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11년 ‘파수꾼’으로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을 받은 윤성현 감독이 9년이 지나서야 차기작을 들고 나타났다. 4월 23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사냥의 시간’은 ‘파수꾼’을 떠올리는 이들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윤성현 감독이 디스토피아 영화를 만들었다니. 9년 만에 돌아온 그의 화법은 달라졌어도 보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결같았다.

‘사냥의 시간’은 근 미래에 사는 네 친구가 현실에 불만을 느끼고 한탕을 벌이다가 정체모를 추격자에게 쫓기는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는 경제난, 실업난 등 경제적인 문제들을 꺼내며 청년들의 삶이 영화 배경인 미래에서도, 시청자들이 사는 현실에서도 각박하다는 걸 보여준다.

“젊은이들이 한국 사회를 지옥에 빗대서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헬조선이란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우화적인 이야기로 풀어보고 싶었죠. 여기에 장르적인 색채를 첨가해 ‘사냥의 시간’을 만들었어요. 무엇보다 현실적인 지옥도를 그리려고 했어요. 제가 여행을 다니면서 화폐가치가 붕괴되는 등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나라들을 봤거든요. 개인적으로 어린 시절 IMF를 겪기도 했고요. 그런 영향들과 장르적인 형태를 띤 디스토피아가 결합돼 ‘사냥의 시간’이 탄생했어요.”

“‘사냥의 시간’의 디스토피아적 분위기를 훨씬 더 극단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겠지만, 아포칼립스 같이 표현하기 보다는 지금 젊은 세대가 느끼는 감정들을 비주얼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췄어요. 저는 청년 새데 이야기에 관심이 많아요. ‘파수꾼’이 불안정한 인물의 감정을 섬세하게 다뤘다면 ‘사냥의 시간’은 장르적인 색깔을 많이 집어넣고 싶었죠. 두 영화의 결은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청년을 바라보는 관점을 같아요.

‘파수꾼’ 이후 9년 만에 복귀. 이 타이틀 만으로도 ‘사냥의 시간’과 윤성현 감독에 대한 기대는 컸다. 여기에 ‘파수꾼’에서 함께 작업한 이제훈, 박정민과의 재회도 기대치를 높였다. 촬영, 후반작업 기간도 길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개봉 잠정 연기됐고 법적인 문제가 더해지면서 윤성현 감독의 시간도 하염없이 흘러갔다. 결국 넷플릭스 공개로 영화가 빛을 봐 윤성현 감독은 조심스럽게 기쁜 마음을 드러냈다.

”‘파수꾼’을 찍고나서 4~5년 동안 준비한 작품이 있었는제 잘 안됐어요. 다음 작품으로 ‘사냥의 시간’을 준비하다보니 시간이 많이 흐르게 됐죠. 앞으로는 빨리 새 작품을 내놓고 싶어요. 그래서 오랜 기다림 끝에 넷플릭스로 ‘사냥의 시간’이 공개돼 감사하고 설렜어요. 코로나19부터 법적인 문제까지,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고통스러웠지만 덤덤해지려고 노력했어요. 모두가 어려운 상황에 처했는데 개봉 욕심을 내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죠.“

”이제훈, 박정민 배우는 ‘파수꾼’을 할 때부터 좋은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친구들과 작업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즐거웠거든요. ‘파수꾼’ 이후에도 그 누구보다 친한 친구가 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사냥의 시간’으로 만나게 됐어요. 박해수 배우는 ‘소수의견’에서 단역으로 나왔지만 저한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어요. 연극계에선 워낙 유명하신 분이잖아요. 직접 작품을 찾아보고 박해수 배우와 같이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졌죠.“

윤성현 감독은 ‘사냥의 시간’에 엄청난 힘을 쏟았다. 디스토피아적인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조명, 미술, 음향 등 뭐 하나 신경쓰지 않을 게 없었다. 거대한 디스토피아 세계를 보여주기 보다는 인물들의 상황에 초점을 맞췄고 이를 위해 다양한 기술이 사용됐다. 분위기 만으로도 현실과 다른 세계라는 걸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사냥의 시간’을 작업하면서 가장 공들인 건 미술과 CG였어요. 영화의 세계관을 잘 보여줘야했기 때문이죠. 사운드도 마찬가지였어요. ‘파수꾼’은 대사 위주의 영화여서 배우들의 말이 잘 들리기만 하면 됐는데, ‘사냥의 시간’은 대사가 많지 않아 배우들의 표정, 음악, 총격소리 등에 신경을 많이 써야했어요. 조명도 빼놓을 수 없었죠. 레드는 지옥의 느낌을 줘요. 지하주차장에선 그린, 병원에서는 블루. 장면이 가지는 색채를 정서적으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프라이머리의 음악을 좋아하고 즐겨듣는 입장에서, 그가 영화음악감독이 아니지만 같이 하고 싶었어요. 다행히 제 전작을 재미있게 보셔서 수월하게 작업할 수 있었죠. 프라이머리는 음악적인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은 아티스트예요. 제가 영화음악을 구상하면서 프라이머리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개인적으로 같이 작업한 게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사냥의 시간’이 공개되고나서 시청자들의 호불호 반응이 쏟아졌다. 윤성현 감독은 예상이라고 한 듯 ”영화를 보는 시각은 제각각이기 때문에 모두 존중한다“고 말했다. 그에겐 ‘사냥의 시간’이 큰 도전이었을 것이다. ‘파수꾼’ 같은 스타일을 버리고 스릴러 장르로 단번에 갈아탔기 때문이다. ‘사냥의 시간’ 속편은 없다고 말한 윤성현 감독이 빠른 시일 내에 어떤 작품을 또 들고 올지 기대가 된다.

”네 친구가 추격자에게 쫓기는 것을 통해 서스펜스를 유발하고 싶었죠. 이른바 ‘캣앤마우스’라고 해서 쫓고 쫓기는 이야기를 단순하게 보여주려고 했어요. 수많은 악당들이 있지만 ‘죠스’의 상어 ‘그래비티’의 우주처럼 절대적인 것이 주는 공포가 있어요. ‘사냥의 시간’에서 한(박해수)이 그런 존재죠. 그래서 액션도 화려함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인물의 감정을 담아내려고 했어요. 만약 볼거리가 있는 액션을 원하셨다면 불만이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를 보는 관객, 시청자들이 제일 중요하잖아요. 모든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어요.“

”‘사냥의 시간’은 저한테 큰 도전이었어요. 인간의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해왔지만 이번엔 화법을 다르게 가져갔죠. 이 도전을 통해 많은 걸 느꼈어요. 다음 작품은 제가 기존에 가지고 있는 색채들, 섬세하고 인간 통찰이 담긴 이야기를 하려고요. 제 주특기를 잘 살리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사진=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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