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자이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각본에도 참여한 정세랑 작가는 신춘문예가 아닌 SF잡지 판타스틱을 통해 등단했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장르문학은 한국 문단에서 저평가 되던 분야였다. 하지만 정세랑 작가는 순문학과 장르문학 사이, 그 어딘가에 꾸준히 자신만의 고랑을 팠다. 말랑하고 유연한 텍스트의 힘으로 견고한 문단의 벽을 뚫는 데 성공한 정세랑 작가는 ‘이만큼 가까이’로 제7회 창비 장편소설상, 2016년 ‘피프티 피플’로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획득한 작가로 인정받았다.

외계인은 물론 귀신이 불쑥 등장하기도 하는 그녀의 소설이 두터운 독자층의 뜨거운 지지에 힘입어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전세계 시청자들 앞에 공개됐다. 지난 25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보건교사 안은영’은 정세랑 작가와 함께 각본 작업에 참여하고, 무엇보다 그녀의 텍스트 속 상상력을 화면으로 구현해낸 이경미 감독이 얼마나 좋은 파트너였는지 확인시켜 준다. A부터 Z까지 ‘보건교사 안은영’이 완벽한 작품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정세랑 작가의 판타지 세계가 장르의 관습을 피해간 이경미 감독의 연출과 만나 전에 없던 문법으로 영상화 됐다.

기존의 문법과 다르기에 호불호도 극명하게 갈린다. 6개의 에피소드 전개 중 절반 가까이가 시청자와 ‘보건교사 안은영’ 사이의 약속된 기호를 만들어나가는데 소비된다. 소설을 읽는 독자가 행간과 행간 사이 스스로의 소설을 발휘하는 능동적인 입장이라면, 영상화 된 ‘보건교사 안은영’을 보는 시청자는 조금은 수동적인 자세일 수 밖에 없다. 가뜩이나 낯선 안은영의 세계에 기존 소설 에피소드가 몇몇 생략되다 보니 개연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럼에도 ‘보건교사 안은영’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대사에 힘을 싣지 않는다. 다만 돌발적이고 충동적인 대사 사이에 웃음이 있고, 때로는 묵직하게 가슴을 때린다. 소외되고 외로운 인물들이 만나 서로를 연대하는 과정 자체가 흥미롭게 다가온다. 입시로 인해 무기력한 아이들의 일상, 학교폭력의 잔혹함, 하이틴 로맨스 등이 마치 학교에 포진한 젤리처럼 매 에피소드에 깔려 있는 소주제도 매력적이다.

인물들도 하나같이 사랑스럽다. 젤리를 보는 것 외에 지극히 평범한 히로인 안은영(정유미)이 최소한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는 모습은 응원할 수 밖에 없다. 너드미 넘치는 힐러 홍인표(남주혁)의 무해한 존재감과은 물론 태오, 최준영, 박혜은, 현우석, 심달기 등 각각의 캐릭터 특징을 뚜렷하다. 물론 이를 완벽하게 표현해낸 배우들의 연기력 역시 눈길을 끄는 지점이다.

결말은 스포일러라고 할 것도 없이 시즌2에 가능성을 열어둔 모양새다. 원작의 에피소드가 이번 시즌에 모두 반영되지 않은 것도 시즌2에 무게를 싣게 되는 이유다. 전에 없는 새로운 장르를 구축한 ‘보건교사 안은영’은 현재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다.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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