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개봉 잠정 연기된 후 넷플릭스를 통해 4월 23일 공개된 ‘사냥의 시간’에서 안재홍이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동안 순수한 역할을 주로 맡았다면 이번엔 매운맛이 살짝 첨가됐다.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를리날레 스페셜 갈라 섹션에 초청되며 상반기 한국영화 기대작이었던 ‘사냥의 시간’은 안재홍에게 연기자로서 도전을 펼칠 큰 무대였다.

안재홍이 연기한 장호는 네 친구들 중 가장 마음이 여린 캐릭터다. 겉으로는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지만 속엔 외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바짝 깎은 염색한 머리, 피어싱, 타투, 거친 피부 모두 장호가 어떤 인물인지 보여준다. 안재홍은 복잡해보이는 장호의 감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영화를 봤는데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준석(이제훈), 장호(안재홍), 기훈(최우식), 상수(박정민) 네 친구가 추격자 한(박해수)에게 쫓기는 모습이 긴박하게 느껴질 정도로 생생했어요. 1600석이 넘는 극장이 매진됐는데 해외 관객들의 숨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영화에 집중해주시더라고요. 그 이후에 여러 과정을 거쳐 넷플릭스를 통해 ‘사냥의 시간’이 공개돼서 기뻐요”

“장호는 속이 여린 인물이죠. 하지만 겉모습은 거칠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렇게 외로움 가득한 역할을 해본 적은 없었어요. 무언가에 상처 받고 버림받았을 것 같은 장호에게 중요한 건 공허함이었죠. 마치 벼랑 끝에 선 청춘 같아 보였어요. 그래서 애쉬 컬러로 탈색, 염색을 6개월 동안 박복하고 안쪽 팔에 타투를 새기려고 2시간 동안 작업했어요. 메이크업도 거의 하지 않았죠. 저는 평소에 발라드를 좋아하는데 일부러 힙합 음악을 들었어요.”

‘사냥의 시간’은 개봉 전부터 젊은 대세 배우들이 뭉쳐 기대를 모았다. 거기에 10년 만에 돌아온 ‘파수꾼’ 윤성현 감독 연출까지 더해 주목을 받았다. 안재홍 역시 “기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면서 함께 작업한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드러냈다.

“윤성현 감독님의 ‘파수꾼’을 좋아했고 그전에 내신 단편영화도 찾아봤죠. 저한테 감독님의 시나리오가 와서 신기했어요. 함께 작업하면서 집요함이 느껴지더라고요. 어떻게든 좋은 장면을 만들겠다는 그 집요함은 배우 입장에서 큰 도움이 됐어요. 제훈이형, 우식이, 정민이, 해수형 모두 좋아했는데 한 작품에 모여서 감사할 정도였죠.”

“제훈이 형은 이번 영화로 처음 만났어요. 감독님과 셋이 광화문 만둣집에서 만났을 때 금세 친해지게 됐어요. 우식이는 ‘쌈 마이웨이’에서 같이 출연했지만 같이 찍은 장면은 없었어요. ‘사냥의 시간’을 통해 정말 사랑하게 됐어요. 해수형은 캐릭터와 다르게 정말 재미있으시고 멋있으세요. 정민이는 분량과 관계없이 영화에 임팩트를 남겼다고 생각해요. 정민이를 이번에 처음 만났는데 빠른 87이더라고요. 저는 86인데 학번이 같아서. 음...조금 그랬어요.(웃음)”

‘사냥의 시간’은 근 미래를 배경으로 한 디스토피아 영화다. 차부터 건물 하나하나 섬세한 미술이 들어갔다. 디테일한 미술은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였다. 현실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근 미래에서도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는 것. 특히 장호는 그런 젊은이들의 표상이 된다. 안재홍이 장호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감정은 바로 젊은이들의 두려움이었다.

“디스토피아적인 배경이 현장에 구현됐어요. 하나하나 미술이 터칭 안 들어간 곳이 없었죠. 지하주차장 신에서는 현재 있을 법한 자동차가 하나도 없었거든요. 기훈의 차도 튜닝과 커스텀을 많이 거쳐서 디테일이 잘 담겼어요. 제가 그안에 장호라는 인물로 존재할 때 신났죠. 제가 총기 액션을 했을 때는 장호가 총을 잘 다루지 못하니 그 생경함을 잘 나타내고 싶었어요. 마치 군대에서 처음으로 사격장을 갔을 때 총성을 듣고 놀란 마음을 장호에 담으려고 했죠. 총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채로 한과 추격전을 펼쳤어요.”

“이 작품의 원동력은 네 친구가 인생 한번 바꿔보려고 발버둥 치는 것에서 나와요. 어떻게든 사람답게 살아보고자 하는 절박함이 현실의 젊은이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네 친구가 도박장을 털러가는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두려움을 안고 그곳으로 향하는데 긴장감이 커질 수밖에 없었죠.”

안재홍은 넷플릭스와 인연이 깊다. ‘응답하라’ 시리즈, ‘킹덤 시즌2’ 그리고 ‘사냥의 시간’까지 모두 넷플릭스에서 공개되고 있다. “‘사냥의 시간’이 190여개국에서 동시에 릴리즈 되니 설레죠”라는 안재홍은 이 영화를 통해 더 넓은 세계로 나가길 바라고 있었다.

“저도 ‘킹덤’ 팬으로서 시즌3를 기대하고 있어요. ‘멜로의 체질’ 촬영할 때였는데, ‘킹덤’ 촬영장은 ‘멜로의 체질’과 상반됐어요. ‘굉장하다’ ‘무시무시하다’는 느낌을 받았죠. ‘트래블러’ 촬영차 아르헨티나에 갔을 때 펍에서 종업원이 저를 넷플릭스에서 봤다고 하더라고요. 아마 ‘응답하라’ 시리즈 때문이었을 거예요. ‘사냥의 시간’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됐으니까, 앞으로 신기한 일이 많아질 거 같아요. 솔직히 저는 전세계 사람들이 저를 알아서 불편해졌으면 좋겠어요.(웃음)”

“그동안 순한맛 캐릭터를 보여드렸는데 ‘사냥의 시간’으로 조금은 매운맛을 선사할 수 있게 됐어요. 장호라는 인물이 되는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의미있는 시간이었죠. 앞으로도 다양하게 캐릭터를 맡고 싶어요. ‘사냥의 시간’이 그 발판이 됐으면 하네요. 치열했던 현장에서 배우들이 극한까지 갔던 그 경험을 저도 잊지 않고, 관객분들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사진=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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