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배우 토마스 크레취만(54)이 대한민국의 소중한 역사 속으로 뛰어들었다.

 

오는 8월3일 개봉을 앞둔 ‘택시운전사’(감독 장훈)에서 토마스 크레취만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현장을 전세계에 알린 실존 인물 위르겐 힌츠페터를 연기했다. 세계적 배우다운 겸손한 자세로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신념과 진심을 또렷한 눈빛으로 고스란히 전달하며 관객들 가슴을 울린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서울의 택시운전사 김만섭(송강호)이 통금시간 전까지 광주에 다녀오면 큰돈을 준다는 말에 독일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를 태우고 아무것도 모른 채 광주로 가게 된 이야기를 그린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소중한 역사다. 더욱이 위르겐 힌츠페터(이하 피터)는 그 소중한 역사의 현장 속에서 목숨을 걸고 기록해 전세계에 전달한 고마운 인물이다. 토마스 크레취만은 자신이 이 배역을 맡았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는 듯 보였다.

“대본을 받기 전엔 5.18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 중요한 역사가 세계는 물론, 아시아 내에서도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연기를 하기 전에 좀 더 많은 걸 알고 싶어서 인터넷을 찾아보고, 다큐멘터리도 많이 살펴봤다. 흥미로운 건 5.18에 대한 영상자료는 피터가 촬영한 것이 대부분이라는 점이었다. 흐뭇하고 놀라웠다.”
 

역사적으로도, 연기적으로도 흥미로운 배역이었지만 그에게 피터 역은 꽤 복잡미묘한 감정을 남겼다. 앞으로 한국 관객들이 5.18에 대해 생각할 때 자신의 연기를 먼저 떠올릴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피터 역을 맡은 건 굉장한 영광이다. 역사적 사건에서 큰 역할을 한 인물이기 때문에 흥미로웠다. 하지만 실존인물을 연기하는 건 늘 막중하다. 내 연기로 인물의 명성에 피해가 갈 수도 있다는 점도 걱정이 되고, 또 너무 위인처럼 그려지게 만드는 것도 옳지는 않은 것 같다. 최대한 실제처럼 연기하려고 노력했다.”

 

토마스 크레취만의 우려와 다르게, 지난 언론시사회부터 최근 펼쳐진 전국투어 시사회에서 그의 연기에 대한 호평이 쏟아졌다. 대개 세계적 배우의 품격을 여실히 보여줬다는 평이었다. 하지만 그는 “내 연기는 눈뜨고 보기 힘들었다”며 의외의 자평을 전했다.

“배우로서 촬영 현장에서 늘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연기한다. 감독을 비롯한 모든 스태프들이 만족할 때까지 다양한 톤과 도전을 하는 건 즐겁다. 그런데 이상하게 늘 내 연기 결과물을 보면 부끄럽다. ‘택시운전사’도 마찬가지다. 훌륭한 작품이 나왔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도 모두 훌륭했는데, 나만 그렇지 못했다.(웃음) 다만 바라는 건 한국 관객들이 내 연기를 보고 거슬리지 않게 생각했으면 한다.”
 

토마스 크레취만의 자평과 반대로 함께 호흡을 맞췄던 배우 송강호는 싱글리스트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연기를 극찬한 바 있다. 이 사실을 토마스 크레취만에게 전했다. 그제서야 그는 안심했다는 듯 활짝 웃어보였다.

“송강호가 내 칭찬을 했나?(웃음) 칭찬 받아야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송강호다. 그는 참 판타스틱한 배우다. 우리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는데도 아주 쉽고 편안하게 호흡을 맞췄다. 이건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 송강호가 가진 훌륭한 리듬이 내게 꼭 맞았다. 코믹한 연기를 하다가 갑자기 표정을 싹 바꾸고 감동 연기로 전환하는 유연성도 갖춘 최고의 배우다.”

 

그는 현재 독일은 물론, 할리우드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무수한 작품을 촬영한 베테랑이기에 한국 촬영현장의 느낌이 어땠는지 질문했다. 잠시 그 당시를 회상하던 토마스 크레취만은 이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너무 고마운 일이 많았다”고 말했다.

“가장 큰 장벽은 역시 언어였다. 할리우드와 독일, 한국에서 영화 제작 과정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택시운전사’가 할리우드에 비하면 작지만, 한국에서는 꽤 큰 규모의 작품이라고 느꼈다. 그래도 시간과 제작비의 제약 때문에 빠른 소통이 중요한데, 나는 통역을 거쳐야해서 준비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다. 이건 나 뿐 아니라,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도 힘들었을 거다. 그런데 모두들 따뜻하게 받아주고 이해해주려고 노력해줘서 고마웠다. 하나하나 챙겨주면서 마치 내가 꼭 유치원생이 된 기분이었다.(웃음)”
 

독일과 할리우드를 오가며 숱한 작품을 찍어온 그지만, 지구 정반대편 대한민국에 와서 연기를 한기로 결정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크레취만은 “한국영화에 출연한 건 분명 배우로서 커다란 자극이 됐다”는 생각을 수줍게 고백했다.

“‘택시운전사’는 ‘세상에 대해 배울수록, 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준 작품이다. 가장 큰 자극은 이제 내가 세계 어디서든 촬영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거다.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잘 마무리해서 기분이 좋다. 또 두 번째는 내가 얼마나 오만했는지 알았다는 거다.(웃음) 처음에 장훈 감독을 만나서 ‘통역 필요 없다’고 말했었다. 사실 영화 설정도 소통 되지 않는 캐릭터들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작품을 잘 하려면 얼마나 많은 문제와 어려움을 잘 준비해야 하는지 느꼈다.”

 

한 시간 가량 영화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나눈 토마스 크레취만에게 마지막으로 ‘택시운전사’를 볼 예비 관객들에게 한 마디를 부탁했다. 이에 그는 관객들을 향한 부탁과 함께, 영화를 찍고 난 후 자신의 내면에서 변화한 한국에 대한 인상을 전했다.

“솔직히 이전까지 한국을 잘 몰랐다. 물론 이 작품 하나로 많이 알게 됐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더 깊이 있게 알게 된 것 같다. 나도 어릴 적 동독에서 서독으로 탈출했던 경험이 있다. 한국에서 분단 현실을 보고, 탈북과 남북관계에 대한 관심이 더 크게 생겼다. 또 ‘택시운전사’를 통해 5.18과 한국 민주화운동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하게 됐다. 정말 아프고, 또 훌륭한 역사를 가진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이제 영화를 볼 관객들이 내 연기에 대해 ‘알맞게 소화했다’는 평을 해준다면 너무 고마울 것 같다.”

 

사진=쇼박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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