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 바리톤 길병민(26)은 JTBC ‘팬텀싱어3’ 첫 등장부터 화제였다. 세계적인 극장인 영국 로열오페라하우스 단원으로 활동 중인 수려한 외모의 그가 예심 무대에서 ‘팔라미 다모레 마리우’를 매혹적인 저음과 월드 클래스급 표현력으로 부른 순간부터 ‘우승 후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최종 결승을 앞두고 레떼아모르(길병민 김민석 박현수 김성식)를 결성, 최종 3위를 차지했다. 기쁨과 아쉬움, 충만함과 도전욕구가 혼재된 감정을 품은 채 싱글리스트 인터뷰석에 앉은 20대 청년의 목소리와 닮은 단단한 중심, 차분함과 논리정연함이 차이나카라 드레스셔츠 위로 스멀스멀 퍼져나갔다.

“정말 아름다운 것, 감동적인 것을 보고 경함한 뒤에는 알기 때문에 나눠줄 수 있다고 멤버들과 자주 얘기하곤 해요. 그런 게 ‘사랑의 편지’란 의미를 지닌 레떼아모르 음악에 많이 녹아난 듯해요. 조금 더 고귀하고 숭고한 것들을 같이 나누고 싶어요. 해외 경험, 살아오면서 겪은 챌린지가 저희가 부른 노래에 그렇게 다 녹아든 듯 싶어요. 늘 곁에 있는 음악, 오래 듣고 싶은 음악을 지향하는 레떼아모르의 마음이 스며들지 않았나 여깁니다.”

팀의 막내이면서도 리더 겸 대변인(?)을 맡을 만큼 리더십이라든가 언변, 품격, 절제된 애티튜드가 몸에 배어 있다.

사진=크라이스 클래식 제공

어린 시절부터 춤추고 노래하기를 즐겼던 그는 동요교실을 거쳐 KBS어린이합창단·서울시립소년소녀합창단에서 노래했고 타고난 미성 덕분에 선화예중에 진학했다. 본격적인 성악을 시작한 나이는 열네 살. 이듬해 변성기가 찾아오며 슬럼프를 겪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삶에도 변화가 찾아왔고 기회와 성과가 그를 반겼다. 서울대 성악과에 입학, 수석 졸업했다. 테너로 시작해 현재 베이스 바리톤으로 활동하고 있다.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2016 프랑스 툴루즈 콩쿠르 최연소 베이스 우승을 시작으로 2017 모나코 몬테카를로 콩쿠르와 빈 옷토 에델만 콩쿠르 우승했고, 미국 조지아 오페라 크라운 콩쿠르 우승, 이탈리아 비오티 콩쿠르 준우승을 섭렵했다. 지난해 7월 몇 차례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던 영국 런던 로얄오페라하우스의 아티스트 프로그램에 합격해 단원으로 활동하게 됐다.

“유학이나 활동하는 공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하잖아요. 저는 예전부터 런던을 선호했어요. 품격과 절도, 우아함의 킹스맨 문화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죠. 정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값진 경험과 배움을 얻었죠. 오전부터 체계적인 트레이닝을 받는가 하면 무대에 오르고, 쟁쟁한 예술인들과 사교를 하고 하나하나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제가 출연하는 공연시간이 겹쳐 뮤지컬, 연극, 콘서트 등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게 못내 아쉽지만요. 아침마다 템즈 강변을 조깅했던 기억도 선명하고요.”

사진= 크라이스 클래식 제공

남들은 그토록 원하던 세계무대 진출, 그것도 유명한 오페라 극장 솔리스트로 활동하던 그가 크로스오버 4중창단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다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거라는 게 짐작된다.

“올해 초 출연을 결정하고 오페라단에는 사표를 제출했어요. 주변 어른들은 심히 염려하셨지만 가족들은 반대하지 않았고요. 늘 제 결정을 지지해주셨거든요. ‘너가 행복한 일을 해라. 단 책임은 너의 몫이다’란 말만 하셨죠. 어렸을 때부터 제 꿈은 오페라 가수보다는 엔터테이너였어요. 음악을 하는 사람, 노래를 잘하는 사람의 꿈을 가졌던 유년기를 보내서인지 해외 오디션 공고를 보는 순간 제 가슴은 뛰기 시작했고, 지금 아주 행복해요.”

레떼아모르에 자부심과 애착이 강한 그는 국내활동을 기반으로 해외 활동도 다채롭게 해나갈 요량이다.

“국내 활동을 충실히 하면서 각자의 영역에서 끊임없이 꿈을 펼치고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희 팀 초창기 롤 모델이 일디보였어요. ‘팬텀싱어’의 지향점이기도 했고. 세계무대 진출이 그리 먼, 거창한 프로젝트만은 아닌 거 같아요. 이미 조수미 선생님도 있고, K팝 가수인 BTS도 있고...한국문화가 이미 세계화돼 있으니까요. 레떼아모르가 해외 무대에 선다면 한국인이고, 한국의 정서를 지니고 있기에 해외 관객들에게 우리의 삶과 정서, 스토리가 신선하게 느껴질 거라 여겨요.”

길병민은 “우리의 진정성과 꾸준함이 무기가 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세계적인 팝페라 그룹 ‘일디보를 닮은’이 아니라 ‘레떼아모르 자체’가 고유명사가 됐으면 한다는 소망을 덧붙였다.

그는 계획이 다 있는 남자이자 아티스트다. 먼저 레떼아모르의 경우 남성 4중창단으로 고착되지 않은, 액티브한 그룹이 되고 싶단다. 무대 위 몸쓰임이 유연하다거나 다채로움이 살아있는 팀이란 느낌을 주고 싶어서 안무에 대한 공부도 계획 중이다. 성악가로서의 포부도 남다르다.

“‘국가대표 성악가’란 별칭을 좋아해요. 정도를 끊임없이 갈고 닦아서 세계 최고의 진가를 발휘하는 인물이 되고 싶어요. 더불어 엔터테이너, 크리에이터 역량을 펼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진행이나 기획 같은. 워낙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고 타인의 이야기를 끌어낸다거나 장점을 발견하는 데서 행복함을 느끼거든요. 피아니스트 김정원 선생님이 그런 면에서 좋은 선례를 만들어주셨죠. 좋아하는 방송인이 강호동씨예요. 한 분야에 정점을 찍은 뒤 방송으로 진출해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후배들을 끌어주고 파이팅을 보여주는 면에서 인상 깊었어요. 저 역시 그런 인물이 되고 싶어요.”

사진= 최은희 기자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