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롭게 세계 농장 탐방을 감행했던 20대 청년들은 이제 31세, 30세가 됐다. 2014년부터 2년에 걸쳐 맨땅에 헤딩하기 흔적을 찍어나갔던 다큐멘터리 영화 ‘파밍보이즈’ 개봉(7월13일)을 앞두고 서울 계동의 커피숍에서 세 청년을 만났다. 큰 ‘행님’ 유지황을 비롯해 김하석 권두현이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김하석 유지황 권두현(왼쪽부터)

‘농업기술’과 ‘청년농부’란 2가지 키워드를 품고 호주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네팔 등 총 11개국의 농장, 코뮨, 연구소 등을 순례했다. 그들의 현재가 가장 궁금했다.

여정을 마치고 돌아와 권두현은 고향인 경남 산청군에서 부모님과 함께 딸기농사를 짓고 있다. 유지황은 경남 진주에서 청년농부들을 위한 6평짜리 이동식 주택 제작 일을 하고 있다. 김하석은 건강한 먹거리와 가치소비에 관심을 갖게 돼 아이쿱생협에서 매니저로 근무 중이다.

경남과학기술대 선후배 사이인 유지황(메카트로닉스과)과 김하석(벤처경영학과)은 취업시장에서 동아줄을 잡을 수 있을까에 대한 물음표, 복사기처럼 지내야 하는 직장생활에 회의를 품고 있었다. 지인을 통해 필리핀 어학연수 겸 농업일주를 구상하고 있던 권두현(경상대 원예학과)을 알게 된 뒤 의기투합했다. 둘이 먼저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 시급 14~16달러의 외국인 노동자로 지냈다. 그리곤 필리핀 어학연수가 끝날 무렵 권두현을 호주로 불러 들였다.

“농업일주 겸 영화를 만들 생각을 했는데 둘은 재미가 없잖아요. 셋이 하면 재밌을 거 같아서 ‘우리끼리 카메라 들고 다니면서 찍자’라며 연락을 한 거죠.”(김하석)

“비행기 티켓을 편도로 끊고 각자 30만원을 들고 호주로 떠났어요. 시급도 높고, 농장일도 많으리란 낙관에 구체적인 정보를 알아보지 않은 채 갔는데 농장 일이 구해지질 않아서 적금 부었던 걸 다 깼죠. 결국 닥치는 대로 일했어요. 하석이는 아침에 마트청소, 중간에 고등학교 청소와 헬스장 청소, 타일 보조업무 등 쓰리잡을 했고 저도 식자재 배달이랑 야간청소 투잡을 했고요.”(유지황)

 

 

“둘의 연락을 받고 호주에 도착했는데 맨땅에 헤딩 수준이더라고요. 낚였다고 생각했으나(웃음) 같이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거에 흥미를 느꼈어요. 혼자면 아무래도 제약이 많았을 텐데 함께여서 갈 수 있던 곳이 많았죠.”(권두현)

로드트립에 나선 세 남자는 처음 서호주 퍼스로 갔다가 브리즈번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퀸슬랜드주의 생태 공동체 마을 크리스탈 워터스에 발을 디뎠다. 투명한 강줄기가 흐르는 아름답고 평화로운 이곳은 세계 3대 자급자족 공동체 마을로 불린다. 82가구가 거주하는 크리스탈 워터스의 유기농 농사와 자급자족의 삶, 집단과 개인의 삶이 철저히 분리되는 모습에서 보물을 발견한 듯한 감동을 얻었다.

로드트립 할 당시 차로 물이 급격히 분 강을 건너고, 타이어가 펑크 나는 등 어드벤처의 연속이었다. 반면 캠핑장에서 비박을 할 때는 모닥불 앞에서 김하석이가 우쿨렐레 연주를 하고 전국일주 중인 호주 노부부와 술잔을 기울이는 등 낭만드라마를 찍기도 했다.

