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5년차에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지난 19일 종영한 JTBC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에서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강남 재벌가 둘째 며느리, 우아진을 맡은 김희선(40)이다. 8월 17일 압구정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발랄하고 천진난만한 웃음으로 인터뷰 내내 소탈한 모습을 보인 그는 레드카펫 위의 다가갈 수 없는 별이기보다 친근한 옆집 언니였다.

 

 

1. 대체불가

톱스타 길만 걸어온 그에게 제2의 전성기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는 뭘까. 아름다운 얼굴로 주목받은 대부분 배우가 그렇듯, 그동안 김희선이 받은 스포트라이트는 얼굴과 패션에 집중돼 있었다. 뭘 해도 '연기자'가 아니라 '여신'의 수식어만 따라붙었다. 베테랑 배우지만 연기로 칭찬받은 건 사실 '품위있는 그녀'가 거의 처음이다. 김희선은 연기 호평에 대한 질문에 후련한 얼굴로 답했다

"그 말이 제일 좋다. '대체불가.' 가슴이 뭉클하고 짠해진다. 사람들이 '김희선 아닌 우아진을 생각할 수 없다'고 하는데 이런 말이 너무 좋다. 나도 앞으로, 흔한 말이지만 '이 배우가 나오면 무조건 봐야지'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믿고 보는 배우? 그건 싫다. 너무 흔하다.(웃음)"

2. 1040

김희선은 1992년 고등학생 시절 '고운 얼굴 선발 대회'에서 대상을 입상해 잡지 모델로 데뷔했다. 1993년 롯데삼강의 '꽃게랑' 광고로 TV에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고 그해 6월, '생방송 TV가요 20'에서 배철수와 함께 MC를 맡았다. 같은 해 SBS 드라마 '공룡선생'을 찍기 시작하며 연기자의 길을 걸었다. 10대 후반에 시작한 일이 40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졌다. 이제 그에게 연기는 업이고 연예인은 숙명이다. 그러나 시작은 꽤 사소했다.

"10대, 20대 때 이 일 시작했을 땐 '학교 땡땡이치려고' 이렇게 생각했다. 가수 연예인 오빠들 만나려고. 프로의식 전혀 없었다. 그러다 작품이 하나둘 들어오고, 내가 열심히 좀 해 봤더니 칭찬도 받고 상도 받고 돈도 벌고, 너무 좋은 환경이 조성되더라. 사람이 역시 열심히 하면 보람도 있고 대가가 있구나 싶어서 점점 마음이 생겼다. 처음부터 '나는 이런 분이 될 거야' 하는 배우는 거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기도 불안한 상태에서 시작했다가 칭찬도 받고 매도 맞고 하면서 오기도 생기고, 그러면서 좋은 배우가 되는 거지. 요즘 연예인을 꿈꾸는 친구들은 그럴 수 있는데, 나의 시작은 그랬다."

 

 

3. 예능

외모가 뛰어난 사람은 재미가 없다는 편견이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남을 즐겁게 하려는 의지가 부족할 것이라는 편견이다. 김희선은 그 편견을 깨부수는 존재다. 인터뷰가 끝나자 재밌었냐고 묻는 연예인은 흔치 않다. "예능 하다 보니 이상한 책임감이 생겼다"며 웃었지만 그는 데뷔 초부터 파격적인 입담으로 화제를 만들었을 만큼 '수다 본능'이 뛰어난 사람이다. 최근 김희선은 tvN과 OLIVE의 예능 프로그램 '섬총사'에서 강호동, 정용화와 함께 활약하고 있다.

"관찰 예능에 요즘 추센데 처음이다. 더 나이 먹기 전에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섬에 가서 한다니까 내가 더 신이 나서 간다. 정말 일석이조다. 우리도 힐링하고. '섬총사'는 포맷이 없어서 일하기 싫으면 하기 싫은 대로 있고, 낮잠 자는 거 보여주면 된다. 그게 가장 끌렸다. 사람들이 내가 섬에서는 막 소리 지르고 우악스럽게 트로트하고 그러다가 우아진으로서는 현명한 여자를 보여주니까, 반대되는 거에 더 재밌어하시는 것 같다."

