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우식은 올해 희로애락을 다 겪었다. 올 초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으로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오스카) 작품상 등 4관왕을 영예를 누렸다. 이어 ‘사냥의 시간’이 한국영화 최초로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를리날레 스페셜 갈라 섹션에 초대돼, 최우식은 영화제의 남자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사냥의 시간’ 개봉이 잠정 연기된 후 4월 23일 넷플릭스 공개될 때까지 진통을 겪었다. 그래도 최우식은 ‘사냥의 시간’ 공개에 기쁜 마음을 드러냈다.

‘사냥의 시간’은 근 미래를 배경으로 네 친구가 도박장을 턴 뒤, 추격자에게 쫓기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배우들 중 막내인 최우식은 기훈 역을 맡아 가장 현실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인물을 그려낸다. 캐릭터들 가운데 유일하게 부모가 존재한 기훈. 최우식은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연기를 기훈을 통해 보여줄 수 있었다.

“저는 ‘사냥의 시간’에 마지막으로 합류했어요. 이제훈, 박정민, 안재홍, 박해수 형들과 함께 연기하는 게 버킷리스트였는데 다 같이 ‘사냥의 시간’에서 만나게 돼 저한테 큰 의미가 있었죠. 제가 그동안 보여주지 못했던 거칠고 날 것의 연기를, 기훈을 통해 할 수 있다는 것에도 기대가 컸어요. 개인적으로 장르물을 좋아해요. ‘부산행’, OCN ‘텐’도 했는데 장르물이 체질인가 봐요. ‘사냥의 시간’은 추격자에게 쫓기는 친구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다가왔어요. ‘파수꾼’ 윤성현 감독님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작품에 끌린 이유였어요.”

“기훈은 친구들에게 많이 의지하는 인물이에요. 겁도 많고요. 그런 점이 저와 비슷했어요. 기훈은 자유로운 영혼처럼 보였어요. 그래서 감독님께 문신을 새기면 좋겠다고 제안했죠. 제가 한번도 기훈 같은 캐릭터를 한 적이 없어서 과감하게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감독님은 이미 기훈의 문신을 생각하셨더라고요. 기훈은 친구들 중 가장 현실적이에요. 유일하게 가족이 있으니 더욱 그랬죠.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기보다는 앞뒤 상황을 파악하며 친구들에게 조언할 수 있는 존재 같았어요.”

최우식은 이제훈, 안재홍, 박정민, 박해수 등 형들과 함께 ‘사냥의 시간’을 작업했다. 하지만 결코 이들에게 밀리지 않는 연기를 선보인다. 가장 현실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기훈처럼 최우식의 연기도 넘치거나 부족하지 않았다. 그 가운데 장호 역을 맡은 안재홍과의 브로맨스 케미는 시청자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윤성현 감독님은 제 연기를 더욱 발전시켜줬어요. 특별한 조언없이 ‘그냥 기훈의 느낌대로 가자’고 하셨어요. 배우가 느끼는 캐릭터의 감정을 이해하셨죠. 그런 부분이 진실되게 다가왔어요. 저와 제훈이 형, 정민이 형, 재홍이 형 모두 강한 성격은 아니에요. 그래서 추격자 한 역의 해수 형과 거리를 두게 만드셨죠. 영화 속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경계심을 불러 일으킬 목적이셨어요.”

“재홍이 형과의 브로맨스에 대한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니 첫 촬영을 재홍이 형과 찍었어요. 영화 오프닝 장면이었죠. 원래 롱테이크로 찍는 신이어서 서로 연기 욕심이 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죠. 그날부터 촬영 끝날 때까지 재홍이 형이 맡은 장호와 기훈의 관계가 잘 만들어졌어요. 기훈은 준석(이제훈), 상수(박정민)에게 장호한테 하는 것처럼 욕을 많이 하지 않아요. 장호와 기훈의 브로맨스가 시청자들에게도 잘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사냥의 시간’은 ‘마녀’의 액션과 달랐고, 테이크는 오래 갔으며, 시퀀스 촬영 기간은 말도 못하게 길었다. 최우식이 “정말 힘들었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사냥의 시간’을 통해 배우로서, 인간으로서 성장했다고 믿고 있었다. 자신이 기훈 그 자체가 된 듯 말이다. 최우식은 그만큼 기훈에게 빠져들어 있었다.

“‘사냥의 시간’은 모든 배우, 스태프가 치열하게 만들어낸 작품이에요. 배우로서 이런 영화 현장을 만나는 건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제가 튀어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한 호흡으로 연기하고 싶었고, 형들이 많이 도와줬죠. 저희가 지하주차장 촬영에 이어 1~2주 만에 병원 촬영을 마쳤을 때 환호성을 질렀어요. 그만큼 힘든 작업이었죠. 무엇보다 극을 이끌어가야 했을 제훈이 형은 엄청 힘들었을 거예요. 모두가 최고의 것을 보여주려는 게 눈에 보여서 정말 뜻깊은 현장으로 기억돼요.”

“그동안 저는 성장해가는 청년의 모습을 연기로 보여줬어요. ‘거인’의 영재, ‘기생충’의 기우, 그리고 ‘사냥의 시간’의 기훈까지요. 셋 다 선택의 결과가 좋지 않았지만 그것 또한 캐릭터가 성장했다고 생각했어요. ‘사냥의 시간’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디스토피아 세계 속 청춘들의 이야기를 다루잖아요. 네 청년이 일어나면 안 될 일까지 저지를 정도로 영화 속 세상은 각박하고 희망이 없어요. 그 안에서 기훈이 성장해가는 걸 보면서 저도 배우 최우식이 아닌 인간 최우식으로 한발 더 성장해가는 것 같았어요.”

최우식은 이제 글로벌 스타가 됐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는 K에서 M으로 바뀌었다. 그가 “‘사냥의 시간’이 넷플릭스로 공개돼 좋은 건 전세계 시청자들이 본다는 것”이라고 말할 만큼, 본인 스스로도 ‘기생충’ 이후 다음 작품을 빨리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한국영화 최초의 오스카 수상, 그리고 92년 오스카 역사의 첫 외국어 영화 작품상. 역사의 현장에서 최우식은 배우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오스카 이후 봉준호 감독님과 작품에 대한 것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요. ‘옥자’ 이후 제가 ‘기생충’에 캐스팅 될 줄도 몰랐고, 이런 결과를 기대하고 영화를 찍은 것도 아니었어요. 봉준호 감독님과 함께한 과정 자체가 즐거웠죠. 그 과정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는 좋을 거 같아요. 오스카도 오스카지만 저는 미국배우조합상(SAG)에서 영화부문 앙상블상을 받은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배우가 배우한테 주는 상이고, 여태까지 받은 트로피 중에 제일 무거워 의미가 남달랐어요. 이 상을 통해 앞으로 더 좋은 연기를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고, 스스로 채찍질하는 계기가 됐어요.”

“영화 세계를 바라보는 시야는 넓어졌지만 현실적으로도 생각이 많아졌어요. 칸국제영화제와 오스카를 통해 세상엔 정말 좋은 영화, 배우가 많다는 걸 깨달았어요. ‘언젠가는 저 배우와 연기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집에 돌아올 땐 ‘에이 아니지’하고 말아 버려요. 할리우드 진출을 무작정 노리기보다는 ‘기생충’을 통해 한국영화가 전세계에 인정받은 만큼, 한국영화로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사진=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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