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삶이 있을까만 ‘혼자서 완전하게’(북라이프 펴냄)란 에세이 제목은 ‘혼자= 결핍’을 상상하는 세상의 시선에 웃음을 날리는 단단한 의지가 묻어난다. 25년차 프로독거인, 싱글만렙, 디지털 노마드족이라 스스로를 호칭하는 이숙명(40) 작가를 홍대 카페에서 만났다.

 

 

1인가구의 일상을 솔직하게 기록하면서 그 자체로 완전하고 가치 있는 ‘혼자만의 현재’에 찬사를 보낸다. 사소하게는 혼밥, 혼술을 민망해하지 않고, 크게는 믿는 대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인생의 중심에 ‘나야 나’가 있기 때문이라고 짚는다.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겨우내 5개월간 머무를 때 기획했어요. 발리엔 왜 갔냐고요? 서촌 한옥에 사는데 겨울에 너무 추워요.(웃음) 따뜻한 곳에 가자, 떠났죠. 패션잡지 기자였을 때 화보촬영 진행 차 몇 차례 발리에 갔지만 리조트에 갇혀 지냈어요. 지인들이 추천해 이번엔 우붓에 내내 있었죠. 가끔 섬으로 훌훌 여행을 다녔고요.”

영화전문지, 라이프스타일지, 패션매거진 기자로 활동했고 퇴사 후 현재 프리랜스 라이터이자 1인 e-북 출판사 ‘페이퍼크레인’을 운영하고 있다. 틈틈이 ‘느린 여행자를 위한 산보길’ ‘패션으로 영화읽기’ ‘어쨌거나 뉴욕’ ‘디어 미’를 혼자서 혹은 공저로 출간했다.

“노처녀에서 골드미스로 워딩이 바뀌고, 3040여성이 독신인 게 이상하지 않다는 인식이 생기는 시대를 지나왔죠. 잡지 싱글즈에 재직하면서 혼자 사는 여자들을 위한 정보를 기사로 쓰고 그러다보니 이런 분야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2014년 싱글즈를 그만 뒀을 때 여전히 주변 기자들 대부분은 싱글들이었다. 후배들로부터 독립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느냐, 주택 구하는 노하우, 직장 문제, 결혼 여부 고민을 상담해주는 경우가 많아졌다.

 

 

“구체적인 팁은 사람마다 달라서 책으로 할 일은 아니고, 그들에게 싱글 마인드를 심어주는 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시작했는데 젊은 독자들에겐 미안한 부분이 있어요. 난 돈을 모을 수 있었던 마지막 세대라 취직도 수월하게 한 편이고, 10년간 안정적인 직장생활이 가능했던 환경이었죠.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스스로 벌어서 생활하는 게 불가능하잖아요. 그런 제가 하는 말이 요즘 청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 고민이 됐어요.”

그는 책에서 “약간의 외로움을 지불하고 완전한 자유를 얻었다”고 썼으나 자유도 돈으로 사야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팍팍한 상황에서 ‘자신의 원칙과 위배될 땐 과감히 회사를 뛰쳐나와라’ ‘자유롭게 살아라’란 말이 의미가 있을지 회의가 든단다. 곧이어 나온 명쾌한 답변.

“악착 같이 벌어야할 거 같아요. 욜로 세대 삶의 수준은 무척 높아요. 월급은 적을지언정 나보다도 많이 소비하고요. 좋은 거 먹고 입고, 문화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걸 말리진 않는데 저축은 해야 해요. 너무 ‘내일은 없다’ 식으로 사는 듯해 불안해요.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당장을 즐길 것이냐, 잠깐 참았다가 미래를 즐길 것인가는 고민거리죠. 아파트 대출금 갚느라 30년간 소처럼 일하는 건 아니라고 보지만 만족할 만한 생활수준을 정해놓고 거기에 도달할 때까지 욕구를 제어하는 건 필요하다고 봐요.”

