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남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장훈(43) 감독이 ‘택시운전사’로 극장가 드라이빙에 나섰다. 그 동안 ‘의형제’ ‘고지전’ 등 날카로운 시선과 번뜩이는 연출로 영화 팬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왔던 터라 언제나 그의 행보는 큰 기대감을 전달한다. 남북 분단 상황과 6.25 전쟁을 지나, 이번엔 1980년 5월 광주로 향한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서울의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이 통금시간 전까지 광주에 다녀오면 큰돈을 준다는 말에, 독일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를 태우고 아무것도 모른 채 광주로 가게 된 이야기를 담았다. 민감한 역사인 광주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만큼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 조심스럽고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을 텐데, 인터뷰 자리에서 만난 장훈 감독의 눈빛은 당당했다.

 

Q.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라는 민감한 역사를 다루는 게 꽤 많은 부담을 주는 작업이었을 것 같다.

A. 2015년도 시나리오 초고가 나왔을 때 연출 제안을 받았다. 비극적인 역사를 다루는 게 상당한 부담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6.25를 다룬 ‘고지전’을 연출할 때도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이번에도 그보다 고민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웃음) 광주시민들, 택시기사들 모두에게 누가 되지 않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역사의 무게만큼 인물에 초점을 맞춰서 작업을 진행했다.

 

Q. 그렇게 많은 고뇌를 할 만큼 망설여지는 작업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출을 맡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A. 마음속에서 만섭이라는 인물과 동일시되는 걸 느꼈다. 아주아주 평범한 점이 닮았다.(웃음) 물론 만섭이 저보단 운전을 잘하지만, 정의로운 사람도 아니고 딸을 잘 키우는 게 목표인 소시민적 사람이다. 잘난 구석 하나 없는 그 사람이 내 자신처럼 느껴졌다. 또, 아무래도 가해자나 피해자였다면 다른 세상 이야기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만섭도, 피터 기자도 정확한 상황을 모르고 내려간 사람들이다. 바깥의 시선이라는 게 만드는 입장에서 더 접근하기 수월했던 거 같다.

 

Q. 이번 ‘택시운전사’가 5.18을 다뤘지만, 이미 그 전에 ‘고지전’에선 6.25 전쟁을, ‘의형제’에서는 분단현실을 다뤘다. 민감한 소재를 연달아 하다보니 ‘도전적인 감독’ 이미지가 생겼다.

A. 도전은 아니고, 우연인 것 같다.(웃음) 분단 현실, 6.25 전쟁, 5.18 광주 민주화운동 모두 도전이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작품을 읽을 때 관객처럼 읽는다. 어떻게 만들까 생각하지 않고, 얼마나 내 마음이 움직였는가로 선택한다. 그 시대나 역사를 떠나서 내부 사람들의 모습, 변화, 관계에 더 끌리는 것 같다. 어쨌든 관객들은 인물에 이입해 정서적 경험을 하는 것 아닌가.(웃음)

 

Q. 흔히 아픈 역사를 소재로 하면, 지나치게 감상적이라거나 지나치게 엄숙한 태도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신경 쓸 부분이 많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A. 감상적이라는 건 비판할 게 아니라, 비극을 바라보는 태도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슬퍼하고, 감정을 더 부여하는 건 누군가가 바라보는 역사적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5.18 당시에 많은 분들이 일어날지 몰랐던 사건에 대해 황망히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생각하면 감상적이고, 엄숙한 건 어찌보면 당연한 듯하다. 마음이 아픈 일이니까 말이다. ‘택시운전사’도 이 갑자기 생긴 비극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Q. 영화를 만들기 전, 이 영화 사연의 실제 주인공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를 만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A. ‘당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겠다’는 말씀을 드리러 갔다. 스토리를 들으시더니 ‘좋다’고 ‘잘 만들어 주셨으면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 사실 그 전엔 걱정이 많았다. 실제 김사복씨를 찾을 수 없어서 캐릭터 만섭의 행적은 영화에서 꾸며진 건데, 재구성된 부분이 힌츠페터 기자의 경험 허용범위 안에 있구나 싶었다. 그때 잘 만들어보자고 결심했다.

 

Q. 힌츠페터 기자에게 궁금한 점도 많았을 것 같은데, 어떤 것들을 물어봤는가.

A. 당시 힌츠페터 기자의 행보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일본에 있다가 광주 소식을 듣고 바로 한국으로 건너온다. 이야기를 나눠보면 캐릭터를 조금 입체적으로 그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왜 기자가 됐는지’를 여쭤봤다.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돈 벌려고”라 말씀하시더라(웃음). 감동적인 대답을 기대했었는데, 오히려 이런 평범한 대답이 그를 더 대단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어쨌든 돈 버는 일에 직업의식을 갖는 다는 게 멋있지 않나.(웃음)

 

Q. 최근 한국 박스오피스를 예측하기는 참 쉽지 않다. 더구나 맞대결을 펼치는 ‘군함도’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흥행이 잘 될 수 있을까?

A. 사실 ‘군함도’도 ‘택시운전사’도 다 한국영화고, 아픈 역사를 바라보고 있잖아요. 다 잘되면 좋죠.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충분하게 담론화 되지 못했기에 계속 만들어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실 영화는 경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문제에요. 모든 감독님이 다 마찬가지일텐데, ‘어떻게 잘 만들까?’를 고민하지 ‘어떻게 이길까?’를 생각하진 않아요. 영화마다 의미와 재미가 있는 거니까. 관객 분들도 그렇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Q. 이미 개봉 훨씬 전부터 영화 팬들의 기대를 받고 있었다. ‘택시운전사’를 어떻게 관객들이 봐주셨으면 하는가?

A. 영화는 모두가 알고 계신 1980년 광주를 배경으로 한다. 그런데 무겁게 그걸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냥 재미있고, 따뜻한 대중영화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 무겁게 보는 게 꼭 정답은 아니다. 역사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 보고, 그 다음 해석은 극장 문 나서는 관객들의 몫이다. 그 후에 무거워질 수도, 가벼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 자체는 재밌고 따뜻한 영화다.(웃음)

 

 

사진=최교범(라운드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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