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가 한국 이주민의 삶을 한국 관객들에게 들려준다. 23일 온라인을 통해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 ‘미나리’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리 아이작 정 감독과 주연배우 스티븐 연, 한예리, 윤여정이 참석해 기자들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미나리’는 희망을 찾아 미국 이민을 선택한 어느 한국 가족의 삶을 그린 영화로 올해 선댄스영화제 드라마틱 경쟁부문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병아리 감별사로 10년을 일하다 자기 농장을 만들기 위해 아칸소의 시골마을로 이사온 아버지(스티븐 연), 아칸소의 황량한 삶에 지쳐 캘리포니아로 돌아가고픈 어머니(한예리), 딸과 함께 살려고 미국에 온 외할머니(윤여정). 영화는 어린 아들 데이빗의 시선으로 그들의 모습을 포착한다.

미국 아칸소 출생인 리 아이작 정 감독은 예일대에서 생태학을 전공한 뒤 영화로 전공을 바꾸고유타대에서 MFA를 받았다. 2007년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찍은 데뷔작 ‘문유랑가보’가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며 주목을 받았고 이후 ‘럭키 라이프’ ‘아비게일 함’ 등을 연출했다.

리 아이작 정 감독은 “저는 이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했을 때 '마이 안토니오'라는 책에 인상을 받았다. 뉴욕에서 살면서 시나리오에 내 삶을 얼마나 잘 넣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이 책처럼 진실되게 내 삶을 들여다보려고 했다. 1980년대 제 기억을 가지고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순서를 되돌아봤다. 영화 속 많은 이야기들은 제 삶이 담겨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영화를 만들어보니 다큐가 아닌 픽션이 됐다. 실존 인물들에 영감 받은 새로운 캐릭터가 나왔고 배우들이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냈다”고 전했다.

영화 제목 ‘미나리’는 영어로 번역되지 않고 한국어 발음 그대로 쓰였다. 이에 대해 감독은 “실제로 제 할머니가 미나리 씨앗을 가지고 와서 심은 적이 있었다. 미나리는 우리 가족만을 위해 심고 길렀던 것이었다. 미나리 자체가 이 영화의 전부고 정신적인 것, 일상적인 것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스티븐 연, 한예리, 윤여정 캐스팅에 대해선 “배우분들이 최고의 배우이기 때문에 캐스팅했다. 다들 바쁜 가운데 작업해 다행이었다. 할머니 캐릭터는 고약한 말을 하지만 아이들에게 사랑을 준다. 그런 모습이 윤여정 선생님에게 딱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어 “모니카는 외유내강 스타일인데 한예리 배우가 어울렸다. 제이콥을 깊은 결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스티븐 연이라고 생각했고 스티븐이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스티븐 연은 AMC 최고 히트작인 ‘워킹 데드’ 시즌1부터 시즌7까지 글렌 리로 열연하며 전세계 많은 팬들에게 사랑받았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3 언더: 아카디아의 전설’ 등에 목소리 연기로 참여했으며 봉준호 감독의 ‘옥자’, 이창동 감독의 ‘버닝’ 등에 출연해 섬세하고 강렬한 연기로 극찬을 받았다. 조던 필 감독의 드라마 ‘트와일라잇 존: 환상특급’과 ‘이상한 도시’에 출연했다.

스티븐 연은 ‘버닝’에서 한국어로 연기했지만 ‘미나리’에서는 그와 다른 구어체를 많이 사용해야 했다. 그는 “한국어 연기가 무서웠다. 윤여정 선배님께 도와달라고 부탁드렸다. 하지만 많이 꾸짖으셨다”고 해 웃음을 유발했다. 이어 “이창동 감독님의 '버닝'에서는 느낌이 다른 한국어를 구사해 어렵지 않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구어체로 말해야 했다. 한국에서 온 이민자를 대표한다기보다는 제이콥이 어떻게 말을 할지에 초점을 맞췄다. 제가 제 연기를 평가할 수 없고 관객분들이 판단해주실 거다”고 전했다.

그는 ‘미나리’에 대해 “제가 영화를 통해 가장 많이 느꼈던 건 캐릭터들이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면서 어디에도 자신이 속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중간자 입장이 된 것이다. 그래서 가족들이 더 끈끈해졌다. 세상 어디든 좋은 사람이 있다. 하지만 소외된 이들도 있다. 저에겐 소외된 이들의 결속이 마음에 와닿았다. 제가 제이콥을 연기하면서 제 아버지가 생각났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고통을 이겨내는, 아메리칸 드림 실현을 위해 노력했던 부분을 이해하게 됐다. 한예리 배우와 작업하며 제가 자세히 보지 못했던 부분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제공

한예리는 2007년 단편영화 ‘기린과 아프리카’로 데뷔했다. 2012년 영화 ‘코리아’에서 진정성 있는 연기를 선보이며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후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청춘시대’ ‘청춘시대2’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와 영화 ‘해무’ ‘사냥’ ‘최악의 하루’ ‘더 테이블’ ‘인랑’ 등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를 소화하며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쌓았다.

한예리는 “감독님 만났을 때 인상이 정말 좋으셨다. 제가 영어를 못 하는데도 소통이 돼서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이상한 믿음이 생겼다. 한국적인 감성을 가장 많이 가진 캐릭터가 모니카였다. 그래서 모니카를 한번 잘 만들어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며 할리우드 진출 소감에 대해 “할리우드 진출했는데 할리우드는 가보지 못했다. 왜 거창하게 기사가 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윤여정 선배님이 첫 촬영 때 '정신 똑바로 차리자'고 하셨다”고 해 웃음을 유발했다.

윤여정은 대중과 동료에게 두터운 신뢰와 존경을 받고 있는 대한민국 배우다. 김기영 감독의 ‘화녀’로 데뷔해 파격적인 연기로 관객들의 이목을 단숨에 사로잡았고 제4회 시체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이후 셀 수 없이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 꾸준한 연기 인생을 걸어왔다. ‘자유의 언덕’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등 작가주의 영화부터 ‘그것만이 내 세상’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등 대중영화를 아우르며 활발한 연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윤여정은 ‘미나리’가 선댄스에서 공개된 후 현지 매체들로부터 내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이에 대해 윤여정은 “나는 오스카 후보로 거론되는 줄 몰랐다. 사람들이 이야기를 해주더라. 식당에서 아저씨가 축하한다고 그러더라. 오스카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고. 저는 아니라고 손사래 쳤다. 후보에 안 올랐는데 그러니까 곤란해졌다”고 했다.

‘미나리’는 내년 오스카 후보로 강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선댄스에서 이 영화가 작품상과 관객상을 받은 건 놀라운 일이었다. 북미 사람들이 한국 이주민의 이야기에 공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리 아이작 정 감독은 “선댄스 수상은 비현실적이었다. 관객분들이 이 영화를 보고 가족 관계에 대해 느낀 게 있는 건지 궁금했다”고 말했다. 그만큼 ‘미나리’가 현지에서 강한 울림을 선사한 것이다. 과연 ‘미나리’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 관객들에게도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영화 ‘미나리’는 10월 23일 오후 8시 영화의전당 야외극장에서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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