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밴드’ 우승팀인 4인조 록밴드 호피폴라 멤버이자 첼리스트 홍진호(35)가 여름밤을 순도 높은 클래식 선율로 정화한다.

홍진호는 다음달 16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첫 단독 콘서트 ‘음악으로 정화된 밤’을 마련한다. 네오 클래식(클래식 선율에 팝 요소를 가미한) 음악을 앞세워 청중들을 신세계로 안내할 예정이다. 이번 공연에서 홍진호는 솔로곡 뿐만 아니라 피아노·현악(디토 오케스트라), 반도네온 협연(고상지), 보컬리스트와 앙상블 등 다채로운 무대를 꾸민다.

프로그램 역시 파격이다.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를 비롯해 국내 청중에게는 다소 낯선 에스토니아 합창·교회음악 대가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와 이탈리아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 그리고 ‘탱고음악 전설’ 피아졸라 곡들을 들려준다.

홍진호가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계기는 지난해 열린 JTBC ‘슈퍼밴드3’를 통해서다. 클래식 연주자로서 밴드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오기까지 고민이 만만치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가 정말 심하게 반대하셨다. 죽기 살기로 첼로 연주자의 길을 갔는데 왜 다른 길로 가려 하느냐며 내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시기까지 했다.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한가지만 생각했다. 클래식 음악가들은 대중 앞에 설 기회가 너무 부족하다. 해외 유학까지 가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뒤 한국에 돌아왔는데 들려줄 사람은 정작 내 지인들밖에 없다는 현실이 암담했다. 가장 원했던 거는 첼로를 널리 알리고 싶었다. 일상에 클래식은 많이 들어와 있는데 제대로 인식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여겼다.”

단박에 실력파 참가자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힘든 고비는 도처에 존재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1라운드 경연 무대인 ‘비바 라 비다’ 때였다.

“다른 멤버들이 노래 얘기를 할 때 난 잘 몰랐다. 그들은 바로 흥얼거리고 즉흥 연주를 하는데 난 항상 악보를 보고 결정하는 사람이라 호흡을 맞추기가 힘들었다. 특히 클래식 연주자들은 실수나 정확하지 않은 음을 내는 거에 대한 공포와 강박이 심하다. 그랬던 내가 용기를 내서 즉흥으로도 연주를 시도했다. ‘실수에 관대해질 필요가 있겠다’란 깨달음을 얻었다.”

가장 인상에 남는 무대는 전설적인 영국 록밴드 라디오헤드의 ‘크립(Creep)’이었다. 일단 곡 구성이 매우 클래시컬했다. 실제 팝신에서도 클래식한 넘버로 분류된 곡이었다. 헤비하고 일렉트릭 사운드의 음악을 어쿠스틱한 악기로 편곡했고, 콘트라베이스까지 동원했다. 미니멀한 구성으로 감정을 극한으로까지 끌어올렸다는 자부심이 여전하다. 첼로가 긴장을 고조시키며 감정을 치닫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데 희열을 느꼈다.

대중음악에 대한 이해는 깊지 않았으나 팝 음악에 클래식을 매시업하는 작업은 누구보다 ‘프로’였다. 동료들에게 적절한 클래식 넘버들을 계속 들려주자 너무들 좋아해줬고, 용기를 얻었다. 홍진호의 이런 역할로 인해 호피폴라의 서정적이면서 고품격 음악 사운드 그리고 팀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지난 4월 호피폴라의 첫 싱글앨범 ‘Spring to Spring’이 발매됐다. 연주곡도 수록됐다. 15살 어린 기타리스트 김영소와 홍진호가 공동 작곡한 ‘동화’란 곡이다. 기타와 첼로, 현과 현이 부딪히고 한몸을 이루는 앙상블이 유니크하다. 팀의 맏형인 그는 “워낙 네 멤버들 성격이 잘 맞아서 사적으로도 자주 만나서 식사하고 술 마시는 사이”라고 귀띔했다.

“첼리스트로서 도전할 분야는 광범위하다. 특히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게 영상에 어울리는 음악을 입히는 일이다. 최근 MBC 6.25전쟁 70주년 특집 다큐멘터리 ‘노병과 소년’에 참여했다. 전쟁터에서 고향을 그리며 불렀던 젊은 병사들의 노래로 유명한 ‘티퍼레리로 가는 먼 길’을 첼로곡으로 편곡·연주해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굉장히 행복하게 작업했다. 어려서부터 영화음악을 즐겨 들었다. 10대 때는 일본 영화음악에 빠져 지냈고, 프랑스 영화음악도 좋아했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광팬이다. 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큐멘터리, 영화, CF 등에서 음악감독으로 참여해보고 싶다. 그러려면 음악적 스펙트럼을 넓히는 게 매우 중요할 거 같다.”

차분한 성격에 자신의 생각을 확실하게 표현하는 밀레니얼 첼리스트는 시간이 허락할 때면 공원이나 숲에 들어가 1~2시간씩 멍 때리기를 즐긴다. 독일 유학시절 로맨틱한 고성과 포도가 깔린,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고풍스러운 도시 뷔어츠부르크에서 체류하며 생겨난 습관이다. 위로와 휴식이 필요한 시기, 그가 들려줄 한여름 밤의 ‘정화’가 자못 궁금해진다.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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