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룹의 멤버들은 출생지도, 국적도 한국이 아니다. 부모가 한국인인 것도 아니다. 케이팝이 좋다는 이유로 뭉쳤고 한국어로 노래를 부르니 케이팝 그룹이 됐다. 케이팝의 정의를 확장한 그룹 '이엑스피 에디션(EXP EDITION)'은 시종일관 발랄했다. 다른 연예인의 팬에게도 스스럼없이 인사하고, 팬들에게는 먼저 다가가 사진을 찍자고 할 만큼 넉살도 좋았다. 지난 13일, 무더위 가운데 만난 이엑스피 에디션은 한여름에도 굴하지 않는 이채로운 에너지를 내뿜고 있었다.

 

왼쪽부터 시메, 프랭키, 헌터, 코키

 

프랭키(25)는 포르투갈, 시메(24)는 크로아티아, 헌터(26)와 코키(22)는 미국 출신이다. 케이팝 그룹에서 외국인이 있는 건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트와이스는 9명 중 4명이 외국인이고, 갓세븐, 엔시티, 우주소녀 등 많은 케이팝 그룹이 외국인 멤버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멤버가 외국인인 경우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아직은 이름이 낯선 이들에게 자기소개를 부탁하자 깜찍한 대답들이 돌아왔다.

"나는 리더고, 샤방샤방을 맡고 있다. 박현빈의 '샤방샤방'도 잘 부르고, 항상 긍정적이다. 섹시도 담당한다."(프랭키)

"턱을 맡고 있다."(시메)

"랩과 망가짐을 맡고 있다. 코미디언이다. 파티에서 핵심이 돼 노는 걸 좋아한다. 아무 때나 농담을 한다. 그게 내 임무다."(헌터)

"헌터는 완벽한 '남친'이다. 요리도 잘한다. 나는 보컬과 랩, 귀여움을 맡고 있다."(코키)

"코키는 말 안하고 있어도 귀엽다."(프랭키)

이엑스피 에디션은 이름처럼 탐험(expedition)에 가까웠다. 아이디어는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에서 현대미술을 전공하던 김보라씨에게서 나왔다. 석사 논문으로 한류와 케이팝에 관해 연구하던 그는 평소 케이팝에 관심이 많던 친구 카린 쿠로다, 사만다 샤오 등과 아이돌 그룹을 만드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로 결심했다. 오디션을 통해 멤버를 뽑았고, 그렇게 탄생한 게 이엑스피 에디션이었다. 이엑스피 에디션은 생각보다 큰 인기를 끌었고 프로젝트는 사업으로 진화했다. 2015년 미국에서 데뷔한 이들은 2016년 한국 땅을 밟았으며, 2017년 드디어 케이팝의 본고장에 진출했다.

 

 

"첫 음악방송 '쇼챔피언' 무대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다른 아이돌 그룹과 한 무대에 선다는 게 감격이었다. 집에 와서 '이게 꿈이었나' 싶었다. 한국은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가 미국에 비해 많다고 느낀다. 인사하는 문화나, 지켜야 하는 형식들이 그렇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것들이었지만, 너무 새롭고 신선했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아기같다. 처음에 잘 몰랐을 때는 PD나 메이크업 아티스트, 스타일리스트 분들을 안으려고 하기도 했다. 그분들이 진짜 많이 놀랐다. 하하."(프랭키)

이들은 언어 문제와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게 가장 힘들다고 덧붙였다. 연습과 공연은 워낙 좋아하고 사랑하는 일이어서 전혀 힘들지 않았단다. 이엑스피 에디션은 매일 한국어 수업을 들었고, 오전에는 춤 연습과 노래 연습을 했다. 타국에서 활동할 정도로 음악을, 그중에서도 케이팝을 사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계기는 모두 단순했다.

"고등학교 때 빅뱅의 '하루하루' 뮤직비디오를 봤다. 나는 뉴욕에서 모델과 배우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케이팝을 많이 들었고, 좋아하게 됐다. 빅뱅과 슈퍼주니어, 2NE1 등 좋아하는 그룹이 많다."(코키)

"어렸을 때 한국 영화를 많이 봤다. 그래서 한국 대중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뉴욕에 살면서 케이팝을 듣게 됐고, 사랑에 빠졌다."(시메)

 

 

시작은 사소했지만 케이팝의 매력은 이들의 일상을 사소하지 않게 물들였다. 이엑스피 에디션은 케이팝이 시각적으로 뛰어나며 모든 면에서 완벽을 추구하는 게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엔터테인먼트의 가장 좋은 것들이 다 합쳐진 것 같다. 또, 아이돌 그룹과 팬덤의 관계가 정말 강력하다. 이런 팬덤 문화는 미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다. 팬들 덕분에 더 영감을 받고 열심히 하게 되기도 한다."(시메)

새로운 정체성의 케이팝 그룹이기 때문에 케이팝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다른 그룹과 차별화할 수 있는 강점도 존재했다.

"우리는 배경이 다 다르다. 또, 오페라를 한 멤버, 뮤지컬을 한 멤버도 있다. 그런 것들을 다 섞었기 때문에 하이브리드가 가능하다. 화음을 많이 이용하는 것도 장점이다. "

이엑스피 에디션은 지난 4월 17일 데뷔 싱글 'FEEL LIKE THIS'를 발매하고 한국에 데뷔했다. 같은 달 20일에는 Mnet '너의 목소리가 보여 시즌4'에서 결승에 진출했다. 당시 슈퍼주니어의 'U'를 완벽하게 소화해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 후 6월 20일에는 KBS1 '이웃집 찰스'에 출연해 연습에 매진하는 일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방송 활동으로 조금씩 입지를 넓히겠다는 포부다.

 

 

"방송 출연 이후에도 생활은 똑같았지만 세계 여러 나라 팬들이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지 몰랐다고, 댓글이나 이메일, SNS 등으로 연락을 많이 하신다."(헌터)

"오늘 아침에는 차에서 크로아티아 팬에게 편지를 받았다. 굉장히 감동해서 울었다. 장문의 편지였는데, 영감을 받았고 응원하고 있다고 적혀 있었다. 자기의 꿈을 이루도록 희망과 용기를 줬다고,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다는 걸 우리를 통해 알게 됐다고 하시더라. 언젠가 한국에 와서 앞자리에서 우리 공연을 보고 싶다고도 하셨다."(시메)

이제 막 첫걸음을 뗀 이엑스피 에디션은 현재 새로운 음악을 만들며 다음 앨범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공연을 많이 하고 싶다. 버라이어티 쇼에도 나가고 싶다. 나는 한국어로 작사하는 게 꿈이다."(코키)

"이엑스피 에디션만의 콘서트를 열고 싶다. 최종적으로는, 케이팝을 전 세계 팬들에게 알리고 싶다. 케이팝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공연할 때가 많다. 우리로 인해 케이팝을 처음 접하는 거다. 다리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

 

사진 최교범(라운드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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