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아(가수, 30대)

 

1. 계절

몇 해전부터, 계절 바뀌는 것이 유독 크게 다가옵니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시간은 흘러 계절은 바뀌고요. 그 계절마다의 색과 냄새, 피부에 닿는 느낌, 그런 것들을 좀 섬세하게 살펴보게 된 것 같아요. 절대 나이 먹어서 그런것은 아니라고 우겨보는 중이고요.

 

2. 식물

걸어서 출퇴근을 해요. 오가는 길에 풀들이 자라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는데, 그 재미가 쏠쏠합니다. 일, 이주 사이에 땅 구석구석에 풀들이 자라나고 있어요. 건너집 옥상에는 주인집 할아버지가 모종을 심으시면서 올해 농사를 시작하셨고요. 이 계절은 식물이 주인공 같아요. 꽃도 얼마나 많이 핍니까. 그 꽃들 풀들의 이름을 다 알아버리고 싶어요. 무지막지한 인간에게도 식물은 바라는 거 없이 물과 햇빛 만으로도 저 할 일을 다 하고 있어주어서 고마워요.

 

3. 악기

악기에 관심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피아노소리, 기타소리, 목소리까지. 같은 종류의 악기라도 다 성격이 다른 소리가 나지요. 이런 미세한 차이를 살펴보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어요. 요즘은 오케스트라 공연영상을 몇 시간씩 찾아보고 들어요. 사람이 만든 것 중에 참 잘 한 것이 악기 만든 것 아닌가 싶습니다.

 

4. 요리

이틀에 한두번 정도는 제대로 요리를 해서 먹으려고 노력합니다. 한 번 만들어 두면 두어끼 해결이 되니 편하기도 하고. 짠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데, 매운것은 좋아합니다. 파, 양파, 콩나물, 마늘, 시금치를 유난히 좋아해서, 이 재료들을 아끼지 않고 쓰는 이상한 요리를 개발했어요. 매번 그 맛이 다르다는 것은 단점 같지만 장점입니다.

 

5. 글자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재미있고 흥미로워서블로그에 뭘 끄적이곤 하는데. 손바닥 만한 노트를 올해 처음으로 장만했어요. 일기라기 보다매일의 간략한 기록 용도입니다. 최근에 200자 원고지도샀어요. 손이 종이위를 쓸고가는 느낌도 좋고, 내가 쓴 글자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도 재미있어요. 그저 글자로 놀아보는 것이다 글자를 따로 떨어트려 놓을때와 합쳐 둘때 그 기능이 다르잖아요. 글자를 모아 문장을 만들고 문단이 되어 글이 완성되면, 이 글이 또 독이나 약이 되는 힘을 갖고요. 문명인 맞네요 제가.

 

6. 베란다

매 년 봄에 뭘 심곤 했는데, 올 해 제일 큰 규모로 농사(^^)를 시작했어요. 베란다에 화분 10개 정도를 장만해서 이것저것 기르는 중입니다. 덕분에 기상시간이 빨라졌고, 베란다에서 노닥거리는 시간이 길어졌습니다. 캠핑의자를 가져다 두었어요. 직사광선을 쬐면서 광합성을 합니다.

7. 걷기

저는 참 잘 걸어요. 심심해도 걷고, 속상해도 걷고, 고민이 있어도 걷고요. 걷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면 그냥 제가 어느 풍경 속에 한낱 오브제 같아요. 내가 낯설어지고 그런 기분도 들고요. 걷는 걸음 걸음마다 안좋은 것들을 툭툭 떨어뜨리는 상상도 하고요. 어떤 날 미친 듯이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아무 생각이 없어지고, 피곤해지고, 집에 가서 세수하고 눕고 싶다는 생각만 남거든요. 단순해져서 아주 좋아요. 발이 편한 운동화에 집착하게 되는 것은 단점입니다.

8. 미술

미대나온 여자에요. 지금은 이름 앞에 음악가라는 타이틀이 붙지만,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1집 디자인과 앨범속 사진들도 다 제가 했고요. 음악과 미술을 동시에 하는 것은, 창작의 연장이나 확장, 교차, 그 정도로 해석해 두고 있습니다. 대체 노래로 안풀리는 것을 시각이미지가 풀어줄 때가 있거든요. 어떤 현상에 대한 미학적 접근, 미술적 이해 이런게 좀 흥미롭기도 하고요.

 

9. 측은지심

최근 몇 년간 자주 머리에서 떠올리던 사자성어입니다. ‘차카게 살자’의 고급진 표현 같은데. 우리가 이 마음을 잘 쟁여두었다가, 조금씩 꺼내어 쓰면 참 좋겠습니다. 뭐, 성선설을 믿는 것은 아니고요. 어떤사상이나 지도자를 따르는 것, 종교의 가르침에 따르는 것 등의 것도 다 좋지요.허나, 서로를 향한 측은지심을 미약하게나마 작용 보는 것도 많은 긍정적 변화를 가져오지 않을까 믿어보는 바입니다.

 

10. 노래

요즘 가장 집중하고 즐겁게 하고 있는 일입니다. 노래를 하며 사람이 좀 되어가는 것 같고요. 천성이 바뀌거나 하는걸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더 많이 보고듣고느끼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것들을 다시 창작물로 소화해 내고 싶고요. 그럼 계속 노래도 할 수 있겠지요. 노래는 신기합니다. 형체가 없지만, 말과 글과 음이 결합되어, 세상 어디까지도 전달될 수 있고, 그 누구도 모르게 사라질 수도 있어요. 그걸 제가 하고 있네요. 그것도 신기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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