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호(24)는 인터뷰를 잘 안 하는 배우로 유명하다. 많은 연예인이 SNS 등으로 자신의 일상을 대중과 공유하는 것에 비해 그는 SNS에도 서툴다. '해시태그'라는 말을 몰라 '샵'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덕분에 그의 사생활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신비주의 전략일까? 아니다. 유승호는 "인터뷰할 때 형식적으로 얘기하는 걸 안 좋아해서 인터뷰를 안 한 것도 있다"고 답했다. 그런 그가 인터뷰를 하겠다고 나섰으니, 솔직한 대답들이 기대됐다.

 

 

"소현이하고 명수형이 하길래 '내가 해야 되는 건가' 싶었다. 또 내가 SNS나 팬들과의 소통이 아예 없다 보니 궁금한 것도 많으실 것 같았다. 근데 나는 얘기할 게 딱히 없다. 평소에 뭘 하는 게 진짜 없다. 셀카 찍어서 올리고 이런 것도 못 하겠더라."

진지한 눈빛과 그가 맡았던 선 굵고 깊이 있는 배역들과는 사뭇 다른 순수한 웃음이 얼굴에 번졌다. 문득 2002년 영화 '집으로'에서의 소년 유승호가 떠올랐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유승호는 아역 배우 출신이다. 2000년 드라마 '가시고기'로 데뷔, 어느덧 배우 인생 18년 차다.

짙고 깊은 눈매 덕분인지 그는 사극에서 힘을 발휘했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2004)에서는 이순신을, '왕과 나'(2007)에서는 성종을, '태왕사신기'(2007)에서는 담덕을, '선덕여왕'(2009)에서는 김춘추를, '무사 백동수'(2011)에서는 여운을, '아랑 사또전'(2012)에서는 옥황상제를 연기했다. 최근에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조선마술사'(2015)와 '봉이 김선달'(2016)도 사극이었으며 지난 13일 종영한 MBC 드라마 '군주-가면의 주인(이하 군주)'도 사극이었다. 사극을 많이 했기 때문일지, 유승호는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사연이 깊은 진지한 인물을 주로 연기하는 편이었다.

 

 

"겁을 많이 냈었나 보다. 전 두 작품이 영화 흥행이 잘 안 되고 나서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 '리멤버-아들의 전쟁'은 잘됐지만 연기적인 부분에서 벽에 부딪히다 보니 스스로 무너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지금까지 사연이 깊고, 뭔가 안 좋은 일을 겪고 바닥을 치는 인물들을 많이 해 왔다. 또 사실 그런 연기를 할 때 가장 가슴에 와닿고 결과물을 볼 때도 재밌다. '군주'는 재밌어서 선택한 것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비겁한 선택이었다. 늘 하던 걸 했으니까. 자신감도 없고 많이 위축된 상황에서 용기가 없었다."

다행히 그는 '군주'의 흥행에 "자신감이 많이 회복됐다"며 한시름 놓았다는 듯 편안한 표정을 지었다. 탄탄하게 입지를 다진 배우지만 그도 흥행의 압박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유승호가 작품 흥행에 유달리 신경을 쓰는 이유는 자신의 네임밸류나 필모그라피에 대한 걱정보다는 함께 일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이 더 컸다.

"작품이 흥행이 안 되니까 나 때문에 영화가 잘못된 것 같아서 죄송스러웠다. 작품을 선택할 때 마음은 원하는 걸 하고 싶다. 근데 그러면 너무 이기적인 게 아닌가 싶다. 많은 사람이 돈과 시간과 명예를 투자하는데, 투자한 만큼 잘 돼야 한다. 단순히 내가 좋은 걸 하면 그 사람들의 희생을 바라는 거다. 모든 사람이 '윈윈'할 수 있는 작품을 1순위로 본다."

흥행을 생각하지 않은 작품은 나중에 돈을 많이 벌어서 자비로 찍겠다고 덧붙였다. 희생을 해도 혼자만 희생하겠다는 다짐이다. 유승호의 부모님은 그에게 '남에게 피해주면서 살지 말라'고 항상 말씀하셨다.

 

 

"어떤 작품인지는 기억이 안 난다. 어렸을 때 촬영 현장에 지각한 적이 있다. 그때 '야, 백 명 넘는 사람이 너 기다리고 있었어'라는 말을 들었다. 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기다리게 한다는 게 너무 미안했다. 그 이후부터 나 한 사람이 힘들면 다른 사람들이 편해지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정말 아니다 싶으면 얘기한다. 하지만 참을 수 있는 선에서는 남을 먼저 생각하려고 한다."

