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막장대모 트로이카' 김순옥, 문영남, 임성한 세 작가의 치열한 ’그들만의 리그’가 시작됐다. 첫 주자는 바로 김순옥 작가다. 데뷔순으로 보자면 가장 후발주자인 김순옥 작가는 ‘펜트하우스’로 이미 두 선배들의 아성을 뛰어넘었다. 1회에 한 명씩 죽어나가는 유례없는 파격 서사로 안방에 흥행 돌풍을 불러 일으키고 있기 때문.

IPTV, OTT 그리고 유튜브 등에 밀려 시청률 고전을 면치 못하던 방송가에서는 “욕하면서도 본다”는 이들의 작품을 두 팔 벌려 환영할 수 밖에 없다. 주로 주말드라마나 일일드라마를 집필하던 세 작가가 미니로 넘어온 데도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 맞을수록 더 세게 도는 팽이처럼, 혹평 속에서도 오히려 세 작가의 시청률은 고공행진을 이어간다. 물론 상업성이 짙은 드라마가 매번 좋은 소재, 신선한 설정만을 좇을 수는 없다.

다만 걱정되는 점은 세 작가가 만들어나가는 선례다. 대중이 어떤 것을 선호 하는지에 민감한 방송가에서 이 작가들이 끼치는 영향력은 결코 적지 않다. 가뜩이나 드라마 제작 편수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시청률이 다가 아니다”라고 말하지만 결국 시청자들의 니즈를 따라갈 수 밖에 없는 환경이 드라마의 퇴보를 불러오지는 않을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사진=SBS '펜트하우스'

매회 죽이는 작가, 막장계 청출어람 김순옥

김순옥 작가는 세 작가 중 유일하게 2000년대에 데뷔했다. 즉, 가장 ‘막내’인 셈이다. 2007년 MBC 아침드라마 ‘그래도 좋아!’에서 거침없는 전개를 선보이며 동력이 붙은 김순옥 작가는 SBS ‘아내의 유혹’으로 시청률 40%대의 일일드라마를 만들어냈다. 이후 ‘왔다! 장보리’, ‘내 딸, 금사월’로 선전할 때 까지만 해도 단순 개연성 없는 전개와 막장 설정 정도였다면 ‘황후의 품격’ 부터는 파격의 정점을 찍기 시작했다.

‘황후의 품격’에서는 임산부 성폭행, 동물학대로 방심위 중징계를 받았다. 이미 ‘황후의 품격’부터 죽음의 채색이 만연하던 전개는 ‘펜트하우스’에서 1회 1사망으로 확장됐다. 3명의 여주인공의 복수와 암투를 그리는 내용 속에 치정은 베이스로 깔렸고 폭력성과 살인까지 난무하며 한국 드라마사를 새로 쓸 법한 막장의 대미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재밌는 지점은 김순옥 작가의 작품론이다. ‘왔다! 장보리’ 당시 모교인 이화여자대학교와 나눈 인터뷰에서 김순옥 작가는 “제가 바라는 건 그냥 오늘 죽고 싶을 만큼 아무 희망이 없는 사람들, 자식들에게 전화 한 통 안 오는 외로운 할머니 할아버지들, 그런 분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는 거예요”라며 “저는 불행한 누군가가 죽으려고 하다가 '이 드라마 내일 내용이 궁금해서 못 죽겠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드라마, 드라마를 통해 슬픔을 잊고 희망을 얻을 수 있는 그런 드라마를 쓰고 싶어요. 마치 ‘마지막 잎새’ 속 노화가가 그렸던 그 잎새 같은 작품을 쓰고 싶은 거죠”라고 밝힌 바 있다.

사진=MBC '압구정백야'

돌아온 임성한=Phoebe, 새로운 신드롬 일으키나

독보적인 막장계의 원톱, 임성한 작가가 은퇴를 번복하고 TV CHOSUN 새 드라마 ‘결혼작사 이혼작곡’으로 돌아온다. ‘압구정 백야’ 이후 5년만에 미니시리즈로 복귀를 예고한 임성한 작가는 Phoebe라는 새로운 필명을 내세웠다. 이미 복귀 소식만으로 핫한 이슈로 급부상한 임성한 작가는 이미 제목부터 진한 막장의 냄새를 풍기고 있다. 이번 작품은 30대, 40대, 50대 여주인공에게 닥친 불행과 진실을 사랑을 찾는 부부들의 불협화음을 다룰 것으로 알려졌다.

재미있는 점은 임성한 작가를 바라보는 시청자의 시선이다. 같은 막장이라도 ‘임성한 월드’라고 불릴 정도로 애정도가 높다. 김순옥 작가와 문영남 작가가 독한 전개나 캐릭터를 선보인다면 임성한 작가는 신박한 발상 자체로 예측불가한 장면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귀신과 빙의한 후 눈에서 레이저가 나오고, 예능을 보며 웃다 사망하고, 심지어 주인공의 새신랑이 건달들과 다투다 벽에 부딪혀 죽는다. 이 맥락없고 황당한 전개가 일부에서는 엄청난 비난을 받지만 짤로 만들어지거나 패러디 돼 시청자들에게 드라마와는 또 다른 재미를 선사했다.

임성한 작가 작품은 이미 시작 전부터 방송가에 풍문이 자자하다. 한 방송관계자에 따르면 12월 방송을 앞두고 본격 촬영이 11월부터 시작된다. 집필 문제인지, 제작 전반의 상황 때문인지 확인된 바는 없으나 사전제작도 많아진 드라마 환경에서 보기 드문 경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상당한 기대를 받고 있는 임성한 작가의 신작은 12월 첫 방송 예정이다.

사진=KBS 2TV '왜그래 풍상씨'

7년만에 주말극 리턴즈, 가족극과 막장 사이 문영남

세 작가 중 가장 빨리 데뷔한 문영남 작가는 작품 행보가 앞선 두 작가와 사뭇 다르다. 한일간 역사를 소재로 한 ‘분노의 왕국’으로 호평을 받았고, 이후 가족드라마인 ‘바람은 불어도’로 높은 시청률은 물론 백상예술대상, 한국방송대상에서 작가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문영남 작가는 초기작에서 소시민의 삶을 다루거나, 혼전동거 등 다양한 소재를 다뤘다.

하지만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며 ‘조강지처 클럽’ 이후 본격적인 막장 드라마의 포문이 열렸다. ‘조강지처 클럽’은 장인부터 사위, 아들까지 3대가 바람을 피우는 설정이 등장했다. 하지만 이런 설정은 문영남 작가의 절대적인 시청자층을 굳히는데 큰 힘이 됐다. 주부 등의 공분을 사는 내용이 ‘욕하면서 보는’ 시청자를 유입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왜그래 풍상씨’는 가족극 특유의 따뜻함으로 채색됐지만 끈질긴 간 찾기와 신파가 정점을 찍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순옥 작가 ‘황후의 품격’과 시청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며 문영남 작가의 대세는 현재 진행형임을 확인시켰다. 이런 문영남 작가가 KBS와 다시 한번 손잡고 ‘즐거운 남의 집’으로 7년만에 주말드라마로 돌아오는 것. 못해도 중박이라는 KBS 주말드라마 편성을 받은 문영남 작가가 이번엔 또 어떤 시청률 기록을 세울지 이목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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