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숙명(40·작가)

 

1. 여행

싫증을 자주 느껴서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본의 아니게 이사도, 여행도 자주 다녔다. 요즘은 제주나 발리처럼 도시와 자연이 섞인 곳에서 한 달 이상 여유롭게 지내는 걸 선호한다. 점점 여행과 생활의 경계가 없어지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오랜만에 연락하는 친구들은 항상 “서울에 있어?”라고 묻고, 물건을 살 때도 여행에 적합한 것 위주다.

 

2. 블루투스 키보드

글 쓰는 게 직업이라 어딜 가든 장비를 휴대한다. 무거운 노트북 대신 블루투스 키보드와 휴대폰 조합을 선호한다. 아이매직 접이식 키보드를 오래 썼다. 휴대폰 보다 큰 화면이 필요할 때는 아이패드와 로지텍 키보드를 휴대한다. 로지텍 키보드는 스마트커버 대용으로 쓸 수 있다.

 

 

3. 나일론 백팩

6년 전쯤 구입한 가방이다. 이 가방과 함께 지구를 두 바퀴는 돌았을 거다. 수납공간이 많고 쿠션도 좋아서 자꾸 손이 간다. 떨어지면 기워가며 쓴다. 수선할 수 없는 부분은 애정이라는 눈가리개를 쓰고 외면하는 중이다. 십 년은 더 쓸 것 같다.

 

4. 요가매트

운동에서 가장 힘든 과정은 '외출 준비'다. 문화센터, 피트니스센터, 요가학원 다 마찬가지였다. 일단 현관만 나서면 어떻게든 해결이 되는데 그게 힘들어서 등록하고 50% 이상 출석한 적이 없다. 조깅, 등산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요즘은 거실에 요가매트를 항상 펼쳐둔다. 그러기 위해 좀 비싸지만 눈에 안 거슬리는 짙은 색으로 구입했다. TV 보면서 스쿼트 100개, 스마트폰 보면서 플랭크 1분, 글 쓰다 막힐 때 침대 대신 요가매트에 누웠다가 슬렁슬렁 레그레이즈 100개... 이런 식이다.

 

5. 맥주와 소주

냉장고에 술이 없다면 그것은 집이 아니다.

 

 

6. 빨간 립스틱

귀찮아서 메이크업을 하지 않는다. 너무 피곤해 보인다 싶으면 빨간 립스틱만 바른다. 풀메이크업을 하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면 너무 꾸민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맨얼굴에 바르면 그냥 '화장했구나' 정도 느낌을 줄 수 있다. 이제는 친구들이 빨간 립스틱이 공짜로 생기거나 샀다가 안 어울리면 으레 나에게 준다.

 

7. 크레마 샤인

긴 여행을 떠날 때는 전자책 단말기를 챙긴다.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으로도 책을 볼 수 있지만 곧 인터넷으로 빠져든다. 그래서 눈도 보호할 겸 전자책 단말기를 이용한다. 역시 십 년은 더 쓸 것 같은 물건이다.

 

8. 라텍스 매트리스

피로에 찌든 현대인이 가장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 잠자리다. 고질적인 허리 통증과 찌뿌듯함 때문에 침대를 바꾼 게 4년 전. 그때 이후 나는 다시 태어났다. 논현동 수입가구 매장에서 유명 브랜드 최고급 매트리스와 같은 사양인데 값은 1/4이라며 추천하기에 샀다. 독립 포켓 스프링 라텍스 매트리스다. 이제 어느 호텔에 가도 내 침대가 그립다.

 

 

9.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는 건 잠을 깨는 일종의 의식이다. 오래 전 재미삼아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긴 했으나 뭘 배웠는지 기억은 안 난다. 계량을 하지 않아 그때그때 맛이 다르고 장비도 허술하다. 원두는 전용 분쇄기 대신 멸치와 마늘 갈던 믹서에 갈고, 입문자들이 흔히 쓴다는 하리오 드립 세트를 사용한다. 맛에 관해서는 원두의 힘만 믿는다. 나는 그저 원두를 갈고, 거름망에 담고, 물을 붓고, 커피가루가 부풀길 기다리고, 또 물을 붓고, 커피가 내려오는 걸 지켜볼 뿐이다. 그렇게 하루가 시작된다.

 

10. 짙은 눈썹

 

어릴 때는 짙은 일자눈썹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다. 나야 매일 보는 얼굴이니까 모르지만 가끔 보는 사람들에게는 눈에 띄는 모양이다. 멕시코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 닮았단 말도 많이 들었다. 특이한 거 좋아하는 패션지에 들어가서야 그게 단점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 눈썹 진한 애?” 그렇게 설명된 날이 많으니, 눈썹이야말로 나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