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 오브 더 나이트(오페라의 유령)’ ‘제비꽃’ ‘테케로 테케로’ ‘리베라’ ‘레퀴엠’ ‘에인젤’...베이스 구본수(32)가 JTBC ‘팬텀싱어3’에서 솔로, 이중창, 삼중창, 사중창으로 귀호강을 선사한 노래들이다. ‘초원베이스’가 싱글리스트를 통해 바위같이 단단한 음색을 닮은 자신의 음악인생을 써내려갔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성악에 눈을 뜬 계기는 고교 중창단 활동을 하면서부터였다. 고2 때 합창대회에 출전해 우리 팀이 종교음악 곡을 불러 1등을 차지했다. 그때 무대에서 박수를 받는데 그 느낌이 너무나 황홀했다. “이런 세계도 있구나”란 감동이 밀물 듯 밀려들었다. 처음 노래의 시작을 중창으로 해서인지 이후 성악을 공부하고, 솔리스트로 활동할 때도 동료들과 함께 선율과 화음을 만들어가는 작업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남아 있었다.

고3 때부터 성악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늦은 나이였다. 입시준비를 제대로 했던 건 수능 끝나고나서였다. 고작 한달 보름 집중 수업을 받고 기적적으로 부산대 음대에 07학번으로 입학했다. 학교를 다니다 차분히 준비를 해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 11학번으로 재입학했다. 그때부터 서울 유학생활이 시작됐다.

한예종 시절 나의 은사는 ‘바리톤의 시인’으로 불린 최현수 교수님이었다.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남성 성악부문 1위(90)를 차지한 바 있는 대단하신 분이었다. 성악 외길을 걸어온 교수님은 지금도 나의 롤모델이다. 오페라로도 유명하셨지만 가곡들을 많이 부르셨다.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던 게 노래의 가사와 음악이 주는 분위기를 제대로 표현하려고 연구를 많이 하신 게 절로 느껴졌다. 내가 어떤 곡을 부를 때 이런 접근법을 유지해야하지 않을까, 자극과 영감을 주신 분이다.

한예종을 졸업한 뒤 독일 바이마르 국립음대로 유학을 갔다. 워낙 리트(독일 가곡)를 좋아했다. 오페라도 많이 했지만 리트의 음악적 디테일을 연구하고, 무대에서 완성시켰을 때의 짜릿함이 있다. 그런 것들을 좀더 잘하고 싶어서 미국이나 이탈리아가 아닌 독일을 선택했다.

이곳에서 독일인 교수님을 사사하며 많은 배움을 얻었다. ‘팬텀싱어3’ 참가를 앞두고 그분께 상의를 드렸을 때 조금 아까워하셨다. “물론 너의 선택이지만 본수 너는 성악가로서 좋은 자질이 많은데 아쉽기는 하다”고 말씀해주셨다. 하지만 워낙 열려있는 분이라 나의 결정을 존중해주셨다. 이후 최 교수님에게 연락 드렸을 때 선생님 역시 좋게 받아들여주셔서 매우 감사했다.

클래식 성악을 공부하는 성악도였지만 평소에는 크로스오버 음악이나 가요도 많이 들었다. 난 음악적 취향이 분명한 편이다. 듣기에 마음 편한 곡이 좋았다. 그래서 포크송도 즐겨 들었다. ‘팬텀싱어3’ 첫 라운드 때 이정권씨와 듀엣 무대를 꾸몄는데 그가 조동진 님의 ‘제비꽃’을 선택해서 너무 좋았다. 경연에서 부르기엔 화려함이나 웅장함이 부족한 곡이지만 그저 좋았다.

사진출처=JTBC '팬텀싱어3'

나뿐만 아니라 많은 젊은 성악가들이 크로스오버 음악을 즐겨 듣는다. 요즘은 유튜브 등 다양한 루트로 빠르고 간편하게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시대라 클래식을 하면서도 다른 장르의 음악을 감상하게 된다. 대중 및 팬들과의 소통, 협업에 대한 관심이 ‘본능적으로’ 크기에 크로스오버 뮤직에 관심을 갖는 듯 하다. 클래식과 다른 형식의 음악을 들으면서 고민을 거듭하게 되고 시야가 넓어진다고나 할까. 나 역시 가장 해보고 싶은 장르였다. 그래서 ‘팬텀싱어3’ 지원서를 작성하게 됐다.

‘팬텀싱어3’에 출연하면서 컬처 쇼크와 더불어 물음표와 느낌표가 이어졌다. 이런 음악들도 있구나, 그래서 많은 시도를 해보게도 됐다. 성악가라고 성악만 잘하는 게 아니더라. 레떼아모르의 박현수(바리톤·팝페라 가수) 같은 경우는 진짜 팝을 저렇게도 소화하는구나 싶어 깜짝 놀랐다.

독일 중부에 있는 도시 바이마르는 18~19세기 독일문화의 중심지였다. 괴테, 실러 등이 이곳에 살았고 그 뒤 작곡가 리스트, 철학자 니체의 숨결이 깃들었다. 도시 곳곳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유적지들이 즐비하다. 숲과 나무, 강 등 자연을 품은 고즈넉한 곳이다.

유학생활 도중 생각이 많아지거나 잠이 안올 때는 요리를 하곤 했다. 파스타나 고기요리를 주로 해먹었다. 한국요리가 그리울 때는 마트에 가서 재료를 사가지고 닭볶음탕을 만들어 먹었다. 최근에는 라포엠의 리더이자 동갑내기 친구인 유채훈의 영향으로 사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기억이란 게 시간이 흐르면 잊혀지기 마련인데 찍어놓으니까 보면서 추억을 회상하는 맛이 있더라. 한국에서 찐팬들을 많이 만나다보니 그분들을 계속 기억하고 싶은데 수단이 사진 밖에 없어서 DSLR 카메라도 새로 장만했다. 내년 4월께 학업 마무리차 독일로 돌아가면 바이마르의 아름다운 풍광을 이 카메라에 담고 싶다. 졸업하면 떠나야할 테니.

앞으로 어떻게 내 길이 펼쳐질지 모르겠지만 베이스가 성악이다보니 성악적인 걸 하면서 크로스오버 음악활동을 병행하고 싶다. ‘팬텀싱어3’에 참가하면서 느꼈던 게 가요나 팝의 경우 성악가들이 불렀을 때 또 다른 맛이 나는 게 있더라. 그런 곡들을 찾아서 나만의 색깔로 빚어내고 싶다. 클래식에 얽매이지 않은 채 할 수 있는 한 다양한 음악의 길을 밟아보고 싶다.

사진= 지선미(라운드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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