그가 착실히 쌓은 호감과 바른 청년 이미지는 거저 나온 게 아니었다. 천성이 뒷받침한 결과물이었다. 그러면서도 유승호는 "너무 힘들다. 정답이 없다. 나는 나의 행복을 위해 사는 사람인데, 한 번쯤은 이기적으로 살아야 할까 싶다"며 삶의 태도를 어떻게 견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드러내기도 했다.

드라마 '군주'는 이야기의 흐름을 납득하기 힘들다는 평가와는 달리 시청률은 10주 연속 1위를 하는 등 기세등등했다. 가장 큰 공을 세운 건 '하드캐리 했다'는 평을 들은 유승호였다. 칭찬을 건네자 그는 "멱살 잡고 끌고 가긴 했다"며 농담으로 웃으며 받아넘겼다.

"'군주'는 세자가 한 나라의 지도자가 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세자가 통쾌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보다는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모습을 그리려고 했다. 그런 면에서 조금 답답하거나 부족하게 보였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이 작품에서 세자라는 인물을 만든 건 내가 아니라 세자 주변의 배우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궐 안의 세자, 궐 밖의 세자, 보부상에 들어간 뒤이 세자 등 흐름에 따른 세자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동료 배우들한테 고맙다."

 

 

'군주'에서 유승호는 격한 감정을 자주 표현해야 했다.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 사랑하는 여자를 마음껏 좋아할 수 없는 복잡한 심정, 대목에 대한 분노 등을 연기하며 그는 정신적으로 피로감을 느꼈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냐고 하자 유승호는 "촬영이 끝남과 동시에 풀렸다"고 덤덤하게 대답했다.

"현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현장에서 바로바로 풀리는 편이다. 힘든 일이 있어도 혼자 해결한다. 친한 연예인 동료도 잘 없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취미 생활을 하지는 않는다. 취미가 없다. 찾아보려고는 하는데 잘 모르겠다. 인생의 대부분을 현장에서 보냈다. 일 끝나면 노는 게 죄스럽게 느껴진다. 어렸을 때부터 계속 일을 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작품에서 유승호의 파트너로서 호흡을 맞췄던 배우 김소현(18)은 얼마 전 유승호와 연기하며 설렘을 느낀 적이 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유승호는 "미성년자인데, 나도 설렜다고 하기는 좀 그렇다. 노코멘트하겠다"며 난감한 듯 웃어 보였다. 소년 배우가 벌써 이십 대 중반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멜로 연기는 여전히 어렵다. 그렇다고 연애 경험이 없는 건 아니었다. 사생활에 대해 조심스럽게 묻자 "몇 번 연애 경험은 있다. 그런데 (연기에) 크게 도움은 안 됐던 것 같다"고 솔직한 답변이 돌아왔다.

"슬픈 감정을 다룰 때는 백 퍼센트 가슴으로 느끼고 아파하는데 멜로는 그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느끼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만족도가 낮다. 흉내 낼 수는 있지만 아쉬운 마음이 크다. 소현이도 좀 그렇더라. 소현이한테도 그냥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하자고 그랬다. 솔직히 잘 모르겠더라. 죽음과 연결된 사랑은 소현 씨나 저나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이잖나."

 

 

취미도 없다는 유승호는 "일하기 귀찮기도 하지만 현장에 있을 때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일만 하다 보면 지칠 법도 한데, 제법 굳건해 보였다. 데뷔 18년 차 배우 유승호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좀 악한 역에 욕심이 난다고 털어놨다.

"'보고싶다'에서 연기한 그런 종류의 악도 있을 거고, 징하게 나쁜 놈도 있을 거고, 쌈마이로 나쁜 것도 해보고 싶다. 선(善)은 어떻게 보면 뻔할 수 있다. 내가 지금까지 늘 하던 거다. 그런 걸 계속하면 내 연기가 사극이든 현대극이든 똑같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안 웃고 가만히 있으면 주변에서 화났냐고 물어본다. 여기 눈 보이나? 쌍꺼풀 말고 들어간 부분. 군대에서 생겼는데, 혼자 생각하고 있으면 뭔가 음흉해 보이기도 하고 나쁜 모습들이 어느 순간 얼굴에서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한편,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유승호는 진학 계획은 "전혀 없다"고 잘랐다. 공부하기 싫다는 핑계다. 무공해 소년에서 바른 청년. 여태까지 그가 보여 준 이미지다. "거짓말, 형식적인 대답은 싫다"며 솔직할 줄도 아는 이 청년 배우의 다음 행보는 스스로를 웃게 하는 것이길 바라 본다.

 

사진 제공=3H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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