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 프렌들리' 글로벌 기업 미란도는 인류 기아의 해결책으로 '슈퍼 돼지'를 생각해낸다. 슈퍼 돼지들은 10년간 전세계 농가에서 나눠 키워지고, 그중 하나가 한국의 산골소녀 미자(안서현)가 키우는 옥자다. 옥자는 슈퍼돼지 중에서도 가장 우수한 체격 등을 갖춘 스타로, 뉴욕 '슈퍼돼지 콘테스트' 무대에 서기 위해 미자의 동의 없이 끌려간다. 그러나 그동안 가족, 친구처럼 지내던 옥자를 보낼 수 없는 미자는 그를 구하기 위해 홀로 먼 길을 떠난다. 

 

 

12일 오후,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옥자'가 베일을 벗었다. '옥자'는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 넷플릭스가 투자한 작품이자 '설국열차' 이후 봉준호 감독의 4년만의 신작, 제70회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작품으로 기대를 모았다. 

극장배급 방식 관련해 칸영화제 측과 넷플릭스 측이 마찰을 빚는 등, '옥자'는 논란에 선 작품이었다. 이날 공개된 '옥자'의 독창성은 이런 논란을 끌어안고도 경쟁부문에 진출한 작품의 힘을 실감케 했다.  

미자의 외롭고 슬픈 사투로 예상됐지만, 실제로 공개된 '옥자'는 그보단 유쾌한 소동극에 가깝다. 가볍지 않은 주제인 유전자 변형 생물체(GMO), 동물권,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등에 비판적으로 접근했으나 담아내는 방식은 밝고 경쾌하다. 다채로운 영상미와 이야기는 판타지 영화, 동화를 보는 듯한 느낌도 선사한다. 후반부에는 보다 진지하고 어두워진다.

'봉테일'다운 디테일 유머, 명작 패러디는 심각한 장면에서도 웃음을 자아낸다.(특히 한국어와 영어의 통역 과정에서 오는 재미가 있는데, 해외 관객에겐 반감되리라 생각하니 아쉽다) 웃음만큼 감동도 진하다. 영화 내내 눈물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옥자를 향한 미자의 순수한 진심은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거대 기업 미란도의 주인 루시 미란도에게 맞서는 미자, 또는 스타 틸다 스윈튼을 상대로 연기한 14세의 안서현은 단단하고 강하다. 루시에게 미자는 '별난 애'일 수밖에 없지만, 거대 기업에 대한 불신으로 절대 타협하지 않고 끝없이 뛰고 구르는 미자는 그 존재로 사랑스럽다.

돼지, 하마, 코끼리, 매너티 등 다양한 동물의 요소를 섞은 옥자는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호랑이 리처드 파커를 실감나게 3D 작업한 에릭 얀 드 보어 시각효과 감독과의 작업으로 탄생했다. 옥자의 눈을 클로즈업할 때면, 그와 미자 간 흐르는 감정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틸다 스윈튼은 '설국열차'에 이어 극중 '싸이코패스'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인간미 제로의 소름끼치는 낯빛을 보여준다. 동물을 사랑하는 학자였지만 미란도를 만나며 달라진 조니(제이크 질렌할), 동물보호단체(ALF) 단원들도 개성만점의 캐릭터를 자랑한다. 

 

 

미란도와 옥자·미자 간 펼쳐지는 추격신에는 회현 상가를 포함해 서울 곳곳이 배경으로 담겼다. 명동 지하상가, 뭐든 '다있는' 유명 생활용품숍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액션신은 사뭇 신선하다. 

극 전반을 유쾌하게, 부담없이 볼 수 있지만 그 여운은 묵직하다. 인간은 동물과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까, 극장을 나오며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러닝타임 120분, 12세 관람가, 6월 29일 넷플릭스·극장 동시개봉.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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