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영까지 2회만을 남겨둔 SBS 월화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 등장하는 빌런(악인)들이 화제다.

막장극이 아닌 우아한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한 청춘 로맨스물이며 외형상 템포가 느린 작품임에도 체감지수에 있어 ‘폭풍질주’인 이유는 뒷목 잡게 하는 빌런들의 역할이 크다. 남녀 주인공인 박준영(김민재)과 채송아(박은빈)가 워낙 맑은 캐릭터라, 확연하게 대비되는 민폐 군상으로 인해 준영-송아의 감정 변화와 갈등, 이야기 전개에 가속도가 붙는 양상이다.

이 작품의 최고 빌런은 월드클래스 피아니스트 박준영의 아버지다. 14회까지 단 한차례도 등장하지 않은 ‘얼굴 없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준영의 표현에 따르면 “사람은 좋으나 뭔가 일을 자꾸 벌이는” 인물이다. 대책 없이 사업을 시작하고, 투자하고, 보증을 서서 빚을 진다. 생계와 빚을 갚아나가기 위해 아들은 청소년 시절엔 장학금과 콩쿠르 상금, 성인이 돼서는 전 세계 투어 개런티를 챙기느라 허덕인다. 피아노 치는 게 불행하도록 만든 장본인이다.

아내가 수술을 받아도 병실에 코빼기조차 내비치지 않는다. 보증을 잘못 서 급전이 필요해지자 아들의 체면은 생각지도 않은 채 문화재단 이사장 손녀인 이정경(박지현)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한다. 개념 없고 무심한 데다 뻔뻔하기까지 한 분노유발자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정경 역시 둘째가면 서러운 빌런이다. 재벌가의 후예로 부족함 없이 성장했다. ‘신동’ 소리를 들을 만큼 뛰어난 재능을 지녀 일찌감치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를 교통사고로 잃었고, 성장하면서 빛나던 재능은 어디론가 실종돼 버렸다. 상처를 지닌 인물이다. 하지만 20대에 문화재단 이사 직함을 소유했으며 줄리아드 음대 대학원 박사 학위와 집안 배경을 지렛대 삼아 서령대 음대 교수 자리가 코앞이다.

일견 이성적이고 쿨해 보인다. 하지만 10년간 교제해온 헌신적인 남자친구 현호(김성철)를 가차없이 차버리는 것도 부족해 “뭘 믿고 나랑 결혼하려 했어? 가진 거나 있니?”라 가슴을 후벼파고, 절친 준영 앞에서 “나 준영이 사랑해. 준영이 너도 나 사랑하잖아”라고 우정붕괴 멘트를 날린다.

자신이 고백하면 달려올 줄 알았던 준영이 이를 거부하자 연인인 송아(박은빈)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것도 모자라 가짜뉴스를 퍼뜨려 이별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그녀의 준영에 대한 사랑은 외할머니(예수정)의 표현대로 “지 하고 싶은 건 다하는 애”라서인 듯 보인다. 질투와 소유욕일 따름이다. 사랑 그리고 인간에 대한 예의조차 없으며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여기는 안하무인의 전형이다.

국내 최고 명문 서령대 음대 기악과 교수 3인방은 권력을 소유한 기성세대의 일그러진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제자 박준영을 자신의 전리품쯤으로 여기는 주석태(유태진)는 예술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보다 콩쿠르 입상을 위한 ‘기술’만을 강요하는 인물이다. 준영의 ‘트로이메라이’ 연주를 자신의 이름으로 세상에 발표하는 걸 방관했으니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다.

퇴임을 눈앞에 둔 ‘큰 선생님’ 송정희(길해연)와 음대 학장인 이수경(백지원)은 일란성 쌍둥이처럼 탐욕으로 가득하다. 자신의 출세와 명예를 위해 제자들을 발판 혹은 희생양으로 삼는데 일말의 가책도 느끼지 않는 '나쁜 교육자'들이다. 서로간의 시기와 질투, 학생들의 명줄을 움켜쥔 채 자행하는 열정 착취와 줄 세우기는 입맛이 씁쓸해지도록 만든다.

나문숙(예수정) 경후문화재단 이사장은 경후그룹 창업주인 아버지의 수행비서로 경영수업을 시작, 형제들을 제치고 회사를 물려받았다. 퇴임 후 문화재단을 이끌고 있다. 피아니스트였던 딸의 사망 이후 막대한 보험금을 종잣돈 삼아 재단을 설립, 클래식 공연사업뿐만 아니라 장래가 촉망되는 영재들을 발굴, 지원해오고 있다. 1호 장학생이 박준영이다.

기업의 메세나 활동에 있어 큰 기여를 했다. 주변 사람들의 칭송을 한몸에 받는 그는 현명한 어른인 것처럼 보여진다. 기업인으로 오래 살아왔기에 가족 구성원이나 주변 사람에 대한 지적도 냉정하다. 딱히 악행을 저지른 빌런은 아니나 자애로운 미소를 지은 채 비수를 들이밀고, “넌 그래서 안된다는 거야” 식 평가질로 기함 토하게 만든다. 그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는 자극이 되라고든 성인인 타인에게 살도 피도 되지 않는 모욕적 언사일 뿐이다. 관록의 배우 예수정의 연기가 보태지며 더욱 살 떨리는 느낌을 안겨준다.

‘새끼 빌런’ 정도로 리스트에 오를 만한 인물이 박성재(최대훈)다. 경후카드 마케팅팀을 거쳐 경후문화재단 과장으로 지내다 박준영의 국내 매니지먼트 권한을 맡은 지사장으로 독립했다. 기본적으로 클래식 음악 및 공연에 관심이 많고 현실 파악이나 대처가 기민하다. 다만 소속 아티스트를 감성팔이 도구로 내몰아 이를 통해 대중의 관심을 끌려 하는 등 예술을 마케팅하기엔 그릇이 너무 얄팍하다. 등수와 인기, 돈 되는 것에 천착하는 상업적 마인드의 소유자, 이런 사람들이 공연업계에 득시글거린다면 어떤 미래상이 그려질까.

사진=SBS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제공

저작권자 © 싱글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