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 대한민국 최초의 사법살인이라고 불리는 진보당 사건이 언급된다.

14일 밤 10시 방송되는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는 61년 전 여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대한민국의 정치사의 거물 조봉암과 진보당 사건이 재조명된다.

제 2, 3대 대통령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이승만의 라이벌로 부상한 조봉암. 공산주의자에서 전향해 이승만 정부의 농림부 장관까지 맡았던 그의 죄목은 ‘간첩죄’였다. 그는 어쩌다 간첩으로 몰리게 되었고, 사형에까지 이르렀을까. 대한민국 최초의 사법살인(司法殺人)이라 불리는 진보당 사건의 내막을 살펴본다.

권력과 폭력의 야합으로 정치깡패들이 판을 치던 1인 1깡의 시기, 조봉암도 유명한 정치깡패를 고용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주먹으로 불린 ‘시라소니’ 이성순. 하지만 그 무시무시한 시라소니도 조봉암을 경호하며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결국 경호를 그만 두기에까지 이르렀다.  천하의 시라소니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는 조봉암의 패기는 어느 정도였을까.

1956년 3대 대선에서 217만 표로 대중의 지지를 받은 조봉암. 그는 대선의 여세를 몰아 진보당을 창당하고, 노동자와 농민이 중심이 되는 혁신정치를 꿈꿨다. 하지만 슬로건 내 문구가 이승만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고 급기야 간첩으로까지 내몰렸다.

간첩죄로 기소되어 법정에 선 조봉암, 간첩이냐 아니냐를 두고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검찰 측은 조봉암이 간첩이라는 증거를 하나 둘 제출한다. 그리고 조봉암과 일제강점기부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결정적인 증인 양명산이 등장했다. 둘은 대체 어떤 관계였으며, 재판의 양상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박지훈 변호사와 검사로 분한 이광용 아나운서가 진보당 사건, 그날의 재판을 재연해보았다.

유족들의 숱한 재심 요구에도 열리지 않던 재판부의 판결이 52년 만인 2011년, 대법원에서 열렸다. “주문 : 원심판결과 1심판결 중 유죄부분을 각 파기한다”. 사법부는 52년 만에 과거의 잘못을 인정했다. 조봉암은 복권됐지만 유족들에게는 이미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된 진보당 사건. 정권에 의해 정치적 목적으로 집행된 사법살인이자 한국 정치사의 비극으로 남은 진보당 사건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남았을까.

7월 14일 화요일 밤 10시 ‘역사저널 그날’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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