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같은 명품 슈트에 외제차, 수준급의 영어 실력, 준수한 외모. '아임쏘리 강남구'의 강남구는 화려한 겉모습으로 부잣집 여자를 꼬셔 인생 한방 역전을 노리는 사기꾼이다. 속 빈 강정 같은 강남구지만 그를 연기한 배우 박선호(25)의 눈빛은 제법 진지하고 굳은 데가 있었다.

SBS 아침드라마 '아임쏘리 강남구'(극본 안홍란, 연출 김효언)가 지난 9일 120회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016년 12월 19일 첫 방송을 시작으로 6회 만에 시청률 10%를 돌파하더니 이후로 마지막 회까지 아침극 1위 자리를 지켰다. '아임쏘리 강남구'는 남편의 재벌 부모를 찾게 되면서 모든 것을 잃은 한 여자와 가족을 위해 성공만을 좇던 삼류 남자의 치명적이지만 순수한 사랑, 그리고 이들을 둘러싼 가족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작품이다.

12일 서울 성수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아임쏘리 강남구'의 주인공 박선호를 만났다. 실제로 만난 박선호는 "원래 성격은 좀 진중한 편"이라며 수줍은 미소를 지었다.

 

 

"매사에 진지하다. 풀어질 땐 당연히 풀어지는데 기본 베이스가 풀려 있진 않다. 편한 사람들 앞에서는 한없이 장난 꾸러기가 되지만 보통의 박선호는 조금 진지하고, 어떻게 보면 애어른 같다. 주변에서도 그런 얘기를 많이 듣는다. 나는 재밌을 거라고 생각하고 농담을 던졌는데 다 재미없어하고 그런다. 강남구는 정반대의 캐릭터여서 더 욕심이 났다. 자유분방한 날라리 캐릭터니까."

120부작 드라마의 주연을 탈 없이 해내는 배우가 됐지만 사실 그의 원래 꿈은 가수였다. 아이돌을 꿈꾸며 6년 여를 연습실에서 보낸 기억은 시간이 지나자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연습생일 때 내 목표는 가수뿐이었다.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고, 몇 년 동안 준비하다 보니 이게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다시 연습생을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그 당시엔 그것밖에 몰랐으니까 힘들어도 펑펑 울고 다시 아무렇지 않게 연습하고 그랬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내가 어떻게 했나 싶다. 그만큼 배운 점도 많았다. 힘들거나 자신을 잡아야 할 때 어떻게 그걸 이겨내야 하는지를 많이 터득했던 것 같다."

그룹 보이프렌드로 데뷔할 뻔하기도 했지만 데뷔의 기회는 번번이 엎어졌다. 그러던 그에게 어느 날 운명처럼 드라마 '황금 무지개'가 찾아왔다. 연기를 배워 본 적도 없던 아이돌 연습생이 갑작스럽게 오디션에 합격해 하루아침에 배우가 됐다.

 

 

"오디션을 진짜 열심히 준비했다. 이틀 정도 시간이 있었는데, 연습 끝나고 밤새워서 아역이 나온 부분을 다 봤다. 아역이 손 키스를 날리는 장면을 보고 나중에 가족을 만났을 때 그걸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준비해서 오디션을 봤는데 너무 긴장해서 그걸 못 보여줬다. 대본을 읽고 문 닫고 나오는데 그때야 생각이 나더라. 다시 돌아가서 감독님한테 준비한 게 있다고 하면서 손 키스를 보여줬다. 그랬더니 감독님들이 박수를 치면서 막 즐거워하시더라. 연기는 부족했지만 의욕을 좋게 봐 주셔서 캐스팅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

우연히 배우가 됐지만 연기는 생각보다 재밌었다. 혼이 나도 좋았고 못 해도 마냥 즐거웠다. 연기를 시작하고 3년이 지났을 땐 첫 주연까지 따냈다. 반년 동안 그는 강남구로 살았다. 친구를 만날 때도 강남구에서 벗어나지 못해 핀잔을 듣기도 했다.

