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에 이어서...

정진영 감독은 이 오묘하고 기묘한 이야기를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이야기는 다소 황당하고 거칠지만 감독이 가진 질문만큼은 명확했다. '나는 누구인가' 모두가 삶을 살아가며 한 번쯤 갖게 되는 고민일터다. 다만 그 단순한 질문이 황망하고 혼란스러움을 안겨다주는 난제인 만큼, 영화 역시도 장르와 구조의 변칙성으로 그런 아이러니를 표현하고자 했다.

"이 영화로 말하고 싶은 건 어릴때부터 살면서 하는 질문들일 것 같아요.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들이 규정하는 나 사이의 충돌. 그 슬픔. 근데 남들이 규정하는 나로 더 많이 살아야하는 아이러니 같은 것들을 말하고 싶었죠. 근데 너무 진지한 톤으로 하기보다 좀 황당하지만 자유롭고 재밌게 가고싶다고 생각했어요. 갑자기 시작해서 갑자기 끝나는 형식이지만 그 안에 계속 바뀌면서 가야겠다 싶었죠"

"초반에는 관객분들이 당혹스러우실 수 있어요. 근데 설명을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잖아요. 어느 순간 영화가 확 변하는 것을 관객이 따라오게 하고 싶었어요. 반 발짝 뒤에서 관객이 따라오도록 말이죠. 그리고 관객이 따라오면 이야기는 달아나는 식으로" 

"어떻게 봤으면 좋겠다는 법은 없고, 이랬으면 좋겠다는 것만 있다. 어느 순간 이게 뭐지 의심하지 않고 따라가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관객분들이 영화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못 따라가요. 그러면 실패한 거죠. 그래서 의심없이 따라오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중점을 뒀어요. 그리고 마지막엔 질문을 가져가셔서 나름대로의 답을 생각해보는 거죠. 그런 찝찝함이 좀 있길 바랐어요"

장편 영화 한 편을 책임지고 감독으로서 명성을 얻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정진영 감독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번만큼은 패기와 열정으로 자신의 꿈을 실현시켰지만, 그 뒤의 일은 결코 단정하지 않았다. 비록 흥행을 기대하고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그는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평가에 달려있다"고 전하며 앞으로의 행보와 영화 개봉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놨다. 

"다음 작품은 잘 모르겠어요. 한 번은 해보고 싶다고 밀고 나갈 수 있었지만, 두번째부터는 자칫하면 욕심이 될 수 있잖아요. 또 작업하려면 이제는 하고싶다는 이유만으론 안될 것 같아요. 더 신중하게, 영화적 가치 같은 것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죠. 지금으로서는 어떤 이야기를 할지 전혀 계획이 없어요. 관객분들 평가속에 생각이 정리될 것 같아요"

"흥행 부담도 사실은 커요. 투자를 받았기 때문에. 손해를 끼치면 안되잖아요. 영화를 마음대로 만들어놓고 그걸 나몰라라 할 순 없으니까요. 27만이 손익분기점인데, 낯익은 영화도 아니고 코로나19 여파도 있고. 어떻게든 맞춰야 면이 좀 설텐데. 걱정이에요"

정진영 감독은 배우와 감독을 모두 도전해봤다. 그리고 "배우는 이성적으로 해석함과 무관하게 자기가 어떤 시공간에 어떤 감정으로 존재해야하는 걸 알아요. 그런 오감이 있죠. 그 감정을 가지고 올 수 있는 사람들이 배우예요. 그걸 감독은 잘 캐치해서 인도하면 되는거죠"라며 둘 사이의 역할과 관계를 정의했다.

33년간의 성공적인 연기 인생, 그리고 꿈을 실현시키고자 맞이한 새로운 도전. 정진영 감독의 첫 연출작이 관객들에게 어떤 반응을 거둘지는 이제 그의 손을 떠났다. 부담감도 있다지만, 그는 오랜 꿈을 실현시켰다는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의 오랜 소망을 밀고나가는 용기와 뚝심만큼은 영화인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그를 지켜보는 이들에게 영화와는 또 다른 메시지를 전해주는 건 아닐까.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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