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텀싱어3’ 준우승팀 라비던스의 테너 존노(노종윤·29)이 20년 미국 유학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정착한다.

존노는 16일 싱글리스트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준우승 소감과 라비던스의 청사진, 개인활동 계획 등을 전했다.

예선 때부터 장르의 경계를 허무는 무대와 청아한 음색, 힘들이지 않고 뽑아내는 고음 능력으로 프로듀서 군단과 시청자 눈길을 사로잡은 존노는 매번 인상적인 경연 무대를 꾸몄다. 소리꾼 고영열과 함께 프로듀싱 능력을 인정받으며 강력한 우승후보 구성 멤버로 거론됐다.

특히 쿠바 음악(고영열 협연)과 EDM 무대(최성훈 협연)에서 보여준 파격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힙합 스타일의 의상을 입은 채 건들거리는(?) 스웨그 강한 몸짓과 손짓으로 이목을 끌었다. 정자세로 엄숙하게 노래하는 성악가들의 무대 위 애티튜드를 단번에 파괴했다.

프로듀서 윤상은 “저런 테너가 어딨어?”라며 감탄을 토해냈고, 옥주현은 “너무나 힘들이지 않고 고음을 구사하니 보는 사람들은 힘들지 않구나 라고 오해할 거다”란 찬사 반, 걱정 반 심사평을 하기도 했다. 이에 존노는 특유의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아니다. 온몸을 다 써서 고음 처리를 한다”고 대답했다.

존노는 서울 금천구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힙합 음악에 빠져 지냈다. 고교시절 신학을 공부하러 미국 유학길에 올라, 워싱턴 DC 부근 메릴랜드의 한 고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그는 ‘왕따’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고, 교회 남성중창단에 입단하며 이국생활의 외로움과 이방인의 불안정한 삶에 위로를 얻고, 음악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뒤늦게 성악에 입문한 그는 명문 예일대와 대학원에서 성악을 전공했고, 원래 높은 음을 좋아했던 그는 바리톤을 거쳐 각종 오페라 공연에 출연하며 주목받는 테너로 성장했다.

“원래 대학원 졸업 후 미국에서 계속 활동할 생각이었는데 2년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생전에 제 공연을 한 번도 못 보셨기에 안타까움과 후회가 컸어요. 그러면서 한국에 와서 뭐라도 하고 싶단 생각을 했고, ‘팬텀싱어3’ 뉴욕 오디션이 개최된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평소 오페라 오디션도 일주일에 서너 개씩 치르고 다니던 상황이라 ‘팬텀싱어’ 역시 그 일환이라 여긴 채 지원을 했어요.”

더욱이 코로나19가 확산하며 앞서 계약돼 있던 공연들도 줄줄이 취소된 상황이었다. 모국으로 돌아와 참여한 ‘팬텀싱어3’ 경연에서는 매번 좋은 평가를 들었고, 뜻맞는 음악 동료들과도 만나게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미국 유학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올 결심을 굳혔다.

“남도민요 ‘흥타령’ 때 지용 프로듀서께서 ‘외국에서 살면서 정체성 혼란을 겪은 적이 있었는데 한국인의 정체성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평이 인상적이에요. 비슷한 환경에서 성장했던 저 역시 깊이 공감됐으니까요. 또 EDM 무대를 마치고 나서 자신감을 크게 얻었어요. ‘와우 이런 것도 되는구나’란. 머리에서 상상만 했던 게 실현이 되니까 앞으로 뭐든 할수 있겠구나란 감동이 물밀 듯 밀려들었고요.”

쿠바 음악 때는 고영열이 선곡한 이후 존노를 뽑아서 만들어진 무대였는데 이 곡은 존노가 선택해서 도전했기에 만족감이 더했다. 듀엣을 이룬 카운터테너 최성훈이가 당시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는데 존노가 “걱정하지 마라. 분명 터진다”고 용기를 복돋아 주기도 했단다.

“저희가 비록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2등 팀이 잘 된다는 좋은 예를 만들고 싶어요. 앞으로 라비던스가 보여줄 음악 세계는 정말 다양하고 무궁무진할 겁니다. 사실 결승전 때 힙합 무대도 시도할 생각이었거든요. 못해서 못내 아쉽지만(웃음) 앞으로 하면 되죠. 무엇보다 제 삶에 있어서 항상 음악이 있었다는 걸 깨닫게 해 준 ‘팬텀싱어’와 동료들, 친구들, 형님들, 동생들에게 너무 감사해요.”

사진=이완기(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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