"주연이다 보니 부담도 있었지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주연으로서 극을 이끌어 가는 게 쉽지 않았지만 즐기려 노력했다. 준비를 많이 하면 신나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지막 방송을 보고 나서도 끝났다는 게 실감이 잘 안 났다. 꿈도 계속 촬영하는 꿈을 꾼다. 아쉬움이 남을 줄 알았는데 아직 안 끝난 것 같아서 아직 잘 모르겠다. 내일도 촬영하러 가야 할 것 같다."

아역을 빼면 그는 촬영장에서 나이로 막내였다. 자기보다 몇 살 더 많은 형, 누나들로부터 형, 오빠 소리를 듣다 보니 나중에는 정말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 해 한 해 지나면서 얼굴이 바뀌는 것 같다며 더 나이 들기 전에 꼭 교복을 입고 학원물을 찍어보고 싶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학원물을 찍으면 같이 연기하는 20대 배우들이 다 또래 친구, 고등학교 친구처럼 느껴질 것 같다. 내가 연습생 생활을 일찍 시작해서 고등학교 때 기억이 많이 없어서 그런 것들도 느껴보고 싶다. 영화 '화산고'나 '품행제로', '말죽거리잔혹사' 같은 걸 해보고 싶다. 건들건들하고 반항기 넘치는 역에 도전하고 싶다."

스스로가 진지한 사람이어서일까, 그는 어딘가 삐딱한 캐릭터에 유독 욕심을 드러냈다. 박선호가 아이돌 가수를 꿈꾸며 스타쉽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이 된 계기도 사실은 거기에 있었다. 그는 불량 학생들을 선도하는 내용을 담은 2006년 KBS2 예능 프로그램 '품행제로'의 팬이었다며 눈을 빛냈다. 시종일관 차분한 태도로 인터뷰에 답하다가도 '품행제로' 얘기를 할 때는 소년처럼 즐거워했다.

"미니홈피로 어떤 회사에 쪽지가 왔다. 큰 회사도 아니고 유명하지도 않아서 처음엔 사기 아닌가 했다. 거기에 들어간 이유는 딱 하나였다. 그때 내가 중학생이었는데 '품행제로'가 엄청 유명했다. 완전 우상이었다. 잘생긴 사람들이 말하는 것도 재밌고 인기도 많으니까. '품행제로' 멤버 중에 한 명인 보이프렌드의 동현이 형이 그 회사에 있었다. '슈퍼스타가 있는 회사구나. 사기 아니구나' 해서 갔다. 지금도 동현이 형이랑은 친구처럼 지낸다."

박선호의 현재 슈퍼스타는 누구일까. 그는 조인성이 롤모델이라고 고백했다. 특히 영화 '비열한 거리'와 시트콤 '논스톱', 드라마 '디어마이프렌즈' '괜찮아 사랑이야' 등을 꼽으며 존경의 마음을 드러냈다.

 

 

"어렸을 때부터 정말 좋아했다. 연기도 굉장히 잘하시고 감정 표현에서도 닮고 싶은 점이 많다. 같이 작품을 하면 친분을 쌓을 수 있지 않을까. 친해지고 싶고, 배우고 싶고, 옆에서 졸졸 따라다니면서 잔소리도 듣고 싶다. 혼도 나 보고 싶다."

한편 박선호는 작곡을 하기도 한다며 의외의 재능을 밝혔다. 몇 년 동안 직접 가사를 쓰고 녹음을 해서 만든 곡이 벌써 스무 곡이 넘는다고 고백했다. 그는 나중에 드라마의 OST를 직접 만들어서 불러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에게 가수를 다시 해 볼 생각은 없냐고 묻자 "쉽진 않을 것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OST로 참여하거나, 팬이 많아져서 팬미팅의 기회가 생기면 팬분들을 위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건 너무 하고 싶다.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 달이든 두 달이든 밤을 지새우면서 연습할 거다. 근데 가수로서 데뷔를 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는 하고 싶은 연기가 너무 많다며 마지막 각오를 전했다.

"지금은 열심히 준비하는 것만 잃지 말자고 생각한다. 나중에 연기에 대해 자만심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것 없이 꾸준히 가고 싶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탄탄하고 폭넓게 연기하는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

사진 지선미(라운드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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