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 액션 제왕’ 류승완(44) 감독이 이번엔 일제강점기, 가슴 아픈 역사를 다룬 영화 ‘군함도’로 관객들을 찾았다. 영화는 1945년, 일본 군함도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이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 스토리를 담았다.

지난달 26일 개봉해 역대 최고 오프닝 신기록(97만 명), 올해 최단 기간 500만 관객 돌파 등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지대한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일부 관객들 사이에서 역사 왜곡, 식민사관 조장 등 각종 논란이 불거지며 올 여름 극장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무더위가 몰아치던 8월 초 삼청동의 카페에서 류승완 감독을 만났다. 얼굴을 마주한 류 감독은 밝게 웃어보였지만, 이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작품이 논란에 휘말렸다는 사실에 다소 마음이 무거운 듯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2013년 봄 쯤, 군함도 사진을 처음 봤어요. 영화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공간이라고 생각했죠. 다른 세계 같은 느낌이랄까요. 굉장히 압도감을 느꼈어요. 그런데 강제 징용된 조선인들의 피와 땀이 서려있는 땅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왜 이제야 알았을까?’하고 일순간 부끄러워 지더라고요. 섬을 알아갈수록 ‘감옥’처럼 느껴졌어요. 그게 영화 ‘군함도’의 시작입니다.”

 

류 감독은 ‘군함도’를 보다 더 좋은 영화로 만들기 위해, 실제 군함도 부역 희생자들을 취재했다. 당시의 사연을 알면 알수록 참혹함을 체감했다고 밝혔다. 그래서 그는 “영화에서라도 이분들을 섬에서 빠져나가게 하고 싶었다. 그게 영화의 목적이었다”라고 고백했다.

“피해자 분들에게 조국 해방이라는 건 꽤 다른 느낌이더라고요. 군함도에서는 정말 아사를 모면할 정도로만 음식을 줬거든요. 인간의 권리를 완전히 빼앗긴 거죠. 그래서 그분들에게 해방은 ‘생존’이 걸린 문제였어요. 바깥에선 먹을 것 조금 더 먹고, 잠 좀 편하게 잘 수 있었을 텐데, 가고 싶어도 못 가셨으니까, 영화에서라도 꼭 섬을 탈출시켜드리고 싶었어요. 대신 전제조건은 한 영웅이 아니라 민중의 선택에 의해서 모두 함께 나가는 것이었죠.”

  

‘군함도’는 개봉 직후부터 일부 관람객들을 중심으로 ‘역사 왜곡’ 논란이 일었다. 류 감독은 여러 논란에 대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어떤 영화든 다양한 의견이 있는 건 당연하지만, ‘군함도’에 가해진 친일 논란은 동의하지 못하겠다”며 “이건 이 영화에 함께 한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무척 치욕스러운 일”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일본의 제국 식민주의 통치는 명백한 범죄입니다. 아마 논란은 ‘조선인 vs 일본인’ 이분법적으로 그리지 않았다는 말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사실 일제강점기를 다루면서 일본 제국주의와 거기에 기생해 돈을 번 사기업들이 잘못한 건 100% 당연하죠. 그런데 그 부분만 욕을 하고, 당시 우리 안에 있던 내부의 적을 다루지 않으면 반쪽짜리 접근이라고 생각해요.”

 

국내에서 ‘친일’ 논란이 있는 것과 반대로, 바다 건너 일본에서는 ‘픽션’ 논란이 일고 있다. 하지만 류 감독의 태도는 당당했다. 역사 전문가, 군함도 연구자, 군사 전문가 등 수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의 조언과 고증을 토대로 해서 만든 영화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군함도’를 향한 일본정부의 반응에 불편함을 드러냈다.

“일본 쪽 반응은 ‘군함도’ 취재하면서부터 느꼈어요. 한창 취재하던 때 일본 관계기관에서 스태프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태도가 있었어요. 자문을 해준 재일 일본 단체에 일본 정부에서 연락을 해 꼬치꼬치 물어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일본배우 캐스팅을 위해 에이전시를 통해 접촉했는데, 아예 대본 전달이 안 되기도 했고요. 당시 ‘밀정’ ‘암살’ 등에서도 일본배우 캐스팅이 이뤄지던 때였는데 말이지요. 아마 일본이 유네스코 등재 할 때 권고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있어서 논란이 되기 싫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브리핑을 통해 “감독 자신도 창작된 이야기라고 말했다. 역사적 사실을 반영한 기록영화는 아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류승완 감독은 이렇게 뻔뻔한 태도로 일관하는 일본의 반응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관련한 수많은 논쟁이 일본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이 군함도에 이어 세계문화유산 유네스코에 등재하려고 했던 사도탄광을 누락시켰다고 하더라고요. 그곳도 조선인 징용자가 굉장히 많았던 곳이거든요. 어쨌든 ’군함도‘의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이들이 확실히 긴장하고 있는 거지요. 얼핏 보면 굉장히 소모적이고 진 빠지는 논쟁 같지만, 또 어떻게 보면 굉장히 건강한 논쟁이지 않나 싶어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군함도’는 현재 관객들에게 뜨거운 울림을 전하면서 6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깊은 사랑을 받고 있다. 언론은 이 공을 류 감독에게 돌리고 있지만, 그는 이에 “류승완의 ‘군함도’가 아니라, 모든 배우와 스태프가 똘똘 뭉쳐서 만든 ‘군함도’”라며 공을 돌렸다.

“정말정말 모두가 고생한 영화였어요.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먹고 싶은 음식도 제대로 못 먹고, 탄광 세트에서 허리도 제대로 못 펴고 찍었어요. 저마저도 ‘이거 정말 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오히려 스태프와 배우들이 헌신적으로 저를 잡아주더군요. 이 작품은 정말 모두의 ‘군함도’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작품입니다.”

  

이처럼 힘든 촬영이었지만, 류 감독은 “열심히 찍었으니까 많이 봐달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오히려 온 스태프, 배우들의 괴롭고 아픈 마음을 한데 모아 영화를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솔직히 처음엔 다들 ‘힘들어 죽겠다’는 말을 곧잘 했어요. 그런데 누군가가 ‘진짜 끌려가셨던 분들은 얼마나 힘드셨을까요?’라고 한 마디 하더라고요. 정말 우린 ‘컷’ 하면 쉴 수라도 있는데, 그 분들은 아니었잖아요. 그 이후부터는 아무도 힘들다는 얘기를 못 했어요. ‘우리 고생은 새 발의 피’라는 생각으로 묵묵히 완성해 냈습니다. 그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작품입니다.”

 

 

사진 지선미(라운드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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