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그날이 생생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 한줌의 재가 되기 전, 미동도 없는 그 얼굴을 바라보며 사랑한다고, 죄송하다고 속삭였던 순간을. 누구나 겪지만 겪고 싶지 않은 2박 3일을 ‘잔칫날’은 아이러니하게도 정말 아름답게 그려낸다.

경만(하준)의 아버지가 낚시를 좋아하지만 경만이 끝내 같이 낚시를 가지 못한 것, 장례식 자리를 지켜야하지만 일을 해야 해서 그렇지 못한 것. 필자도 이 모든 순간이 후회로 남는다. 누군가를 고이 보내드려야하는 게 자식, 손자의 몫이지만 세상은 그렇게 바람직한 일대로 흘러가게 놔두질 않는다.

‘잔칫날’은 그런 아이러니함으로 가득한 영화다. 경만이 아버지 장례식 비용은 마련하기 위해 마을 주민 팔순잔치를 가게 되면서 아이러니는 시작된다. 내 슬픔을 남의 웃음으로 승화해야 나도 그나마 안심할 수 있는 상황. 경만의 2박 3일을 따라가다보면 그의 감정에 이입하게 된다.

그놈의 돈. 경만과 경미(소주연) 남매의 발목을 잡는 건 돈이다. 일찍 부모님을 여의면 감당할 수 없는 경제적인 고난에 처하게 된다. 때론 일찍 떠난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때론 나 자신의 무능력을 한탄하기도 한다. 같이 끌어안고 울어도 시원치 않을 판에 돈 때문에 갈등을 빚는 일도 종종 있다. 그럼에도 가족이기에, 믿고 의지할 사람이 있기 때문에 경만과 경미는 꿋꿋이 버텨나간다.

김록경 감독이 경만과 경미를 세상의 무인도로 던져놓은 듯했다. 장례식장에 와서 위로를 건네는 이보다 잔소리를 하고 딴 짓을 하는 사람들, 잔칫날에 일어난 사건을 경만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마을 주민들. 텅 빈 장례식장. 이 모든 게 경만과 경미를 외롭게 만든다. 아무도 그들의 슬픔을 알아주지 않는 것처럼. 이로 인해 두 사람의 관계는 끈끈해지고 감정은 더욱 하나로 뭉치는 힘을 발휘한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이들을 응원하고 위로하고 싶게 말이다.

배우 이야기를 하면, 하준이 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배우상을 받았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분장할 땐 ‘조커’ 호아킨 피닉스의 복잡한 감정이 엿보이고 잔칫날에서 슬픔을 누르고 남을 웃기기 위해 춤을 출 땐 ‘인생은 아름다워’ 로베르토 베니니의 숨바꼭질 장면이 생각난다. 시의적절하게 터지는 감정 폭발, 힘없이 축 쳐지는 말 한마디가 경만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한다.

소주연은 수없이 흐른 눈물보다 그의 눈빛이 더욱 돋보였다. 경만이 잔칫날에 간 사이 상주 역할을 해야하는 부담감, 책임감을 가진 경미의 불안한 상황이 소주연의 눈을 통해 전달된다. 스크린을 뚫고 한없이 작아보이고 장례식장에서 외로워보이는 경미를 토닥거리고 싶어줄 정도다.

‘잔칫날’은 특별한 기교없이 스토리, 연출, 배우들의 연기만으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장례식장은 누군가의 슬픔을 공유하는 자리, 잔치는 웃음과 기쁨을 나누는 자리. 비록 두 상황이 달라보여도 하나는 똑같다. 누군가의 마음을 이해하고 헤아린다는 것이다. ‘잔칫날’은 관객들이 경만과 경미의 처지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몰입도 높은 영화다. 러닝타임 1시간 48분, 12세 관람가, 12월 2일 개봉.

사진=’잔칫날’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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