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복자는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다만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그리웠을 뿐이지요.”

지난 19일 뜨거운 화제 속에 막을 내린 JTBC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로 배우 김선아(42)는 제2의 전성기를 다시금 열었다. 일각에선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 12년 만에 인생작 경신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 ‘품위있는 그녀’는 단순한 재도약의 발판이 아니다. 극 중 역할인 ‘박복자’는 배우 김선아의 인생 외연을 한 단계 확장시키는 멋진 계기였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의 문턱,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김선아를 만났다. 극 중 복자의 고독한 모습과는 또 다른 인간 김선아를 느낄 수 있었지만, 그녀의 눈빛은 아직 복자를 놓지 못한 모습이었다. 깊은 캐릭터의 여운이 말 한 마디마다 느껴졌다.

김선아는 극 중 우아진(김희선)의 완벽한 삶에 갑자기 끼어드는 충청도 출신의 간병인 박복자 역을 맡았다. 바닥에서부터 상류층 입성까지 굴곡진 삶 가운데, 유려한 연기와 주옥같은 대사만으로 캐릭터 서사를 설명하며 안방극장을 압도했다. 온전히 복자의 삶을 이해한 듯 보였던 김선아지만 “처음에는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너무 흥미진진했어요. 대사 하나부터 캐릭터의 매력, 극 중 관계 뭐하나 빠질 게 없었죠. 정말 바로 도전하고 싶긴 했는데, 이상하게 캐릭터를 받아들이기 쉽지가 않았어요. 4부까지는 복자의 과거가 전혀 나타나지 않잖아요. 그래서 더 ‘왜 이 사람은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감독님을 만나서 이것저것 여쭤보고 대화를 많이 나눴지요. 결국 나는 내 감정만 보고 연기하면 되고, 전체는 감독님이 조율해주시는 거라는 믿음이 생기더군요. 그게 작품을 하게 된 결정적 이유였어요.”

 

 

그는 박복자를 이해하기 위해 무던한 노력을 했다고 전했다. “캐릭터를 잡는다기보다, 이 사람의 삶을 어떻게 접근하는지 고민했다”고 말한 김선아는 한 달 동안 연기 코치와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고, 변화하는지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지난한 과정이었음을 밝히면서 자신만의 특별한 해석을 꺼내놓았다.

“딱 ‘백설공주’ 속 왕비가 떠오르더라고요. 복자랑은 신분 귀천이 다르지만, 아마 왕비도 어려서부터 혼자 놀았을 거고, 넓은 궁궐 안에서 굉장히 외롭게 살았던 사람일 것 같아요. 그러니까 놀 만한 상대가 거울 밖에 없던거죠.(웃음) ‘누가 제일 예뻐?’하고 물으면서 놀았을 거에요. 그러다 어느 날 자기랑 정반대의 백설공주가 나타나서 궁금했고, 질투도 났겠지요. 죽이고 싶은데 칼이 아니라 사과를 들고 가는 것부터, 사실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닐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고른 그는 복자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복자도 굉장히 외로운 사람이에요. 10살 꼬마애가 마론인형을 갖지 못해서 종이를 오려 가지고 놀고, 사랑 받지 못하고 파양 당하는 모습이 너무 안 됐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자기 것이 하나도 없잖아요. 인형도, 가족도, 사랑도. 그냥 단순히 어려서부터 따뜻한 눈길과 말 한 마디가 갖고 싶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태동(김용건)에 대한 감정도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최근 남성캐릭터 위주의 영화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면서 여배우 수난시대가 이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품위있는 그녀’는 김선아 김희선을 투톱으로 내세워, 근래 찾아보기 힘든 여배우 중심 드라마를 완성했다.

“사실 워낙 좋은 여배우들이 많아요. 이렇게 좋은 드라마가 더 늘어서 활동 범위가 넓어졌으면 좋겠어요. ‘품위있는 그녀’만 봐도 여성 캐릭터들이 굉장히 많이 나오잖아요. 다양한 군상의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사연을 이끌고 가니까 공감을 많이 해주셨던 거 같아요. 얘깃거리는 무궁무진해요. 여자든 남자든, 나이가 많든 적든 아프고 재밌고 슬픈 이야기를 함께 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작품이 그 시작점이 됐으면 합니다.”

 

‘품위있는 그녀’는 첫 방송 2.044%(닐슨코리아 전국 기준)로 시작, 12.7%의 시청률로 JTBC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며 종영했다. 오로지 대중의 입소문과 작품의 완성도로 이뤄낸 쾌거였다. 시청률 상승의 일등공신 역할을 톡톡히 했던 김선아에게 이 소감을 물었다.

“숫자에 민감한 사람은 아니에요. 산수를 못해서 그러나?(웃음) 솔직히 시청률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니까요. 사전제작 드라마다보니까 막상 방송될 때는 제 손을 떠난 일처럼 여겨지더라고요. 처음에 2%가 나온 것도 적은 건지 많은 건지 감을 잘 못잡았어요. ‘내 이름은 김삼순’도 50%가 나왔을 때 그러려니 했었어요.(웃음) 그냥 받아들인다고 하는 게 맞겠네요. 마지막에 12%가 나왔다는 것도 늦잠자서 뒷북으로 확인했어요. 시청자 분들이 작품이 좋다고 해주신 거니까 기분은 무척 좋네요.”

 

 

마지막으로 김선아는 ‘품위있는 그녀’ 당시 즐거웠던 일을 회상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복자가 사실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이잖아요. 시청자분들이 그 모습에 대해 악독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었는데, 공감을 많이 해주신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 캐릭터인데 연출로 잘 표현해주신 감독님도, 좋은 대본 써주신 작가님께도 감사드려요. 이 작품을 하면서 그 동안 연락이 끊겼던 분들에게 다시 연락이 오더라고요. 너무 감사한 일이지요. 물론 복자가 무섭게 나올 때는 연락이 또 잠시 끊겼다가.(웃음) 제게 ‘품위있는 그녀’는 여러 좋은 일이 겹쳐서 온 감사한 작품으로 기억될 것 같아요.”

 

사진=씨제스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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