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의 선택이다. 질퍽한 웃음으로 늘 작품을 이끌었던 코믹연기 달인 이문식이 느리고 어두운 인물을 연기하고 있으니 관객, 스스로 모두 어색할 법하다. 하지만 숱한 해외 영화제에서 먼저 상찬을 들은 미스터리 판타지 ‘중독노래방’(감독 김상찬·15일 개봉)의 외딴 마을 노래방 주인 성욱은 이문식을 통해 기이함과 유머, 연민이란 다양한 감정의 외피를 껴입는다.

 

 

■ 느리고 염세적인 노래방 주인 성욱으로 터닝

“개봉을 할 수나 있을까 걱정했다. 대작들이 많은 시기다 보니 얼마나 많은 관객이 볼지 우려스럽다. 늘 기대 반, 걱정 반 심정이다. 두세 번 봤는데도 내 위주로 보다보니 걱정이 가중된다. 저 장면에서 (연기가)과한 게 아니었나, 부족하진 않았을까...생각해보니 ‘마파도’ 때도 제대로 보질 못했다. ‘중독노래방’은 상업영화 코드와 달라서 수위가 세다. 가족과 같이 보기도 쉽진 않다. 그래서 더욱 관객의 평가가 궁금하다.”

묘한 분위기의 지하 노래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성욱은 야동 중독자다. 불법 다운로드는 해도 불법 영업은 안 하려 했건만 밀린 월세 독촉에 결국 도우미를 구하게 된다. 그러면서 손님이 조금씩 늘어나고 연쇄살인범의 등장이란 충격적인 소문의 한가운델 빨려 들어간다. 영화가 진행되며 성욱이 꽁꽁 감춰뒀던 아픈 과거사가 하나씩 풀어 헤쳐진다.

“코미디를 벗어나 정극 느낌으로 가는 작품이라 해보고 싶었다. 여운을 주는 엔딩도 마음에 들었다. 문제는 그동안의 관습에 익숙해져서인지 연기하는 거 같질 않더라. 무기력하고 죽음을 목표로 사는 인물이라 답답하고 템포가 느렸다. 그렇다고 모든 걸 나버린 무기력한 사람은 아니고, 술 먹은 뒤 응어리진 마음을 토로할 때나 야동을 볼 땐 또 살아있는 모습이고...복합적인 캐릭터였다. 현실에서도 사람들이 아무리 힘든 상항이어도 먹을 거 먹고 살아가고 그러듯이 그 역시 마찬가지였을 거다.”

 

 

지난 2014년, 전남 광주 소재 노래방 세트에서 대부분 이뤄진 촬영도 만만치 않은 고통이었다. 배우로서 능동적으로 활동하는 공간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연기를 해내야 하는 것 또한 이 영화의 미션이었다.

“역할을 위해 한동안 끊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 분장실에서 1개월을 지냈다. 당시엔 소속사 없이 혼자 일할 때였다. 드라마 ‘유나의 거리’를 동시에 진행하느라 광주와 경기도 연천을 오가며 촬영을 강행했다. 졸음운전을 하지 않으려고 창문을 다 연채 운전을 했고, 휴게소에 들렀을 땐 3~4시간씩 내리 자버렸다.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상황이 성욱에게 자연스레 묻어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웃음)”

 

■ 6년 만에 주연 복귀...과거와 달라진 삶

‘미쓰 GO’ 이후 6년 만의 주연작이다. 감초 조연에서 빼어난 연기력을 인정받아 일약 주연으로 발돋움했던 그가 어느 순간부터 영화에서 보기 힘들어졌다. 특별출연으로 간간히 얼굴을 내밀었다.

“‘구타유발자’ ‘플라이 대디’ ‘평양성’ 등 주연작 5편이 연달아 흥행이 안됐다. 시나리오가 뜸해지기 시작했다. 조연 시나리오조차 안 들어왔고 1년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쉬게 됐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되고 힘든 시절이었다. 매체는 다르나 같은 연기이고, 쉬는 것보다 낫겠다 싶어 드라마 ‘일지매’ ‘선덕여왕’ ‘자이언트’ ‘기황후’ 등을 하다 보니 4년이 휙 흘렀다. 모니터를 보면서 감독과 함께 만들어가는 재미가 큰 영화에 대한 목마름이 항상 있었다. 그러다가 ‘중독노래방’을 만나게 됐다. 이 영화가 흥행 코드를 여럿 갖추고 있진 않지만 승부처인 퀄러티 면에서 만족도가 높다. ‘델리카트슨’ 느낌?”

 

 

시련의 시기를 거치는 동안 가장이자 아버지 이문식의 삶도 바뀌었다. 그의 두 아이는 사교육이나 선행학습에서 자유로운 12년 과정의 대안학교에서 8학년, 5학년 과정에 있다.

“최근 4~5년 동안 행복, 사랑, 소망과 같은 가치에 포커스를 맞추고 살아가고 있다. 애들이 해야 할 일은 노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면서 사회를 배워가야 나중에 이 아이들의 사회가 좋아지지 않을까 여긴다. 인지도나 수입이 많지 않더라도 애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그 무엇과 바꿀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다. 전에는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이젠 옆도, 뒤도 보게 됐다. 가족들과 함께 1일1식, 지금은 2식을 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돈을 많이 벌 필요가 없더라. 모든 게 다 맛있다. 결핍이 주는 행복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된다.”

가족의 일상은 소박하다. 연극배우 출신 아내는 아이들을 다 키워놓은 뒤 무대에 서리라 결심한 뒤 지금은 전업주부로 아이들을 키우고 성당에 다니며 소일한다. 이문식은 아침에 웨이트 트레이닝과 배드민턴을 치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아내와 술을 마시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거나 대안학교 학부모들과 자주 어울리곤 한다.

 

 

“배우로선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느슨해지긴 했다. 연극할 땐 모든 게 연기를 위해 존재했고 공연만 생각했다. 예민하고 치열한 부분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러진 않는다. 상대 배우가 후배라고 해서 지적질 하는 것도 좋아하질 않는다. 서로 캐릭터로 붙는 거지 선후배로 붙는 게 아니지 않나. 그런데 아무래도 연극무대에서부터 성장해온 사람들과는 자연스러운 합이 이뤄진다. (전)혜진이도 그렇고, ‘범죄의 재구성’ 때 김상호 박원상도 그랬고 현장이 재밌어진다. 항상 누군가 먼저 준비를 행기 때문에 긴장도 하게 된다.”

이문식은 오는 10월 개봉 예정인 ‘게이트’의 촬영을 막 마쳤다. 이번엔 코미디다. 선배 이경영과 좀도둑 매형 처남으로 출연한다. 코믹연기의 달인 임창정 정상훈 등과 호흡을 맞춘다. “임창정과 애드리브 배틀을 벌이느라 경영이 형한테 많이 얻어맞고 있다”고 너스레를 떠는 그의 눈가에 흥분이 일렁였다.

“인정받고 존경받는 배우가 되고 싶다. 일상인으로선 정의로운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현실을 외면하는 배우가 아니라 행복한 대한민국의 구성원으로서 열심히 살아가고 싶다. 그래서 훗날 아빠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구나란 얘기를 듣는 게 소망이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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