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염정아(45)가 3년 만에 영화 '장산범'(허정 감독)으로 극장가에 귀환한다. 한국 공포영화의 바이블로 꼽히는 '장화, 홍련'(2003)을 통해 스릴러 퀸으로 거듭난 염정아는 연기할 때 만큼은 괴롭히는 쪽이 더 좋다고 말했으나, '장산범'에선 의문의 목소리에 현혹되며 철저하게 당하는 입장을 연기한다. 올여름 유일한 공포 스릴러의 출격을 앞두며 두근거린다는 그녀를 10일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장화, 홍련'에선 미스터리 한 계모 역할을, 드라마 '마녀 보감'에선 흑주술에 능한 흑무당 역할로 스릴러 퀸의 입지를 이어나갔다. 청각적 공포를 자극하는 영화 '장산범'에서의 캐릭터 희연은 자신의 딸과 목소리가 똑같은 소녀를 만난 후 알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는 인물이다. 유독 스릴러 장르와 잘 어우러지는 배우로 평가받고 있으나, 정작 스릴러 퀸께선 촬영 현장에서도 벌벌 떨 만큼 겁이 많다고 고백했다.

"완성된 영화를 보니까 의도했던 공포와 드라마가 잘 전달되는 것 같아요. 저는 겁이 많아서인지, 공포스러운 지점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무섭더라구요. 현장에서도 무서웠던 신들은 영화로 봐도… 특히 동굴에서 사내가 '하하 하하!' 웃으면서 뛰어오는 장면이 그랬죠. 시각적인 것은 물론, 청각적인 공포도 만만치 않았어요. 인이어를 자주 착용하진 않았지만, 동굴신에서 사용할 때 혁권씨가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너무 가까이서 들리는 것 같아 무서웠어요."

부산의 민담 설화로 전해져 내려오는 장산범은 소리를 통해 사람의 기억과 마음을 건드리는 귀신이다. 개개인의 익숙한 소리와 두려운 소리로, 때론 그리운 소리로 사람들의 가장 약한 감정을 건드린다. 

"처음엔 저도 장산범이 무엇인지 몰랐어요. 시나리오 읽어보고서야 검색해서 찾아봤죠. 장산범을 실제로 본 사람들도 있다고 하니까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사실 저도 괴담을 좀 믿는 편이거든요."

영화 촬영을 하면서 스태프들 사이에서 귀신을 목격했다는 흥미로운 괴담이 돌기도 했다. 언론시사회 직후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이 얘기를 꺼냈다. 기사로 보도되고 나니 어느새 네티즌들 사이에서 뻥쟁이가 돼있어 억울하다.

"저도 그걸 스태프들한테 들었거든요! 오디오 스태프들이 일을 하고 모텔에 돌아왔는데, 화장대 밑에 아이가 앉아 있었대요. 거기서 여자애가 '하나…하나…' 이러면서 숫자를 셌다는데… 그걸 제가 증명할 방법이 없어서 이제 얘기를 아예 안 하려구요(웃음)."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끌리게 된 건 단순한 공포영화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자녀를 둔 엄마로서 이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느껴졌다. 실종된 아들을 향한 그리움으로 마음이 온전치 못한 여인의 드라마를 잘 살려낸 시나리오를 보고 순식간에 감정에 몰입할 수 있었다.

"되게 색다른 스릴러 같았어요. 공포도 있고, 드라마도 있고. 제가 애를 키우는 엄마라서 공감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관객들이 희연의 감정을 이해하지 않으면 엔딩까지 가기가 힘들기 때문에 과하지 않게 잘 표현하려 노력했어요. 극한적인 상황 속에서 희연이 소녀에게 자기를 믿어도 된다고 얘기하는 장면이 있어요. 희연이 밖으로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이 아이를 품어가는 과정이죠. 그때 '미안해'라고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데, 처음 감정이 터져 나오는 중요한 장면이었거든요. 아역배우 신린아가 제 둘째 아이와 나이가 같아서 더 몰입이 잘됐어요."

편안한 매력으로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넘나들며 연기를 펼치고 있는 '장산범'으로 뭉쳤다. 남편 민호 역할의 박혁권과 무당 역할 이준혁 등 신뢰 높은 배우들과의 연기 소감은 어떨까.

