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60km, 8시간의 시차...서울과 파리의 물리적 거리다.

독일의 철학자 게오르그 짐멜은 “동물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지만 인간만이 두 지점을 연결하는 길을 낸다”고 말했다. '풍경의 감각- 파리 서울 두 도시 이야기'는 파리남자인 남편과 서울여자인 아내가 만나 두 지점을 가로지르며 이 과정을 기록하고 저마다 경험을 담아낸 도시 탐방서다.

 "서울에서 커피숍이 아니면 어디서 일을 할 수 있을까?"(31쪽), "프랑스 사람들에게 에펠탑은 국보 1호일까?"(246쪽),

1부에는 프랑스인 남편 티에리 베제쿠르가 관찰한 서울의 낯선 모습이, 2부에는 한국인 아내 이나라가 도시의 일상과 공동체라는 관점에서 사유한 파리-서울의 형편이 실려 있다. 이 책에서 파리와 서울은 단지 해부되고 분석되는 대상에 머물지 않고, 도시에 머무는 사람들로 인해 새롭게 창조되는 삶의 터전이다. 두 저자가 산보하며 읽는 것은 도시의 사회문화적 풍경이다.

이를테면 파리 남자는 프랑스어에는 없는 '등산'을 하며 한국에서 등산이 대표적인 여가 활동이 된 이유를 추론하고, 아파트에 대한 프랑스와 한국의 상이한 관점을 비교한다. 서울 여자는 서울과 파리에서 바리케이드 의미를 해석하고, 양국의 테마파크가 제공하는 판타지의 허상과 기능을 살핀다.

서울의 콘크리트 아파트와 파리의 석회암 건물, 고객이 왕인 서울의 카페와 꼿꼿한 서비스에 익숙해진 파리의 카페...프랑스에서 묘지는 산 자들의 도시로 끼어들지만 한국은 고즈넉한 산 중턱에 죽은 자의 공간을 둔다.

두 남녀는 상이한 공간 속을 유유히 걷는다. 파리 남자는 서구 기독교 문화와 다른 한국식 교회를 발견하고, 양화대교에 택시가 멈추는 이유를 읽어낸다. 서울 여자는 파리의 진실성을 보여주는 에펠탑을 생각하고, 센강 위에서 세계의 일원이 되기를 바라는 난민들과 사회복지 철학을 함축하는 인공 모래사장 ‘파리 플라주(Paris Plage)’를 바라본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여행보다 매력적이고, 소설보다 근사하다.

무엇보다 서로에게 이방인이었던 두 저자가 8년차 부부가 되기까지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는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독자들에게 익숙했던 것들에 대한 공감과 낮선 것에 대한 깨달음을 전해준다.

저자는 "우리 앞에 거리를 두고 단지 제 기능에 충실한 채 우리와 무심하게 존재하고 있는 도시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우리들의 눈과 발의 감각 속에서 계속 발견되고 재발견되는 장소들, 우리와 대화하는 장소들에 대해 적었다"고 말한다. 류은소라 옮김. 제3의공간 펴냄. 328쪽, 1만6000원

사진= 제3의공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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