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본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음악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란 대사에 꽂혔다. 너무나 당연한 개념인데 코로나19 때문인지 그 대사가 더욱 와닿았다. 요즘 같은 시대에 우리 같은 단체가 사람들을 위로해줄 수 있음을 증명해내는 게 중요하다. 음악을 통해 감정을 교환하고 편안함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건 음악가로서의 존재 이유이자 사명감이지 않을까."

서울시립교향악단 부지휘자 데이비드 이(32)를 가을색이 짙어진 광화문 네거리 세종문화회관 뒷편 광장에서 만났다. '젊은 피'를 수혈해 75년 역사의 교향악단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취지에 걸맞게 올해 1월 입단 이후 맹활약 중이다.

국내 굴지의 연예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와 협업 프로젝트를 통해 지난 7월 샤이니 멤버인 고 종현의 ‘하루의 끝’ 오케스트라 버전을 공개했다. 전주에는 프랑스 인상주의 작곡가 드뷔시 ‘달빛’을 녹여내 색다른 감흥을 자아냈다. 여기에 오피셜 비디오도 제작해 감흥을 배가했다.

지난달 24일에는 서울시향 온라인 정기공연 데뷔 무대인 ‘멘델스존 앙상블’에서 현악교향곡 11번을 지휘했다. 공연예술이 시공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진 뉴노멀 시대에 커리어를 시작한 지휘자로서 고민이 많다.

“공연이라는 거 자체가 관중이 있어야 완성되는데 무관중 랜선 콘서트는 한번도 상상을 못해봤다. 사실상 불가능한 거라고 여겼다. 오케스트라 사운드는 홀의 울림이 생명인데 없으니 공허함을 느끼게 된다. 청중의 박수를 들으며 마음을 가다듬고 집중해서 30분이든 1시간이든 심포니를 지휘해야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으니 그 어색함이 아직까지 적응되질 않는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있는 부지휘자 데이비드 이/사진=서울시향 제공

특히 시민들의 생동감 넘치는 호응과 참여가 관건인 ‘퇴근길 콘서트’도 언택트로 진행해 아쉬움이 크단다. 올해 들어 3차례 포디엄에 올랐고, 서울시향 프로젝트를 지속해서 펼치고 있다. 특히 SM과 협업 프로젝트 때는 타 장르와 콜라보에서 오는 특별한 즐거움을 만끽했다.

“한국인으로서 케이팝은 일상에서 늘 듣는 음악이지 않나. 클래식 음악가로서 대중들이 즐겨 듣는 음악을 재해석하는 작업이 흥미로웠다. 정통 클래식 외에 빌 에반스 등의 재즈뮤직 특히 올드 재즈를 좋아한다. 또 정재형씨의 곡이라든가 어쿠스틱 음악을 즐겨 듣는다.”

데이비드 이는 음악을 전공한 부모님이 유학 중이던 무렵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성악과 지휘를, 어머니는 성악을 공부했다. 초등학교는 한국에서 다녔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성장했다. 절대음감을 타고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이 친근했고, 지휘자를 꿈꿨다. 지휘를 위해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공부했을 정도다.

“오케스트라 편성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게 현악기다. 현악기 연주자들이 생각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피아노의 경우 음악을 입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것과 협주곡을 할 때 반주의 느낌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지휘자의 꿈을 구체화하기 위해 독일로 건나가 바이마르 프란츠 리스트 국립음대에서 니콜라스 파스케를 사사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뉴잉글랜드 음악원에서 휴 울프를, 예일대 대학원에서 피터 운지안을 사사했다. 지휘 석사만 3개를 취득했다.

2016년 수원에서 진행된 이탈리아 오페라 아카데미에서 거장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에게 발탁돼 경기필하모닉·국립합창단과 ‘라 트라비아타’를 지휘했다. 예일대 오케스트라 부지휘자로 활동하던 그는 2015년 서울시향 음악감독이었던 정명훈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한 인연으로 서울시향 부지휘자 공모에 응시, 입단 기회를 얻게 됐다.

“운이 좋아서 이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서울시향 팬이었고, 오랜 시간 지켜봐왔기에 뭘 하든 재밌고 즐겁다. 경험 하나하나에서 배울 수 있기에 소중하다. 가끔 내가 음악을 좋아하는 건지, 지휘를 좋아하는 건지 자문하는 경우가 있다. 음악을 좋아하는 게 크더라. 다만 지휘를 하게 되면 나보다 뛰어난 많은 이들의 능력을 빌어서 더 좋은 음악을 할 수 있으니까 힘들면서도 절대 내려놓기 힘든 매력이 있지 않나 싶다.”

피아니스트로 출발해 세계적인 거장 반열에 오른 정명훈 지휘자를 존경한다. “자신의 머리 속에 있는 음악을 연주자들에게 그림을 그리듯 소통하시더라. 역시 거장은 다르구나 싶었다. 말로 설명해주면 소리의 개념이 비주얼하게 그려졌다. 단원들은 그걸 그림 같이 이해하고 다시 소리로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지휘자로서 무대에 오를 때 그가 가장 주안점을 두는 대목은 무엇일까. “프레이징의 선, 멜로디의 선 등 선을 이어가면서 생기는 선율의 에너지가 있다. 내 무대를 통해 프레이징의 에너지를 연주, 비주얼한 제스처, 호흡을 통해 어떻게 하면 더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할 수 있는을까를 고민한다. 호흡의 한계가 우리 모두의 기준이지 않을까. 결국 감동을 느끼는 포인트는 호흡에서 온다고 본다. 같은 악기여도 사람이 호흡하듯 연주하면 공감대가 두텁게 형성되듯이.”

서울시의 소중한 자산인 서울시향이란 플랫폼을 통해 시민과 음악이 가까이 있음을 되새김질해주는 스킨십 역할을 해보고 싶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대면이든 비대면이든 위로를 주고 즐거움을 주는 역할을 최대한 많이 해보고 싶단다.

“연주 형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사람들의 일상에서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는 방식 같은 것이다. ‘퇴근길 콘서트’나 ‘찾아가는 콘서트’보다 더 형식 없이 생활 속으로 찾아갈 수 있는. 클래식이라는 타이틀 안에 음악을 가두기보다 듣기에 좋은 음악이면 좋은 거라고 여긴다. 소수 음악가나 공연 관계자들이 음악을 강요하는 시대는 아닌 거 같고, 관객의 선택권을 늘려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11월에는 ‘퇴근길 콘서트’와 ‘우리동네 음악회’가 예정돼 있다. 연주 공백기 사이에 뭐라도 하자 싶어 매주 서울시향 팟캐스트 ‘클알남(클래식 알려주는 남자)’을 진행하고 있다. 이제까지 7회 분량이 업로드된 상태다. 틈틈이 콘서트 렉처에도 참여한다.

경기도 하남시에서 나홀로 사는 데이비드 이는 광화문 서울시향 내 자신의 자그마한 집무실로 자주 출근한다. 이곳에서 책을 읽고, 연구하며 또래의 홍콩 출신 부지휘자 윌슨 응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바쁘게 지낸다. 그가 바라는 점이 있다면? 질문을 던지자 “임기가 끝났을 때 좋은 모습으로 서울시향을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밀레니얼다운 쿨한 대답을 내놨다.

사진= 최은희 기자 Oso0@sli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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