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가 위기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고 한다. 14일 온라인을 통해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공식 기자회견이 열렸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코로나19 여파로 10월 21일부터 30일까지 축소 운영된다. 영화의전당 5개 스크린에서 초청작 68개국 192편이 1편당 1회씩 상영된다. 경쟁부문은 온라인 심사로 진행되며 영화 상영에 집중해 개막식, 폐막식 등 외부 행사는 전면 취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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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레드카펫 입장, 개막식과 폐막식, 야외무대 인사, 오픈토크 등 관객이 밀집될 만한 야외 행사를 전면 중단한다. 이는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를 넘어서는 강력한 방역 조치에 부응하기 위한 결정으로 대중이 밀집할 기회를 원천 차단하는 것이다. 영화인, 기자 등 관계자들의 자유로운 출입을 보장하는 영화제 배지 발급 역시 중단한다. 영화제 초청을 받아 해외에서 입국하는 게스트도 없을 예정이며 관객과 게스트를 위해 운영하던 각종 센터와 라운지도 운영하지 않는다. 영화제 경쟁부문 심사 역시 온라인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이용관 위원장은 “10월 15일이 데드라인이 될 것 같다. 추석 이후 영화제를 준비하는데 시간이 촉박하다. 가능하면 많은 분들에게 영화를 보여드리고 싶다. 그래서 개최를 2주 연장했다”고 전했다. 남동철 수석프로그래머는 매표소 운영에 대해 "매표소 운영하지 않을 계획이다. 줄을 서신다면 몇 명이 될지 감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매를 온라인과 모바일을 통해서 진행한다"고 밝혔다.

정부 지침에 따른 강력하고 철저한 방역을 실시할 계획이다. 극장 규모와 관계없이 일정 인원만이 입장 가능하며 실내외 극장 모두에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기본이 될 것이다. 충분한 거리 두기와 더불어 체온 측정, QR코드전자출입명부 작성, 철저한 소독을 실시하며 전 좌석 온라인·모바일 예매로 현장에서 관객이 모이는 것을 원천 차단할 계획이다.

영화제는 관객과 영화인, 영화인과 영화인들이 만나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지만, 올해만큼은 그 기회를 영화 상영에만 집중한다. 소수 관객이라도 극장에서 제대로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하며 외국 영화인 경우는 온라인 관객과의 대화를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1편당 상영 인원이 50명 이하로 제한된다. 전양준 집행위원장은 티켓 예매 전쟁이 일어날 것에 대해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전했다. 이용관 위원장은 “추석이 변수인 만큼 추석이 지나 완화가 됐으면 좋겠다. 지금부터 저희도 온라인 등 다양한 방법으로 고민해보겠다”고 밝혔다.

아시아필름마켓에서 이름이 변경된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과 아시아프로젝트마켓, 포럼 비프는 온라인으로 개최한다. 아시아필름어워즈가 홍콩과 마카오에서 개최됐던 예년과 달리 올해는 부산국제영화제와 함께 영화제 기간 동안 부산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상황으로 부득이하게 온라인으로 시상식을 진행한다. 또한 지난해 신설돼 아세안 국가 드라마를 대상으로 시상을 진행하던 아시아콘텐츠어워즈도 무관객 온라인 시상식으로 10개 부문 수상작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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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양준 집행위원장은 개막작 ‘칠중주: 홍콩 이야기’에 대해 “홍콩의 70년대 역사를, 과거부터 21세기까지 7명의 감독들이 향수 어린 음악들과 함께 관객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며 폐막작인 애니메이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대해선 “모든 분들이 무력함과 답답함을 느끼셨을 거다. 이런 점을 생각해 폐막작으로 가슴을 훈훈하게 하는 작품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세계 영화 거장들의 작품을 다수 소개한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올해 개막작으로 돌아온 홍콩 거장 7명의 옴니버스영화 ‘칠중주: 홍콩 이야기’이다. 홍금보, 허안화, 서극, 조니 토 등이 참여했다. 그 외 칸영화제 선정작 가와세 나오미의 ‘트루 마더스’,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차이밍량의 ‘데이즈’,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구로사와 기요시의 ‘스파이의 아내’와 마지드 마지디의 ‘태양의 아이들’ 등 다양한 아시아 거장들의 영화도 선보인다.

