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베이스캠프 삼아 유럽무대에서 활약 중인 피아니스트 한지호(25)가 올 여름, 폭염보다 뜨거운 네 무대로 도전 행진을 벌여가고 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던 19일 오후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또 다른 공연을 준비 중인 블루 웨어 청년을 만났다.

 

 

1악장. 7월1일 ‘디토 파라디소’

지난 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디토 10주년 페스티벌 갈라 콘서트 ‘디토 파라디소’에서 피아니스트 임동혁 지용 스티븐 린과 함께 바흐의 네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BWV 1065를 연주해 색다른 감흥을 안겨줬다. 비발디 원곡을 바흐가 하프시코드를 위한 협주곡으로 편곡한 이 작품을 네 연주자가 연주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한지호는 이 곡과 함께 모차르트 디베르티멘토 K.136, 바흐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3번을 협연했다.

“워낙 제가 어렸을 때부터 유명한 페스티벌이라 많이 접해봤는데 이번에 함께하게 돼 영광이었어요. 또래 피아니스트들과 같이 연주한 것도 재미났고요. 이 곡은 해외 유명 페스티벌 연주실황을 보면 항상 등장하는 작품성 높은 레퍼토리에요. 리스너로 들을 땐 많은 음들과 화려함에 압도되곤 했는데 연주해보니 단순히 화려하기보다 바흐의 깊은 음악성을 깊이 느낄 수 있었어요.”

네 대 피아노 연주는 흔치 않다. 피아니스트의 경우 오케스트라와만 맞추는 게 아니라 다른 피아니스트들과 호흡을 맞춰야 해서 리허설 과정에서 각각 앙상블을 조율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한지호는 “공연 때 연주자나 청중이 몰입해 더욱 좋아진 부분이 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2악장. 7월2일 ‘디토 카니발’

2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디토 10주년 페스티벌의 피날레를 장식한 ‘디토 카니발- 이상한 나라의 디토’에 출연해 친숙한 클래식 넘버인 모차르트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을 연주했다.

“피아노 2대와 앙상블로 편곡된 작품인데 한 살 터울인 피아니스트 지용씨와 함께 호흡을 맞췄어요. 지용씨는 이번에 처음 만났고, 스티븐 린과는 해외 콩쿠르에 출전하면서 몇 번 만나 얘기를 나눈 적이 있고, 임동혁씨와는 인사 정도만 한 사이였는데 이번에 많이 친해지게 됐어요.”

 

 

3악장. 7월28일 ‘클래식 제너레이션’

오는 28일 오후 7시30분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선 ‘클래식 제너레이션’ 무대를 밟는다. 바이올린계 젊은 거장으로 꼽히는 신지아, 한국인 최초로 유리 바쉬메트 콩쿠르 우승 이후 안네 소피 무터 재단의 후원을 받고 있는 비올리스트 이화윤과 함께한다.

한지호는 쇼팽, 리스트와 함께 당대를 풍미했던 피아니스트 샤를 발랑탱 알캉의 ‘12개의 단조 연습곡 Op.39’ 중 마지막 곡인 ‘이솝의 향연’을 독주하고, 라벨의 피아노 3중주 a단조, 비탈리 ‘샤콘느’를 협연한다.

“지난해 6월 디토 페스티벌에서 베토벤을 협연하면서 인연을 맺은 신지아씨와 또 공연하게 돼 기뻐요. 신지아씨는 가녀리고 여성적인 면과 호방하고 강렬한 면이 적절하게 믹스돼서 나오는 연주자예요. 곡에 따라 매력이 달리 나타나고요. 또 3중주는 보통 첼로가 저음 파트를 맡는데 이번엔 비올라가 담당하는 새로운 시도라 흥미로워요. 원래 비올라를 좋아해요. 바이올린과 첼로의 매력을 다 보여주는 악기라서요.”

