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아랍영화제가 7월 16일부터 21일까지 아랍 12개국 11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아랍 중견 감독들의 최신작은 물론,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차세대 감독들의 데뷔작이 대거 상영되는 가운데 특히 프로그래머가 추천하는 놓칠 수 없는 작품 4편을 공개했다.

# ‘마흐무드의 복사 가게’

인쇄업계에서 은퇴한 마흐무드는 작은 복사 가게를 운영하며 살아간다. 이따금 손님들이 맡기는 문서 복사나 타이핑 작업으로 소소한 수입을 얻고 가게 앞에 앉아 거리와 이웃들의 삶을 지켜보는 게 그의 주요 일과다. 어느 학생이 맡긴 문서를 통해 공룡의 멸종에 대해 알게 된 마흐무드는 자신의 삶과 멸종된 공룡 사이에 비슷한 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대로 멸종돼 사라져 갈 삶의 방식을, 우울한 현실을 바꾸고 싶다는 일념에 용기를 낸 그는 규칙적이고 안온했던 지금까지의 일상을 벗어나기로 한다. 건물주의 부당함에 맞서기도 하고 다양한 이웃사촌들과 부대끼며 새로운 활기를 찾아가는 마흐무드의 삶에, 크고 작은 사건들과 함께 예기치 못한 사랑이 다가온다.

사회적 이슈가 강한 다큐멘터리 작업을 꾸준히 해 왔던 이집트의 중견 감독 타미르 아슈리의 장편 극영화 데뷔작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산업사회와 도시적 삶의 속도와는 또 다른 노년의 시간, 다양한 세대와 계층이 공존하는 이웃 공동체 내 갈등과 소통을 따뜻하고 세심한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 ‘하이파 거리’

미군이 점령한 2006년의 바그다드는 종파 분쟁으로 폐허가 됐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가치와 정치적 신념을 위해 테러를 자행하는 저격수들로 가득한 하이파 거리는 그 폭력의 정점에 있다. 아흐마드는 연인 수아드와 그녀의 딸 나디야를 미국으로 데려가기 위해 그녀의 집에 가던 중 저격수의 총에 맞는다.

아흐마드를 쏜 살람은 지붕 위 자신만의 지옥에서 살고 있다. 수아드는 총탄의 위험이 도사리는 거리에서 아흐마드를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나디야는 수아드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들과 신념을 달리하는 이웃에게 도움을 청한다. 미군과 함께 아부그라이브에서 생활했던 아흐마드는 그곳의 실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거리에 쓰러져 피를 흘리며 계속 지키려는 카메라 안에는 수아드에게 전하는 자신의 과거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하이파 거리 속 사람들은 역사와 욕망, 회한으로 만들어진 각자의 지옥에서 하루하루 위태롭게 살아간다. 영화는 가해자와 피해자로 구분할 수 없는 비극의 실상을 인물의 의식 안팎을 넘나들며 촘촘히 포착한다. ‘하이파 거리’는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 수상작이다.

# ‘완벽한 후보자’

마르얌은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작은 마을 의료센터에서 일하는 젊은 의사다. 충분한 실력을 갖추고도 그녀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남성 동료들과 환자들에게 시달려야 한다.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두바이로 가려 하지만 공항에서 출국을 거부당한다. 꽉 막힌 상황에서 그녀는 의료 센터 앞길의 보수 요청을 계속 거절하던 남성 의원 대신 자신이 보수 공사를 결정하기 위해 지방의회 의원에 출마하기로 한다.

마르얌은 여동생들과 함께 기금 마련을 하고 선거 운동을 시작한다. 자매들의 행보는 매번 사회가 원하는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 때문에 장애에 부딪히고 마르얌의 겁 없는 출마는 보수적인 공동체에 하나의 기념비적 도전이 된다. 마르얌과 남성 후보들간의 팽팽한 접전이 진행되며 마르얌과 가족들의 추진력은 보수적 사회 전체를 한 걸음 앞으로 끌어당긴다.

# ‘파피차’

1990년대 알제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열여덟 살의 패션 디자이너 지망생 나즈마가 알제리 내전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이끌어나가는 모습을 그린다. 나즈마는 친구 와실라와 밤문화를 즐기기도 하며 세계 다른 곳의 10대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한다. 사회 분위기가 더 보수적이 되면서 전통적 관습에 반하는 행동을 금하는 규정이 생겨나고 그에 순응할 수 없는 나즈마는 자신의 자유를 지키려면 맞서 싸워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그녀가 준비하는 패션쇼는 개인의 꿈을 향한 여정인 동시에 사회에 맞서 외치는 여성의 목소리다. 감독 무니야 맛두르가 알제리 내전 당시에 성장기를 보낸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 이야기 속에는 슬픈 현실과 그 속에서도 퇴색하지 않는 소녀들 간의 강인한 우정이 섬세하게 담겨 있다. 2019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상영돼 화제를 모았으며 올해 세자르영화상에서 최우수데뷔작과 신인여배우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다양한 세대의 감독들이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본 아랍 사회와 문화의 다채로운 단면을 함축적으로 만날 수 있는 제9회 아랍영화제는 7월 16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아트하우스 모모,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동시에 개최된다.

사진=아랍영화제 제공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