호주 체류 1년이 끝나갈 즈음, 우핑(유기농 농장에서 숙식을 제공받고 일하는 사람)으로 갈 곳을 마련하기 위헤 70군데에 메일을 보냈으나 답메일이 온 곳은 6~7군데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대부분 “Sorry”였다. 그럼에도 갈 곳을 마련해 본격적인 세계일주에 돌입했다. 1년간 이곳저곳을 떠돌며 토지와 집 등 자금 없이도 농사를 짓는 법과 현지 청년농부들의 노하우를 배웠다.

 

 

여행은 절친도 싸우기 일쑤이기 마련이다. 세 남자에게도 위기는 무시로 찾아왔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카메라 앞에 노출됨으로써 여행이 어느 순간 일이 돼버렸다.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못하는 나날이 이어지다보니 신경이 예민해지곤 했다. 개인 시간이 부족한 것도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이 됐다. 다행이 고집 세고 주장 강한 유지황과 달리 두 후배는 유하고 무난한 성격이었다. 무엇보다 3명이 추구하는 가치가 깃발이자 기준이 됐다.

“농업세계일주, 청년농부, 대안적 농장을 만나겠다는 키워드가 저희의 여정을 무사히 유지시켜준 버팀목 역할을 했어요. 특히 셋이라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역할 분담과 규칙을 세워서 지냈죠. 하석이 카메라·배터리·장비 담당, 두현이 총무, 제가 일정관리·기록·영상을 맡았고요.”(유지황)

금쪽과 같은 20대의 2년을 해외를 유랑하며 한편으론 ‘빡’세게 고생하며 보냈다. 가성비가 높은 시간이 됐을까.

“처음 목표는 대학 졸업 후 제게 휴가를 주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이나 잘하는 게 뭔지를 찾고 싶었어요. 운 좋게 농업 콘텐츠로 함께 떠났고 외국 농부들의 철학, 인생이야기를 들으며 배우고 성장했던 것 같아요. 국내에서 곧바로 직장인이 됐다면 주어진 일을 하고 승진에만 신경 쓰며 수동적으로 살았겠죠. 하지만 이 시간으로 인해 능동적으로 목표를 가지고 훨씬 유용한 인재가 됐다고 자부해요.”(김하석)

 

 

“청년농부들이 앞으로 주목받을 거란 빅 픽처를 그리고 갔어요. 현지에서 농업과 관련한 자연, 생태, 인구문제에 대해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고 사고가 계속 확장됐어요. 우리의 농업이 기술력·테크놀로지를 강조한다면 해외는 여유로운 생산력 때문인지 자연의 생명력에 초점을 맞춰요. 개인적으론 두 후배를 보면서 타인과 비폭력적으로 대화하는 방법, 존중해주는 법을 많이 배웠고요. 제 삶의 기초체력을 키웠던 시기에요.”(유지황)

“자기만의 가치관, 색깔을 찾는 게 중요하지 싶어요. 농장들을 다녀보면서 나만의 기준을 가진 농장을 만드는 게 중요함을 절감했죠. 그동안 주변에 농사하고 싶단 친구들이 있었는데 시작을 못하고 포기한 이유는 돈을 뛰어넘는 자기만의 가치관이 없어서이지 싶어요.”(권두현)

최근 귀농·귀촌인구가 날로 늘어가는 추세다. 이런 현상을 바라보는 세 청년의 시선이 궁금했다.

“농사를 짓는다면 진짜 고민을 많이 해봐야 해요. 돈이 이유라면 아니에요. 현재의 농업정책과 정부지원이 턱없이 부족한데다 너무 많은 시간과 젊음을 바쳐야하기 때문이죠. 자연에서의 삶을 살겠다는 이유라면 충분히 가능하고요.”

“일단은 삽이라도 들고 밭고랑이라도 파봐야 내게 맞는지 안 맞는지 알 거예요. 견습생으로 최소한 1~2년은 경험해봐야 알아요. 맑은 공기와 여유로운 삶을 꿈꾸는데 사실 농사일은 하루 종일 해야하는 일이 많은데다 야근업무도 많아요. 생업이니 불평할 수도 없고요.”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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