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김(김옥분) 간첩 조작 사건의 진실이 공개됐다.

17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여간첩 수지김 사건에 대해 조명했다.

지난 1987년, 윤씨는 아내 수지김을 살해 후 이 사실을 감추기 위해 수지김을 간첩으로 몰아가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는 자신이 전 국민을 속였다고 생각했지만, 안기부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방송을 통해 공개된 싱가포르와 서울 안기부가 주고받은 비밀 전문에 따르면, 1월 7일 싱가포르 측에서 윤씨의 거짓말을 눈치채고 서울 측에 기자회견 보류를 요청했다. 하지만 다음날 서울 안기부에서 "부장님께 보고드렸더니 기자회견을 그대로 강행하라고 했다. 북괴 공작에 쐐기를 박는 의미에서 모두에게 유익한 일"이라는 긴급 전문을 보냈다.

이에 현지 기자회견은 취소됐지만 국내에서는 윤씨가 서울에 도착하기 전부터 자극적인 기사들이 쏟아졌다. 또한 기자회견 이후 윤씨는 남산 안기부 조사실로 끌려가 혹독한 조사를 받은 끝에 살해 혐의를 비롯한 모든 것을 자백했다. 그럼에도 부장님은 "이미 북한의 만행으로 보도됐다"며 수지김 살해 사건 묻으라고 명령했다.

그의 정체는 다름아닌 장세동 전 안기부장이었다. 당시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분신이자 그림자로 불렸을 정도로 충성심이 강했고. 1987년은 민주화운동으로 인해 대통령의 심기가 불편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관심을 돌릴 수 있는 납북미수사건을 강행한 것이었다.

뿐만아니라 장세동 전 안기부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심기에 가장 거슬렸던 김대중을 언급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안기부가 전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거짓말이 들통나지 않도록 '마카로니 대책'을 세웠다. 변절하면 언제라도 처벌받는다는 심리적 위압감을 주지시켜 본래의 기자회견 내용을 반복해서 세뇌시키기로 한 것이었다.

또한 홍콩 현지경찰에게 수지김 사건이 미제사건이 되도록 수사협조 요청을 거절했으며, 언론 조작 역시 감행했다. 더불어 수지김 가족을 간첩사건인양 수사하는 모습을 보였다. 수지김의 셋째 여동생 김옥임 씨는 "뉴스를 보고 집에 전화하니까 전화하지 말라며 끊더라. 그때 이미 친정집에 헌병들이 들이닥친 것"이라며 "엄마하고 오빠를 끌고 가서 '당신 딸이 간첩이었다는 걸 실토해라'고 강요했다"고 전했다.

그 결과 가족들 역시 세뇌가 돼 수지김이 간첩인지 의심하게 됐다고. 특히 수지김의 간첩조작사건으로 인해 첫째 언니는 정신병에 걸려 길거리를 떠돌다 객사했으며, 3명의 여동생은 이혼을 당했고 가족 8명 중 4명은 사망했다. 수지김의 어머니 역시 안기부의 고문으로 실어증을 앓다가 10년 후 사망했다.

그럼에도 이런 엄청난 범죄를 주도한 장세동 전 안기부장을 비롯한 수사 관련자들은 처벌을 받지 않았다. 직무유기는 공소시효 5년, 직권남용은 10년으로 공소시효가 지남에 따라 처벌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지김'으로 알려진 간첩 조작사건 피해자의 본명은 김옥분이었다. 그는 충주의 가난한 농부의 딸로 태어나 어린 동생들을 위해 "조금만 기다리면 동생들과 엄마를 고생시키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살해당하기 전까지 그 약속을 지켜왔다.

김옥분은 15살의 어린 나이에 홀로 서울로 떠나 버스 안내양 일을 하며 동생들의 학비를 지원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병으로 돌아가시고 집에 불까지 나면서 술집 일을 시작했고, 돈을 더 많이 준다는 말에 홍콩까지 가게 된 것. 그런 그는 남편 윤씨에 의해 살해 후 간첩이라는 누명까지 쓰게 됐다.

동생 김옥임 씨는 "너무 보고싶다. 지금이라도. 그냥 꿈에서라도 한번 안아보고 싶다. 나 이만큼 컸다고. 소원이 있다면 언니가 살아서 오는 모습을 한번만이라도 느껴보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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