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장이 전국법관대표회의(법관회의)의 ‘사법부 블랙리스트’ 등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추가조사 결의를 거부한 것에 항의해 최한돈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앞서 지난 1일 전주지법 군사지원 차성안 판사가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사법부가 블랙리스트 논란을 묻어두고 간다면 판사의 직을 내려놓을지를 고민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판사들의 본격적인 사표제출의 신호탄이 될지에 관심이 쏠리는 중이다.

최 부장판사는 20일 법원 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리고 “(추가조사 거부는) 양 대법원장이 사법부의 마지막 자정 의지와 노력을 꺾어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사직서를 제출한다고 밝혔다.

최 부장판사는 법관회의에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등에 대한 추가조사를 추진하는 ‘현안 조사 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법관회의는 지난달 19일 ‘사법부 블랙리스트’ 등 의혹을 추가로 조사할 권한을 소위에 위임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양 대법원장은 지난달 28일 “교각살우의 우를 범할 수도 있다”며 거부한 바 있다.

최 부장판사는 내부통신망 글에서 “양 대법원장이 조사 소위 위원들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종전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이유를 내세워 추가조사를 거부했다”며 사직 경위를 밝혔다. 그는 소위가 추가조사 과정에서 확보된 증거가 외부로 유출되는 등의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대법원 법원행정처와 협조하겠다는 의지를 수차례 밝혔지만 양 대법원장이 이에 응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과거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도 다수 법관들의 목소리가 천금과 같은 무게를 지녔는데, 지금은 80%가 넘는 찬성으로 통과된 법관회의 결의조차 가벼이 여겨지는데 통탄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최 부장판사는 “오늘날 사법부는 사법행정권이라는 미명 아래 더욱더 조직화된 형태로 법관들의 자유로운 연구 활동까지 감시당하는 현실 앞에 서 있다”며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또 “법관에 대한 동향파악은 그 어떤 이유를 내세워 변명하더라도 명백히 법관독립에 대한 침해로, 재판권을 행사하는 법관에 대한 압박 또는 순치 목적으로 활용될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이어 2009년 신영철 전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방법원장 시절 촛불집회 재판에 개입한 사실이 드러난 것을 언급하며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명백히 규명되지 않으면 또 다른 8년 뒤 사법부가 2009년도와 지금 겪고 있는 것과 같은 혼란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최 부장판사는 “두 번의 학습효과에 무디어진 법적 양심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사법행정을 관료적 효율성이란 방향으로 몰고 갈 것”이라고도 했다.

마지막으로 최 부장판사는 자신의 사직서 제출을 통해 양 대법원장이 진상조사 거부라는 입장을 바꾸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사진= YTN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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