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관광재단이 서대문구와 함께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문화의 중흥기를 이끈 신촌과 그 자리를 그대로 지키며 현재를 살아가는 모습을 '신촌 감성 코스'에 담았다. '레트로' 감성 가득한 거리와 문화예술이 공존하는 서대문구를 찾아본다.

#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신촌의 감성 '청춘의 거리'

1980년대 신촌은 '젊음의 거리'를 중심으로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태동하는 장소였다. 신촌에서 시작된 문화는 1990년대에 들어서 한국 대중문화 전반으로 퍼져 나가면서 문화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신촌의 문화를 상징했던 공간들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며 그 시절을 기억하는 7080세대와 현재를 살아가는 청춘들을 잇고 있다.

신촌역 3번 출구로 나오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홍익문고다. 홍익문고는 1957년에 개업해 2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서점이다. 홍익문고 앞으로는 근현대를 대표하는 작가 15명의 양손 핸드프린팅 명판이 바닥에 설치된 문학의 거리가 이어진다. 작가들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시대정신이 살아 있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자는 의미로 조성됐다. 

연세로를 따라 걸어가면 스타 광장 한편에 놓여있는 헤드셋을 착용한 빨간 플레이버스가 눈에 들어온다. 플레이버스는 그 시절 인기를 끌었던 밴드 신촌블루스나 가수 권인하 등의 앨범부터 인디 음악을 이어오고 있는 젊은 가수들까지 다양한 음악을 감상하며 쉬어갈 수 있는 이색 체험 버스이다.

플레이버스 뒤로 도로를 건너면 창천문화공원이 나타난다. 공원 안에는 가수 故 김현식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김현식은 1980년대 신촌에서 활동하며 대중문화의 한 획을 그은 신촌블루스의 원년 멤버다. 당시의 추억이 남아있는 공간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그를 기억하는 조형물이 창천문화공원을 지키고 있다.

동상 뒤로는 이색적인 건축물이 보인다. 대학생과 청년, 지역주민이 함께하는 문화생태 플랫폼인 신촌 파랑고래다. 신촌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파랑고래 멤버십에 가입하여 세미나실이나 공연연습실 등을 대관할 수 있고 기획전시나 공연, 워크숍 등을 열 수도 있다.

젊음의 거리 훼드라는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이 자주 찾던 라면집이다. 눈물, 콧물 다 뺄 만큼 매운 '최루탄 해장라면'이 대표메뉴다. 개업 당시의 인테리어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옛 시절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 미네르바는 1975년부터 45년 동안 신촌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커피집이다. 커피 마니아들 사이에선 '우리나라 원두커피의 원조' 또는 '진짜배기 사이폰 커피집'으로 불린다. 

미네르바와 더불어 신촌을 지키고 있는 독수리다방은 1971년 음악다방으로 시작해 연대생은 물론 인근 대학생들의 만남과 소통의 장소로 사랑받았다. 2005년 폐업 후 8년 만인 2013년에 독수리다방 창업자의 손자가 재개업하면서 끊어졌던 명맥을 이었다. 독수리다방은 8층에 위치해 창가 자리에 앉으면 연세대학교의 풍경을 감상하며 커피를 즐길 수 있다. 

다방을 나와 마지막으로 박스퀘어로 향한다. 박스퀘어는 다양한 먹거리와 즐길 거리가 있는 공공임대상가다. 이화여대 앞 거리에서 노점상을 운영하던 상인들과 공모를 통해 선발된 청년들이 입주했다. 각자의 노하우를 살려 개성 있는 공간으로 꾸몄다. 공공임대상가에 노점상 입점을 추진한 전국 최초의 사례다.

# 홍제천 따라 만나는 빛의 예술 길 '홍제유연(弘濟流緣)'

홍제천은 북한산에서 발원해 종로구, 서대문구, 마포구를 지나 한강으로 흘러가는 하천이다. 홍제천 산책길은 홍지문에서 시작해 포방터시장, 유진상가와 홍제유연, 홍제천 폭포마당, 산책로 미술관을 지나 한강까지 하천 옆으로 조성된 약 8km의 산책로를 따라 이어진다. 길은 평탄하여 걷기에 어려움이 없어 가볍게 산책하기 좋다. 

홍지문에서 출발해 데크로 된 길을 따라가면 옥천암의 마애보살좌상(보물 제1820호)이 나타난다. 5m의 마애불로 하얗게 칠을 하고 있어 '백불'이라고도 불린다.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을 정하면서 마애불 앞에서 기도를 드렸다고 전해진다. 

마애불을 지나 길을 따라가면 포방터시장으로 연결된다. 6.25전쟁 당시 포를 설치하여 종전될 때까지 서울을 방어했던 장소에서 유래하여 포방터라 불렸다. 포방터시장을 지나 홍제천을 따라가면 다시 유진상가를 만난다. 1970년 홍제천 위에 인공대지를 만들어 유진상가를 세웠다. 유진상가는 1층은 상가, 2층부터는 주거시설로 이루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건물이다. 길게 뻗은 유진상가 아래에 있던 250m 구간의 홍제천은 사람들의 출입이 통제돼 50년간 버려진 공간이었다.

서울시는 최근 홍제천 유진상가 구간에 공공미술프로젝트 '서울은 미술관'의 하나로 홍제유연(弘濟流緣)을 만들었다. '서울은 미술관'은 2016년부터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으로 도심 속 버려진 공간에 다양한 형태로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키는 프로젝트다. 

2019년에 유진상가 지하통로를 개방했고, 2020년 7월에 공공미술 작품을 설치했다. 홍제유연은 '물과 사람의 인연이 흘러 끊어졌던 과거의 상흔을 예술로 화합한다'는 의미를 담은 이름이다. 3D 홀로그램을 이용한 작품과 자연의 소리를 배경으로 움직이는 빛의 조각을 연출했다. 

홍제유연을 지나면 분수와 인공폭포가 시원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홍제천 폭포마당이 나타나고 산책로 미술관이 이어진다. 폭포마당에서 홍남교에 이르는 약 800m 구간에는 내부순환로의 고가도로를 받치는 기둥에 17세기에서 20세기 서양 회화 작품이 전시돼 있다. 서양 미술 작품을 지나면 국내 유명화가들의 명화가 기다리고 있다. 홍제천에서 만나는 뜻밖의 미술작품은 걷는 재미를 더해준다.

# 주민들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는 '인왕시장'

1960년부터 홍제천 주변 둑길에서 자연시장 형태로 시작된 인왕시장은 1971년에 시장으로 정식 개설됐다. 농산물을 산지에서 직접 조달해 저렴한 가격에 신선한 농산물을 판매하며 농축산물 전문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인왕시장이 성행하던 시절에는 품질 좋은 농산물을 구매하기 위해 온 많은 사람으로 북적였지만, 현재는 홍제동 일대의 상권이 쇠락하면서 140여 개의 점포가 유지되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광장 형태의 커다란 공간이다. 광장에 점포들과 음식점이 하나씩 자리하고 있어 시장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도매 시장답게 농산물을 수북이 쌓아놓고 판매하는 모습도 여느 시장과는 다른 풍경이다. 시장의 정기휴일인 매월 첫째, 셋째 주 일요일에는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벼룩시장이 열린다.

사진=서울관광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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