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우린 왜 사랑했을까. 우린 왜 그냥 스쳐가지 않고 서로를 바라봤을까. 우린 왜 끝이 분명한 그 길을 함께 걷기 시작했을까"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왔다. 극을 시작하는 넘버 '우린 왜 사랑했을까'가 마지막에 또 한번 흘러나오면 처음과 전혀 다른 느낌으로 관객들의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익숙해진 이야기지만, 이번 공연도 팬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2014년 우란문화재단 기획개발을 시작으로 만들어진 창작 뮤지컬이다. 2016년 초연 당시 70회 매진에 이어 2018년 재연까지 관객 몰이에 성공했다. 각종 뮤지컬 시상식 수상과 지난 2월 미국 트라이아웃 공연까지 마치며 작품성을 인증받았다. 

인간에게 버림받은 헬퍼봇 올리버는 홀로 반복적인 일상을 지낸다. 우연히 이웃에 사는 또 다른 헬퍼봇 클레어가 배터리 충전을 위해 도움을 청하고, 두 로봇은 점차 가까워진다. 근 미래를 배경으로 로봇들이 인간의 감정을 배운다는 설정은 익숙하다.

그러나 극이 집중하는 부분은 이들이 감정을 배우는 순간들. 특히 처음 사랑을 느끼는 그 찰나의 순수함이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한다. 오랜 풍파에 낡고 무뎌진 순수했던 감정을 새롭게 되살려주는 느낌에 괜스레 울컥해진다. 

올리버와 클레어, 낡고 고장난 두 로봇은 사랑이 어떻게 끝날지 알고있다. 짜릿한 사랑의 기쁨이 비례하는 슬픔으로 변하리라는 것도 안다. 때문에 이들이 끝내 기억을 지우고 슬픔을 감당해내려는 모습이 안타까움을 배가시킨다. 전형적인 멜로물에서 볼 수 있는 전개다. 스크린이나 모니터로 본다면 와닿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무대 위, 눈앞에서 펼쳐지는 공연이라는 점. 그 실재의 아우라가 알고도 당하게 만든다.

극이 주는 또 하나의 공감 요소는 혼자와 둘의 차이다. 올리버는 화분을, 클레어는 반딧불이를 옆에 둔다. 그리고 결국은 두 로봇이 함께 한다. 로봇임에도 '옆에서 빛을 내주는' 무언가 있길 바라는 건 지금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나 혼자도 감당하기 어려워 연애도 결혼도 포기하고 스마트폰, 컴퓨터와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늘고있다. '어쩌면 해피엔딩'을 보고 두 로봇이 전하는 감정에 빠져들고나면 '그럼에도 어쩌면, 둘이 낫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로 주목받은 정문성, 전미도 캐스팅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캐스트들도 실력만큼은 보장이다. 올리버 역 전성우와 클레어 역 강혜인의 '로봇연기'가 빛을 발한다. 섬세하게 신경쓴 움직임과 적절히 감정을 절제한 목소리가 극의 상황과 맞물려 더욱 감성을 자극한다. 신형과 구형의 차이로 만드는 웃음 포인트도 재미요소다.

피아노와 현악기가 어우러진 라이브 재즈 연주, 제임스 외 다수 역할을 소화한 이선근의 보컬도 매력적이다. 고도로 발전된 기술사회에서 전하는 아날로그의 감성이 잊고있던 인간다움을 상기시킨다. 진짜 목소리, 날것의 감정, 옆에 실재하는 누군가를 말이다.  

한편 '어쩌면 해피엔딩'은 오는 9월13일까지 YES24스테이지 1관에서 공연된다. 올리버 역은 정문성과 전성우, 양희준이 맡는다. 클레어 역은 전미도, 강혜인, 한재아, 제임스 역은 성종완과 이선근이 번갈아 연기한다. 

사진=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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