미주, 유럽 거장들의 영화도 다양하게 준비돼 있다.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작인 크리스티안 펫졸트의 ‘운디네’,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필립 가렐의 ‘눈물의 소금’과 켈리 라이카트의 ‘퍼스트 카우’,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아모스 기타이의 ‘하이파의 밤’과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의 ‘친애하는 동지들’, 미셸 프랑코의 ‘뉴 오더’ 등 이름만으로도 영화 팬들을 설레게 할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1970년 오손 웰즈와 데니스 호퍼의 친밀한 대화를 기록한 ‘호퍼/웰즈’는 베니스영화제에서 전세계 최초로 공개된 뒤 부산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그 외에도 일본 다큐멘터리계의 대부 하라 카즈오의 ‘미나마타 만다라’, 지아장커의 중국예술에 관한 다큐멘터리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인 ‘먼바다까지 헤엄쳐 가기’, 다큐멘터리 역사의 살아 있는 전설 프레데릭 와이즈먼의 ‘시티홀’도 관객들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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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영화제가 연기 혹은 취소되거나 축소 운영됐음에도 불구하고 입소문을 탄 화제작들이 풍성하게 준비돼 있다.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받은 ‘미나리’는 한국계 감독 리 아이작 정이 연출하고 스티븐 연, 한예리, 윤여정이 출연한 작품이다. ‘너를 데리고 갈게’ 역시 선댄스영화제에서 넥스트 이노베이터상을 받은 영화다.

로테르담영화제에서 주목받은 ‘라 포르탈레사’와 ‘너를 정리하는 법’,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 ‘사탄은 없다’와 엔카운터 부문 작품상을 받은 ‘일과 나날(시오타니 계곡의 시오지리 다요코의)’도 극장에서 관람할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이다.

9월 베니스영화제에서 막 공개된 따끈따끈한 신작들도 대기 중이다. 베니스영화제 개막작 ‘끈’은 오픈 시네마로 초청됐으며 ‘수업시대’ ‘태양의 아이들’ ‘쿠오바디스, 아이다’ ‘우리 아버지’ ‘내일은 세상’ ‘마깔루조 다섯자매’ ‘포식자들’ 등 황금사자상을 놓고 경쟁한 작품들을 대거 선보인다. ‘노랑 고양이’ ‘이정표’ ‘나의 엄마’ ‘200미터’ 등을 통해 아시아 감독들이 주목받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으며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더 나쁜 녀석들’ ‘함께 하기 위한 준비들’ ‘나르시스의 수난’ ‘리슨’ ‘비탄의 정글’ ‘나의 사랑스러운 혁명가’ 등 비아시아권 신작에 대한 기대도 높다.

다큐멘터리도 주목할 수작이 많다.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은 ‘반트럼프 투쟁’과 ‘화가와 도둑’, 로테르담영화제 밝은미래상 부문에서 특별언급된 ‘소총과 가방’, 베를린영화제 다큐멘터리 대상을 수상한 ‘피폭의 연대’, 칸영화제 아시드 칸 부문 선정작 ‘나의 몸’, 산세바스찬영화제와 선댄스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은 ‘요양원 비밀요원’,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야상곡’ 등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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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칸영화제는 코로나19로 인해 영화제 개최를 취소했다. 지난 6월 3일 공식 선정작 56편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한 주요 국제영화제에서 칸의 극장에서 선보일 수 없었던 공식 선정작이 상영되길 바란다는 점을 언급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올해 칸영화제 공식 선정작 가운데 23편을 상영한다.

