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비주얼리스트'라는 평을 받는 김종관 감독의 신작이 나왔다. 영화 '더 테이블'은 한 공간에서 작동하는 네 가지 관계를 다룬다. 같은 날, 같은 공간에서의 이야기지만 네 에피소드는 서로 유리돼 있다. 사실상 단편영화 4편을 연달아 보는 것과 흡사하다.

 

 

공간은 카페다. 조용하고 인적 드문 길옆,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주인은 손님이 없어 책을 읽는다. 적당히 '분위기 좋네'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다. 어디에선가 흘러온 사람들은 이곳에 머물며 잠깐 은밀한 모습을 드러냈다가 이내 다시 떠난다.

 

오전 11시, 유진(정유미) & 창석(정준원)

 

과거 연인이었던 유진과 창석은 각각 유명 배우와 회사원의 모습으로 재회한다. 헤어진 연인 사이에 흐르는 은근한 어색함 속에서 두 사람은 추억을 나누려 하지만 눈치 없는 창석의 실수로 유진은 실망과 씁쓸함만 얻게 된다.

분위기는 제법 코믹하다. 정준원이 펼치는 '찌질남' 연기는 미소를 자아낸다. 당사자를 앞에 두고 터무니없는 찌라시를 언급하는가 하면, 유명 배우와 연애했다는 과거를 남들에게 떠벌리고 싶어 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의 대화는, 헤어진 연인들이 추억을 공유하며 나누는 낭만적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 유진이 마시던 에스프레소의 깊고 쓴 맛이 창석의 맥주와는 결을 달리하듯 말이다. 정유미의 생활밀착형 연기와 정준원의 능청스러움이 좋은 호흡을 이룬다.

 

오후 2시30분, 경진(정은채) & 민호(전성우)

 

경진과 민호는 과거 하룻밤 사랑을 나눈 사이다. 상대에 대한 확신이 없어 호감을 선뜻 표현하지 못하는 두 청춘의 대화는 답답하기 그지없다. 경진은 민호에게 확신이 없어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민호는 그런 경진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서툰 행동으로 아슬아슬한 상황만 연출할 뿐이다.

둘 사이엔 로맨스 기류가 흐르지만, 민호의 성급하고도 무례한 행동이 경진의 호감으로 이어지는 맥락은 난해하다. 특히 민호의 집요한 눈빛은 한 편으로 무서운 분위기까지 자아낸다. 배우 정은채의 신비로운 매력도 이 영화의 몇몇 부분에서는 위태로움으로 비춰진다.

 

오후 5시, 은희(한예리) & 숙자(김혜옥)

 

은희와 숙자는 결혼 사기를 통해 돈을 버는 사람들이다. 은희는 결혼을 위해 숙자와 가짜 모녀 관계를 맺는다. 만들어진 설정을 주고받으며 일 얘기만 하던 두 사람은 이야기 도중 서로의 사연을 알게 되고 뜻밖의 교감을 나눈다.

삶 자체가 거짓인 두 사람이 거짓말을 털어놓다 진심에 닿는 장면은 꽤 뭉클하다. 숙자의 눈빛이 오후 5시의 늦은 햇살을 타고 은희에게 전해진다. '가짜 모녀'로 만난 두 배우의 투샷이 이색을 발한다. 나머지 에피소드의 상대역들이 정유미, 정은채, 임수정에 맞춰 존재한다는 느낌을 주는 것에 비해 김혜옥은 한예리와 균등한 위치에 서 있다는 점도 흥미진진한 포인트다.

 

오후 9시, 혜경(임수정) & 운철(연우진)

 

혜경은 연인이었던 운철과 헤어지고 현재 결혼을 준비 중이다. 이미 헤어진 사이지만 두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서로에게 향해 있다. "왜 마음 가는 길이랑 사람 가는 길이 달라지는 건지 모르겠어"라는 혜경의 대사는 답답하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면 그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할까. 선택에 대한 두 사람의 태도는 달라 보인다. 두 사람의 마음은 하나지만 갈래는 두 개여서 흔들린다. 옛 연인에게 다가가는 혜경과 그에 대처하는 운철의 모습은 통속적이고 다소 진부하게 느껴진다.

'더 테이블'은 단편이어서 생기는 깔끔함과 압축성이 강점이다. 하지만 가장 큰 매력을 묻는다면 역시 배우와 그 얼굴일 것이다. 화면 가득 들어차는 얼굴을 원 없이 볼 수 있으니, 출연 배우의 팬이라면 강력 추천한다. 말하고 움직이는 모습은 물론 표정이 변화하는 모든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러닝타임 70분. 12세 이상 관람가. 8월2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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