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과 도전의 네 용사가 크로스오버 4중창단으로 대동단결했다. ‘팬텀싱어3’ 준우승팀 라비던스다.

'라비던스' 황건하 존노 고영열 김바울(왼쪽부터)

팀을 이룬 그 순간부터 기세가 대단했다. 솔로 예선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올라운드 감성 소리꾼 고영열과 미국 유학파 '천상의 테너' 존노가 두 축을 이뤘다. 둘 모두 존재 자체가 크로스오버였다. 국악이나 성악이란 그릇이 담아내기엔 부족할 만큼 자유로웠다. ‘인간첼로’ 베이스 김바울과 ‘뮤지컬 원석’ 황건하가 두 날개로 가세했다.

결승 1차전 경연에서 남도민요 ‘흥타령’과 미국 R&B·솔 마스터 스티비 원더의 ‘어나더 스타’를 불렀을 때 녹화 스튜디오에 참석한 심사위원보다 ‘팬텀싱어’ 시즌1, 2 입상자들이 먼저 격렬하게 환호했다. 놀랍다는 표정이 얼굴에 넘실댔다. 압도적인 점수차로 2위(라떼아모르)와 3위(라포엠)를 제쳤다. 누구나 이 팀을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점쳤다.

소리꾼 1명과 성악 전공자 2명, 신예 뮤지컬 배우 1명 조합은 국내외 어떤 크로스오버 4중창단에서도 볼 수 없던 라인업이었던 데다 이들의 선곡은 늘 예상을 깨트리는 파격의 연속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최종 2위에 머물러야 했다. 결승 2차전 생방송 무대에서 부른 들국화 ‘사랑한 후에’와 이스라엘 싱어송라이터 이단 라헬의 ‘Millim Yaffot Me'Eleh(이보다 더 아름다운 말)’의 낯섦 탓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 때문이었을까.

격렬했던 후폭풍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16일 오전 싱글리스트에서 네 가인과 만났다. 다른 삶을 살아왔고, 다른 음악을 해왔던 이들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하나 된 수다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먼저 ‘팬텀싱어3’ 레이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를 물었다.

“‘흥타령’을 준비할 때 매 순간이 도전이었어요. 저의 가장 새로운 면을 끄집어낼 수 있었고 더 책임감을 가지고 임할 수 있었죠. 그리스 노래 ‘Ti Pathos’를 부를 때는 ‘흥타령’ 때와는 또 다른 책임감이 지배했던 거 같아요. 한국의 것을 잘 해내야 한다는 무게감 때문에 디테일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 했어요. 정말 정성 들였던 무대로 기억에 남아요.”(황건하)

“‘어나더 스타’는 ‘흥타령’ 직후 불러야 했던 상반된 감정의 곡이라 인상적이었죠. ‘팬텀싱어’에서 스티비 원더 곡은 처음 시도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분의 히트곡이 아님에도 감각적인 노래를 찾은 거에 대해 팀원들 모두 의미 있었다고 말했어요. 존노 형이 ‘영열이 니 소리를 들었을 때 흑인의 소울이 느껴졌다. 인종차별과 억압이 심해서 그걸 풀어내려고 나온 장르가 소울, R&B, 힙합이라 우리 감성과 잘 맞는다’는 조언이 큰 용기가 됐어요.”(고영열)

“저도 ‘흥타령’이에요. 국악이 가요와는 또 다른 리얼한 정서가 있더라고요. 처음 시도해본 장르이기도 하고 감정적 부분에서 깊이가 달랐어요. 준비 단계에선 발성에서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죠. 그러다 영열이 노래를 들으면서 이 곡은 ‘감정이 100%일 정도로 굉장히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먼저 감정이 고여야 소리가 나오는 거니까 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죠. 저희 넷이 그 감정을 공유하면서 무대를 완성했기에 기억에 남아요.”(김바울)

“‘사랑한 후에’는 제 음악 인생에 있어서 새로운 출발과 끝맺음을 상징하는 노래예요. 고등학교 시절 미국 메릴랜드로 유학 와서 왕따로 지냈어요. 학교에서 유일한 동양인이었거든요. 점심시간에 밥을 혼자 먹으면서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다’란 생각을 하고 지낼 때 우연히 이 곡을 듣게 됐어요. <놀던 아이들은 아무 걱정없이 집으로 하나둘씩 돌아가는데 나는 왜 여기 서있나>란 가사에 항상 눈물 흘렸죠. 그러고 나선 힐링이 됐고요. 제 인생곡을 추천했는데 멤버들이 선뜻 받아주고 결승에서 부를 수 있도록 해줘 뭉클했어요.”(존노)

이질적으로 보이는 네 남자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단단하게 묶어주는 연결고리가 있다. 먼저 91년생 서른 동갑내기 존노와 김바울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늦깎이 성악도다. 힙합 덕후였던 존노는 한국에서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또래 가운데 유일하게 바지를 내려 입고 힙합 모자를 쓰고 다녔다. 미국 유학은 신학을 염두에 두고 갔다.

친구가 없다 보니 교회 남성중창단 들어갔고,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초청받아 푸치니의 ‘미사’ 공연을 한 적도 있다. 그 무렵 파바로티가 부르는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 중 아리아 ‘네순 도르마(아무도 잠들지 마라)’를 듣고 충격에 빠져 성악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고교 졸업 때인 늦은 나이에 음대에 진학하며 성악에 입문했다.

김바울은 간호학과에 진학해 형(현재 독일에서 의사로 활동 중)과 의료선교를 하는 게 꿈이었다.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소재 작은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했던 그는 지휘자의 권유와 더불어 찬양역사에 잘 스며들 수 있을 거 같단 생각에 늦은 나이인 스물 두살에 성악을 시작했고, 이듬해 경희대 음대에 입학했다. 종교적 이유로 음악을 시작한 셈이다.

사진=JTBC '팬텀싱어' 제공

고영열(28)과 황건하(24)는 어머니의 자기장으로 음악의 길에 들어선 반전의 ‘이단아’들이다. 고영열은 수영선수를 꿈꾸며 연습에 매진했다. 더 잘할 수 있는 길을 찾던 중 판소리를 하시던 어머니가 “폐활량을 늘리려면 판소리를 해봐라”란 조언에 초등학교 6학년 때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엔 국악만 들었으나 스스로 갇히는 느낌이 들어 피아노를 배우고, 클래식부터 가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장르에 탐닉했다. 그런 그를 두고 주변에선 ‘이단아’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더 자극이 됐다. 한국인이 한국음악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현실에 오기가 생겨 뭔가를 더 해보고 싶었다.

황건하는 음악을 사랑하는 부모님과 피아노를 전공한 형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 환경에서 성장했다. 또래들이 열광하는 유행 가요보다 올드팝을 즐겨 들었다. 중3 때부터는 뮤지컬 음악으로 장르를 확장했다. 특히 공연 마니아였던 어머니의 적극적인 지원 사격에 힘입어 한림예고에 진학, 본격적으로 뮤지컬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당시 롤모델은 팝페라 테너 임태경이었다. 지금도 그의 플레이리스트에는 올드팝과 뮤지컬 넘버들이 빼곡하다.

‘팬텀싱어’ 네 남자를 고래처럼 춤추게 한 공통점은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사진= 이완기(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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