어느 새 ‘꼰대’가 됐다기보다 혼삶이든 더불어 삶이든 지구전을 치러내야 하는, 시간과 경험이 발효시킨 혼족의 농익은 시선이 아닐까.

 

 

해외 곳곳을 정복하기를 즐겨하는 여행자이지 싶었는데 원래는 ‘집순이’었다. 경북 영덕에서 태어나 포항으로 유학을 간 고교시절부터 혼자 살았다. 앞서 일하는 어머니를 뒀기에 유년기부터 스스로 밥 해먹으며 모든 것을 챙겨야 했기에 ‘인생은 독고다이야’란 생각을 품었다.

알아서 생활비를 벌어 살아야 했던 20대 중반, 대학 등록금을 못내 제적 당했을 때 있는 돈을 탈탈 털어 캐나다로 떠났다. 첫 해외여행에서 마약중독자에게 돈을 뜯기는 등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6개월을 버텼다. 그러면서 여행 DNA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 영화평론 공모를 했다가 편집장의 배려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직장생활이 지옥과 같아졌을 때 사표를 던진 뒤 그간 모은 돈으로 길게 여행했다. 여행은 어느새 바깥을 볼 수 있고 환기도 되는 창문과 같은 존재가 됐다.

“나이 들어서도 부모, 애인 등과 정신적으로 분리가 잘 안되는 사람들이 있어요. 가장 중요한 건 정신적 독립이에요. 전 돈을 벌면서 점점 더 나 혼자만의 길을 걸어오게 됐고 학교, 이사, 여행, 취업, 퇴사 등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더욱 독립성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직진해온 것 같아요. 독신주의자는 아니라 인연이 되면 결혼도 하겠지만 삶의 원칙이 흔들릴 거 같진 않아요.”

히피 보헤미안처럼 보이나 그의 일상은 매우 바쁘고 현실적이다. 꼬박꼬박 출퇴근하며 사람들에게 시달리긴 싫기에 혼자서, 알아서, 먹고 살아야 한다. 잡지 기고를 비롯해 지인들의 원고를 모아 책을 만든다든가, 친구에게 번역을 맡긴다든지 하며 고정적인 수익모델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 재테크를 위해 주식에도 시간을 할애하고 부동산 시세도 매일 체크한다.

 

 

“꼬박꼬박 출퇴근하며 사람들한테 시달리기 싫어서 직장생활에 대한 생각은 접었기에 계속 모색을 하는 거죠. 높은 생활수준에 대한 욕구는 없어요. 동남아에 가서 땅 사서 집짓고 수영장 만드는데 6~7천만원 정도 드는 듯하더라고요. 거기 가서 살 수도 있으니 두려움 없이 프리랜스 생활을 하고 있죠.”

자기계발서, 힐링서적이 한때 출판가에 유행하며 숱한 언니, 멘토들이 등장했다 소멸했다. ‘혼자서 완전하게’는 교훈을 주려고 쓴 책은 아니다. FM 라디오를 들으며 공감하듯이, 재밌는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기분처럼 읽어 내려가길 원한다.

“우리 사회엔 재미없게 사는 사람들이 많아요. 자기 삶에 갇혀 지내 따분하게 생각하지만 주변에 자극이 될 만한 친구들이 없는 경우가 흔하더라고요. 현실에 없는 재밌는 친구들을 책으로 만나 소통할 수 있는 창구로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제 삶의 콘텐츠가 쌓이고 들려줄 얘기가 차올랐을 때 책은 또 낼 수 있을 듯해요. 대놓고 사생활 팔이는 지양하려 해요.”

이 작가는 조만간 발리로 다시 떠날 예정이다. 인도네시아 현지인이 “집이란 너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 했는데 발리가 이젠 그에게 ‘제2의 집’과 같은 느낌이다. “거기서 다른 인연이 생긴다면 ‘제3의 집’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라며 서늘한 미소를 날렸다.

 

사진 권대홍(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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