이번 라벨 프로그램은 피아노 트리오 중 걸작으로 꼽힌다. 피아노 트리오 편성이 화려하기 쉽지 않은데 라벨이 오케스트라적 어프로치를 함으로써 각 악기 텍스처가 매우 다양하다. 현악기 경우 다른 3중주와 달리 굉장히 많은 음역을 사용해서 연주하고 굉장히 컬러감 있는 재료를 많이 사용했다. 그럼에도 세 악기 밸런스가 너무 잘 잡혀 통일감을 부여한다. 그는 “스페인·포르투갈의 옛 댄스리듬을 프랑스 인상주의 터치로 녹여낸 원곡의 2가지 상반된 매력을 살리는데 중점을 둘 예정”이라고 전했다.

 

 

4악장. 8월31일 ‘아시안 하모니’

오는 8월25일부터 9월3일까지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열리는 ‘피스&피아노 페스티벌’의 ‘아시안 하모니’(8월31일 오후 8시 대극장)에선 일본 피아니스트 카나 오카다, 홍콩 피아니스트 레이첼 챙과 앙상블, 솔로곡, 4핸즈, 6핸즈 등 4~5곡을 연주한다.

“한 대의 피아노에서 3명의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 ‘여섯 손을 위한 왈츠와 로망스’를 해본 적이 있는데 너무 좋았어요. 이번엔 라흐마니노프 ‘모음곡’을 비롯해 호주 작곡가 펄시 그랜저의 ‘잉글리시 댄스’로 피날레를 장식하려고요. 셋이서 할 곡을 열심히 서치하다 우연히 발견했어요. 자주 연주되지 않는 편성으로 하게 돼 재미나고 의미가 깊어요. 보통 독주, 협연만 해왔는데 앞의 무대들도 그렇고 다양한 편성으로 연주를 하게 돼 생각의 틀이 넓어지고 배운 게 참 많아요. 항상 해오던 방식에서 벗어나는 기회도 됐고요.”

 

 

Finale...Who’s He?

유치원에서 배운 곡들을 장난감 피아노로 치며 놀던 손주를 귀엽게 본 할머니 할아버지가 생일선물로 피아노를 사주셔서 6세부터 피아노를 시작했다. 음악애호가인 부모님은 2~3주에 한 번씩 아들을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동반했다. 11세에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을 듣고는 쇼크를 받아 취미였던 피아노가 ‘인생템’으로 전환했고,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피아니스트의 꿈을 품었다.

서울예고 1학년 여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마스터 클래스가 참가했다가 좋은 스승을 만나게 돼 2008년 독일 유학을 떠났다. 2009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베토벤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최연소이자 한국인 최초로 3위 입상하며 세계 음악계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후 독일 슈베르트 국제콩쿠르 2위와 특별상, 본 베토벤 텔레콤 국제콩쿠르 2위와 청중상, 서울국제음악콩쿠르 피아노 부문 1위, ARD 국제콩쿠르 1위 없는 2위·청중상·현대음악특별상을 휩쓸었다.

에센폴크방음대를 졸업하고 하노버국립음대 대학원에서 수학 중인 그는 콩쿠르 경력이 입증하듯 탄탄한 테크닉 뿐만 아니라 서정성 지튼 표현력, 청중과 교감하는 능력이 빼어나다. 베토벤, 슈만, 쇼팽, 라흐마니노프 등 감성적 표현이 뚜렷한 곡들을 연주하는 걸 즐기며 이들 작품해석에서 그만의 개성을 맹렬히 가동한다. 요즘은 프랑스 인상주의 음악에 탐닉하고 있다.

“연주에서 가장 중요한 건 듣는 이와의 교감이라 여겨요. 객관적으로 훌륭한 연주를 했더라도 교감이 이뤄지지 않으면 감상하는 예술로서의 가치를 갖지 못하는 게 아닐까요. 연주자와 청중의 음악적 교감이 이뤄지면 보고 감상하는 걸로 그치는 게 아니라 체험으로 승화되거든요. 그런 체험이 인생을 더 행복하게 해주고,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믿어요. 제가 그걸 경험했기에 그런 체험을 가급적 여러 사람한테 전하고 싶어요. 그런 연주를 하는 게 꿈이자 음악가로서의 가치관이에요.”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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