아시아 영화로는 전세계 최초로 관객과 만나는 개막작 ‘칠중주: 홍콩 이야기’, 가와세 나오미의 ‘트루 마더스’, 웨이슈준의 신작 ‘질주’, 연상호의 ‘반도’ 그리고 왕가위의 '화양연화' 복원판을 만날 수 있다. 케이트 윈슬렛, 시얼샤 로넌이 주연한 ‘암모나이트’, 배우 비고 모텐슨의 감독 데뷔작 ‘폴링’, 디즈니와 픽사의 새 애니메이션 ‘소울’, 덴마크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크의 ‘어나더 라운드’, 프랑스 감독 프랑수아 오종의 ‘썸머 85’ 등 칸영화제 선정작을 극장에서 볼 드문 기회를 제공한다.

코로나19로 전반적으로 영화산업이 침체된 와중에 아시아 신인 감독들은 부지런히 영화를 완성했다. 기획부터 후반작업까지 상당 부분을 혼자서 감당한 아시아 독립영화감독들은 열악한 상황에 굴하지 않고 완성도 높은 신작을 부산에 출품했다. 특히 뉴 커런츠 섹션에서는 처음으로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미얀마 신인 감독들의 영화가 초청됐다. 일본, 중국, 네팔, 인도에서 초청된 뉴 커런츠 작품들도 자국의 사회, 정치, 계급, 젠더 문제에 천착한 주제의식과 신인다운 패기가 돋보인다.

아시아영화의 창 섹션에서도 신인 감독들의 약진이 돋보였다. 작년에 비해 여성감독 출품작 수가 적었다는 아쉬움 속에서도 중국의 ‘나의 엄마’, 베트남의 ‘사랑하는 언니에게’ 등 신진 여성감독들의 수준 높은 작품들이 눈에 띈다. 특히 올해는 여성문제를 다룬 수작들이 다수 출품됐다. 티벳 소녀의 각성을 다룬 ‘티벳의 바람’, 인도 여성의 노동과 생존, 범죄 문제를 다룬 ‘핑키를 찾습니다’, 인도의 야만적인 노동환경과 여성인권 문제를 다룬 ‘사탕수수의 맛’ 등이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안정적인 스토리텔링으로 보여줬다. 또한 노년 여성의 삶을 다룬 ‘그래, 혼자서 간다’와 ‘고독의 맛’ 등도 영화적 재미와 함께 주제의식을 강조한 영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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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파 신진 감독들의 약진 혹은 소장파 감독들의 도약은 올해 한국영화에서 보이는 뚜렷한 특징이다. 유능한 신예 창작자들의 작품이 지속되며 귀환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파노라마, 비전, 뉴 커런츠 등 섹션과 무관하게 전방위적으로 보이는 특징이다. 우선 장편 데뷔작으로 크게 주목받았던 감독들의 두 번째 작품들이 돋보인다.

김의석의 ‘인간증명’, 이환의 ‘어른들은 몰라요’, 이유빈의 ‘기쁜 우리 여름날’, 이충렬의 ‘매미소리’, 윤성현의 ‘사냥의 시간’ 등이다. 독립영화계에서 꾸준히 활약해 온 소장파 감독들의 신작도 있다. 윤재호의 ‘파이터’, 박홍민의 ‘그대 너머에’, 신동일의 ‘청산, 유수’, 김종관, 장건재의 ‘달이 지는 밤’, 이승원의 ‘세 자매’ 등이다.

주류 영화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용훈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홍원찬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정진영의 ‘사라진 시간’과 같은 기존 개봉작은 2020년 한국영화의 주요 작품이었다. 이한종의 ‘대무가:한과 흥’처럼 주류 영화계 내 신인 감독의 신작도 있다. 뉴 커런츠 부문에서는 단편영화로 실력을 쌓아 일견 작가의 길을 걸으며 오랫동안 기대를 모아 온 감독들의 장편 데뷔작도 마침내 선보인다. 이우정의 ‘최선의 삶’, 이란희의 ‘휴가’다.

이용관 이사장은 “이런 상황까지 오게 돼 유감스럽다. 국민들이 불편해 하시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여지가 있는 만큼 하루하루 대책 회의를 하겠다. 오프라인이 아니더라도 온라인으로도 만나뵙길 바라겠다”고 전했다.

개막작 ‘칠중주: 홍콩 이야기’로 시작해 폐막작 애니메이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로 마무리될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는 10월 21일부터 30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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