"박혁권 씨는 이전에 '길태미' 같은 센 역할을 많이 맡으셔서 굉장히 궁금했거든요. 연기적으로 호흡도 편안하게 잘 맞았고, 이렇게 엉뚱하고 재밌는 분이신지 몰랐어요. 무당 역할을 맡은 준혁씨도 되게 장난기가 많으세요. 몸은 물론 입안까지 까맣게 분장을 하느라 밥도 못 먹고 고생을 많이 하셨거든요. 근데 그런 분장을 하고 있으면서도 드립 자꾸 날리고 몸 개그까지 하더라고요. 몸 개그를 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자꾸…사실 저는 그 분장한 얼굴을 보는 게 되게 불편했거든요(웃음)."

 

영화에서 의문의 내음을 풍기는 역할에 잘 녹아든 아역 배우 신린아는 괄목해야 할 배우다. 신린아와는 촬영 현장에서 손을 잡고 다닐 정도로 친하게 지냈다. '이모 이모'거리며 잘 따르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지만, 현장에서 연기를 하는 걸 볼 때면 놀라움을 느끼기도 했다.

"린아는 현장에 언제나 엄마가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저희하고도 잘 지냈어요. 평소에는 그냥 애기예요. 그러다가도 연기할 때는 자기 몫을 잘 해내더라구요. 린아는 좀 달랐던 것 같아요. 다른 또래 애들과는 달리 집중력이 있었어요. 그 애를 위해 특별히 배려해줘야 할 부분은 전혀 없을 정도였죠. 디렉션도 정말 금방 이해하고, 그걸 또 바로 연기로 표현하는 게 신통하더라고요. 린아도아마  다른 아역들처럼 아금방 크겠죠. 저는 그때 60가까이 돼 있겠고.(웃음)"

아역들과 자주 호흡을 맞추고 나니, 시간이 지나면서 그 아역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재미도 생겼다. '장화, 홍련'에선 문근영의 계모로, '여선생vs여제자'(2004)에선 이세영의 담임 선생으로, '새드무비'(2005)에선 여진구의 엄마 역할로 합을 맞췄다. 이제 무럭무럭 자라 처녀 총각이 다 된 아역 출신 배우들을 보면 그때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세영이는 너무 예쁘게 잘 컸더라고요. 진구는 '새드무비' 촬영할 때 초등학교 1학년이었나 그랬는데 우연히 본 적 있어요. 근영이나 진구, 세영이 모두 함께 연기할 때 '애가 참 됐네…' 그런 생각을 했었죠. 아역들은 부모님들이 촬영 현장을 따라다니기 마련인데, 옆에 계신 부모님들 역시 정말 좋은 분들이었어요. 저는 만약 우리 애들이 연기를 하고 싶다고 하면 먼저 객관적으로 평가를 할 거예요. 연기를 할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아직까지 우리 애들은 딱히 관심을 안보이고 있어요."

 

어느덧 올해로 26년 차 중견 배우다. 1991년 데뷔 이래 출연한 작품만 수십여 편, 모든 결과물에 연기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있지만 연기는 하면 할수록 어렵기만 하다.

"이제 디렉션만 받고, 감독님이 주시는 것만 가지고는 안되는 것 같아요. 배우도 같이 해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는 감독은 물론 배우도 함께 같이 만들어나가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니까 작품에 대한 책임감이 막중해지더라고요. 앞으로도 더 잘하고 싶어요. 모든 작품, 모든 장면이 다 내 것 같고 귀해요." 

최근 몇 년간은 공포 영화가 극장가에서 저조한 성적을 기록 중이다. '장산범' 역시 흥행을 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순 없다. 하지만 작품성 만큼은 자신있다.

"정말 완성도 있게 나온 작품이기 때문에 망설이지 말고 티켓팅하셔도 될 것 같아요. 스릴러라는 장르만큼 극장에서 시원하게 볼 수 있는 장르는 없지 않을까요? 제가 생각하는 공포도는 10점 만점에 9점 이상! 그 정도로 무서운 재미를 갖고 있는 영화니까, 많이들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사진 = 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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