색소폰을 다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어요. 색깔들이 잘 맞음에도 색소폰 4개를 모두 사용한 곡이 많지 않거든요. 클래식 색소폰의 다른 음색과 텍스처의 매력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연주자들의 경우 보통 알토를 한 뒤 소프라노, 앙상블을 하면서 테너와 바리톤 색소폰을 접하게 돼요. 저도 알토 색소폰을 많이 연주하고 좋아해요. ‘캐논 판타지’에도 하이라이트에는 알토 색소폰이 많이 등장하죠.”

2016년 9월 귀국했다. 연주자로서 보고 배운 것들을 한국에서 펼치고 싶었다. 국내 교육계 환경도 바뀌어 인맥 대신 3~4차에 이르는 오디션으로 강사직에 도전할 수 있었고 현재 9개 대학과 3개 예고에 출강하고 있다.

“학생들이 졸업 후 진로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커요. 긍정적인 얘기를 많이 해주죠. 이 시대에는 어떤 전공을 하던 막막한 거는 마찬가지잖아요. 그러므로 창의적인 생각을 하게끔 조언해줘요. 유학이든 공연기획이든 교육이든 자신의 진로를 결정해 정진한다면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거죠. 정보를 알려주고 인맥이나 단체를 소개해주는 방식이죠. 소수 악기지만 막상 부딪혀보면 할 수 있는 게 많고, 우리만이 가능한 게 분명 있거든요.”

국내 6인조 앙상블 ‘올댓재즈’ 공동 리더, 韓·러·日 트리오 앙상블 ‘1987 색소포니스트’ 멤버로도 활약 중인 그는 색소폰 음색처럼 윤기 흐르는 목표를 꺼내놨다. 많은 공연과 플랫폼을 통해 클래식 색소폰 연주자로서 악기 알리는 일에 매진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국내 대학에 현재까지 클래식 색소폰 정교수가 없기에 자신이든 제자든 이를 이룰 수 있도록 발판을 마련하고 싶다. 국내에서 클래식 색소폰 관련 국제 심포지엄이나 컨퍼런스가 열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 나혼자 산다! 혼자 사는 삶의 가장 큰 매력은 자유다. 음악가로서 살아갈 때 영감이 굉장히 중요한데 누군가에게 제약받지 않은 채 마음껏 이를 추구하고 누릴 수 있어서 좋다. 혼자 만의 시간을 갖거나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떠나고, 만나고 싶을 때 나간다. 강의와 연주가 없는 날이면 자전거를 타거나 운동하며 시간을 보낸다. 한강을 굉장히 좋아해 한강변을 산책하면서 힐링의 순간을 만끽한다.

사진= 최은희 기자 Oso0@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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