4. 워너비 우아진

김희선은 우아진을 연기하며 많이 배웠다고 고백했다.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고 차분하게 대처하는 우아진은 경탄을 자아내게 하는 캐릭터다.

"내가 아진이 같이 비참한 상황이었으면 내 감정대로 했을 거다. 대본을 읽다가 멍을 많이 때렸다. 아진이처럼 했으면 우리 오빠(남편)가 날 더 멋있는 여자로 봐줬을 텐데, 싶더라. 현명한 여자라는 게 이런 거구나. 안 좋을 일이 있고, 서로 문제가 있을 때 잘 헤쳐나갈 수 있는 그런 여자가 정말 현명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아진을 연기하고 나서 오빠랑 싸움도 줄었다. 한 번 참아봤는데, 몇 초 참으니까 말이 훨씬 젠틀하게 나가더라. 지르는 것보다 속은 더 상하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게 더 좋은 대처 자세인 것 같다."

 

 

5. 배우와 엄마

김희선은 2007년 3살 연상의 사업가와 결혼했으며 2009년 딸 연아를 낳았다. 여자 배우는 결혼하고 애를 낳으면 들어오는 시나리오에 변화가 생기기 십상이다. 김희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들어오는 역할이 달라지긴 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애 낳고 결혼하고 나이 들었지만 예쁜 엄마 하면 되지, 매력 있는 엄마 하면 되지 다짐했는데 딱 작품을 보면 선뜻 손이 안 갔다. 내가 덜 놨구나, 아직 두려워하는구나' 싶었다. '앵그리맘' 때도 유정이 보면서 '내가 저렇게 큰 딸을?' 하고 놀랐다. 그때는 엄마지만 교복 입은 게 한몫했다. 나도 보험을 들고 가야지. 이번에도 우아한 역할이다."

6. 박보검

'품위있는 그녀'의 성공을 '시청자들의 사랑 덕분이다'라고 말하는 건 싫다며 농담을 치던 김희선은 불쑥 배우 박보검(24)의 얘기를 꺼냈다. 두 사람은 KBS2 드라마 '참 좋은 시절'에서 함께 작업한 바 있다. 김희선은 박보검의 품성에 혀를 내둘렀다.

"보검이는 너무 수상할 정도로 착하다. 너무 착하다. 추석, 설날, 크리스마스 등 무슨 날만 되면 장문의 메시지를 보냈다. '붙여넣기'가 아니다. 최근 내 상황을 얘기하면서 '요즘 어디 나오고 있더라고요, 잘 보고 있습니다' 이런다. 몇 년째 지금도 그런다. 나한테만 그러겠나. 이 세상 모든 사람한테 하려면 문자 보내는 데만 해도 하루가 다 갈 거다. 나는 그렇게 못한다."

 

 

7. 솔직 발랄 긍정파

동안의 비법이 궁금하다는 질문이 들어오자 김희선은 "이런 질문 질려"하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많은 연예인이 기자 앞에서, 카메라 앞에서 형식적인 대답을 늘어놓는 것에 비해 김희선은 위험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퍽 솔직한 구석이 있는 배우였다.

"난 안 쌓아둔다. 좀 미안하지만 그때 얘기한다. '이건 좀 서운했어요, 너무했어요, 하지만 아깐 좀 내가 마음이 아팠어요' 이렇게. 그러고 그 자리에서 딱 끝이다. 쌓아뒀다가 나중에 그러면 또 얼마나 쪼잔한 사람이 되겠나. 긍정적이기도 하다. 교통사고가 나면 만약 내가 계속 갔으면 더 큰 사고가 있었을 텐데, 이렇게 끼워 맞춘다. 지금 칭찬받으려고 그전에 그렇게 연기 못한다는 소리 들었구나.(웃음) 이미지가 너무 좋으면 조금만 잘못해도 훅 갈 수 있다. 24시간 바르게 사는 거, 난 안된다."

 

사진 제공=힌지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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