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정현(26)이 스크린 데뷔작 ‘초인’(감독 서은영)에서 인상적인 연기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영화는 마음 속 깊은 상처를 안고 사는 고등학생 소년이 우연히 자신과 비슷한 소녀를 만나 나누는 위로를 담았다. 김정현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어머니를 보살피는 체조 유망주 최도현 역을 맡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공부하고 주로 연극 무대에서 내실을 다져왔던 그는 오랜 꿈이었던 장편영화에 임하는 자세가 남달랐다. 개봉(5월5일)을 앞두고 홍대 인근 한 카페에서 부끄럼 많은 부산 청년과 만났다.

 

◆ 변요한 박정민과 한예종 동기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함께 공부한 변요한, 박정민, 김준면의 활약을 바라본 김정현에게 스크린 데뷔는 오랜 목표였다. “요한이 형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고 있어서 잘 되길 진심으로 응원했다"면서도 동기들의 성공에 조용히 칼을 갈아온 그에게 ‘초인’은 선물처럼 다가왔다.

“처음 할 때는 기대로 가득했어요. 긴 호흡으로 할 수 있는 연기에 대한 갈망이 꾸준히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기대보다 많은 스태프의 노력에 책임감이 더 느껴지더군요. 제가 잘못하면 많은 분들의 노력이 무의미해지는 거니까 무섭기도 하고 굉장히 미묘한 감정이 들었습니다.”

 

◆ 청년, 소년이 되다

탄탄한 몸매, 뽀송한 피부는 체조 유망주 고등학생을 연기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게다가 연극 무대에서 늘 고뇌하는 역할을 맡아와서인지 내면의 슬픔을 간직한 도현은 뺘저들기 한층 수월했다. 열 살 가까이 나는 나이차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고등학생을 연기한다는 게 큰 부담은 아니었어요. 제게 '고등학생' 도현보다 '사람' 도현이 어떻게 보이느냐가 더 중요했죠. 특히 도현은 고등학생이지만 좀 애어른 같아요. 체조선수의 꿈을 포기할 만큼 많은 책임감과 고민을 가득 안고 있고요. 저도 서울에 올라오면서 외롭고, 나이는 들어가는데 경제적인 문제도 있고, 미래에 대한 불확신에 휩싸여 있었어요. 캐릭터와 비슷한 고민을 공유했죠. 그래서 보다 더 몰입하고 집중할 수 있던 것 같아요.”

 

◆ 연극무대에서 스크린으로

연극 무대에만 서다보니 카메라는 낯설면서 동시에 설렘이었다. 같은 연기라지만 정확한 순서대로 진행되는 연극과 여러 번 재촬영에 임하는 영화는 호흡이 완전히 달랐다.

“연극 무대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늘 신경 쓰는 부분은 ‘관객 분들이 극장에 찾아와 들이는 시간과 돈이 아깝지 않게 연기하자’는 겁니다. 러닝타임 2시간씩 100명 만해도 200시간이니까요. 더군다나 영화는 더 많은 분들이 보시니까 부담이 안될 수 없죠. 언제나 작품에 들어가면 대본을 머리맡에 두고 자요. 누워서 머릿속에 계속 스토리를 돌려보다가 대사를 까먹으면 일어나서 또 보고 그러다 자고(웃음).”

 

◆ 여배우 김고운과의 호흡

첫 영화가 로맨스라 행운이지만 감정을 만들어내자니 부담스러웠다. 거기에 김고운이란 예쁜 배우와 함께여서 부담은 더 커졌다. 혹시 불편해하지는 않을까. 연기 외에 신경 쓸 게 많은 촬영이었다.

“고운이가 학교 후배에요. 정~~말 친하지 않은. 하하. 그래서 더 우려가 됐어요. 어떻게 하면 불편하게 안할 수 있을까. 그때 제 어머니 역할로 나오셨던 서영화 선배님의 모습을 보고 많이 배웠습니다. 부담을 안 주면서 연기로 힘을 보여주는 게 멋졌어요. 저도 그렇게 하려 노력했죠. 고운이도 프로답게 촬영이 시작되면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하더라고요.”

 

◆ 꿈 포기할 무렵 만난 '초인'

20대 후반에 접어들고 있는 나이, 대학 동기들의 활약상을 바라보고 있자면 고민과 두려움이 엄습했다. 영화에 잠깐 등장하는 ‘돈키호테’처럼 무모한 꿈을 걷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에 힘들었다.

“부모님이 아프시고난 뒤 효도할 수 있는 시기가 짧아지고 있음을 알았을 때, 돈을 벌어야하나...고민이 많았어요. 작품에 들어가면 고정적인 알바도 못하니까요. 그렇다고 생활이 힘들어서 알바를 하자니 언젠가 찾아올지 모르는 기회가 아쉽고, 가끔씩 찾아오던 거품같은 희망고문이 너무 힘들었죠. 포기할 때쯤 '초인'을 만났어요. 지금은 너무 좋아요. 개봉에 인터뷰까지...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까요.”

 

◆ 신림동 자취방 생활, 성장의 자양분

영화 제목이기도 한 ‘초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김정현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 삶을 털어놨다. 

“내 삶에서 좋은 부분을 사랑하는 건 쉽지만 힘들고 나쁜 부분까지 사랑해야 초인이 되는 것 같아요. 제가 고민이 많은 피곤한 사람인데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대명컬쳐웨이브상을 받으니 너무 좋더라고요. 억지로 과거 힘들었던 걸 잊어보려 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신림동 후미진 방에서 자책하던 그 삶도 내 삶'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의 고생으로 그나마 지금까지 온 건데. 좋은 순간에 들뜨기보다 항상 감사하면서 겸허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 중입니다.”

 

◆ 영화로 채워가는 일상

스크린 밖에서도 늘 영화와 함께 생활한다. 배우로서 살아가는 게 너무나 행복해서다. 영화를 보며 명배우들의 연기를 분석하고, 심지어 자주 듣는 음악도 영화 OST. 요즘은 '인터스텔라'와 '색계' OST에 빠져 지낸다.

“‘초인’에 나온 김정현입니다가 아니라 배우 김정현입니다란 소개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하면서 지내요. 오랜만에 다이어트도 하고. 최근에 봤던 영화 ‘대니쉬 걸’에서 성전환 화가를 연기한 에디 레드메인처럼 다양한 역할에 도전해보는 게 목표입니다.”

 

사진 한제훈(라운드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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